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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푸어', 그리고 우리 안의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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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허니문 푸어', 그리고 우리 안의 보수주의

[의제27 '시선'] 보수주의의 함정과 진보 굶겨죽이기

엊그제 피디수첩에서 소개한 '허니문 푸어'들의 사정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신 모양이다. 합쳐서 월 소득이 500만원이나 되는 행복한 신혼 부부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새삼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흥청망청 낭비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 하는대로 임신 중에 딸기 좀 더 먹고, 잠시 육아 휴직하고, 애들 학원 보내고, 우연히 남편이 직장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 대부업체의 고금리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그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채무재조정을 해야만 했다.

맑은 눈으로 현실을 보라

그저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참담한 현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노동자가 받는 뻔한 월급과 실제 생활에 들어가는 돈을 계산해 보면 대부분의 젊은 엄마, 아빠가 빚에 허덕이지 않을 수 없음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그들이 백년간 돈을 모아도 제대로 집 한 채 장만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뻔하게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싼 이자로 대출을 해 주는 것이 해답이 되지 못함도, 보금자리인지 시프트인지 휘황찬란한 이름의 주택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임도 쉽게 알 수 있다.

▲ MBC <PD수첩> 캡쳐

경제학도의 눈으로 본다면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재벌 대기업들은 몇 년째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고 있고, 덩달아 외국인 투자자들도 막대한 수익금을 송금하고 있으니 경제가 나쁘다는 표현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경제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게만 돌아가는 기형적 구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젊은이들은 참담한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양극화 현상으로 불리는 이 기형적인 경제 구조에 대해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인 로버트 라이시나 폴 크루그만은 세계화와 기술발전, 그리고 보수주의가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해 왔다. 세계화나 기술발전 등은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해 온 반면 보수주의는 새롭게 주목할 만 하다.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이 아닌 정치적 보수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이 비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 어떻게 성장하고 그 과실을 어떻게 분배하는 경제구조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는 정치경제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진보 굶겨 죽이기

1980년대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특성은 본격적으로 '괴물 굶기기'(starving the beast)를 목적으로 감세를 시행했다는 것이다. 레이건이 막대하게 국방비를 증가시키는 한편에서 감세를 해서 재정적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 목적이 주로 진보정부에서 추진하는 재분배를 촉진하는 재정지출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진보 굶겨 죽이기'라는 의미의 '괴물 굶기기' 작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었는데 예를 들면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원이 부족해서 복지지출을 크게 증가시키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핵심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어 다시 보수층이 집권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바마도 대침체의 상황에서도 재정지출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

보수주의를 강고하게 하는데 주류 경제학이 핵심적 원리를 제공했다. 80년대 이후 경제학을 풍미한 새고전학파 경제학이 전세계 경제학계를 지배하면서,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를 핵심으로 하는 시장만능주의가 종교적 도그마로 자리잡게 했다. 80년대 이후 미국에서 공부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 도그마에 빠져 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도그마로 인해 시장은 객관성을 인정받게 되었고, 오늘 대다수의 고통받는 젊은이들은 이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회적 낙오자로 취급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강고하게 보이는 과학적 논리가 실제로는 대기업이라는 자본의 이해에 편향된 원리에 불과한 것이고, 자본에 포획된(captured) 학자, 언론, 정치인, 관료들로 구성된 강고한 기득권 계층에 의해 일반 대중에게 강요되고 있는 일방적 논리에 지나지 않음을 꿰뚫어 보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보수주의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보수주의는 정략적 목적에 의해 국가경제를 볼모로 잡고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가는 것이다. 이 보수주의는 매우 강력한 자체 추진동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치밀한 전술과 전략을 가지고 대처하지 못한다면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시와 크루그만이 아무리 목청이 터져라 외쳐 대도, '멍청한' 오바마 행정부가 늪에서 헤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재벌과 보수주의

현재 한국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미국에서 수입된 이러한 보수주의가 막강한 경제적 지배력을 갖춘 재벌체제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수입된 새고전학파 경제학을 신봉하는 많은 경제학자들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음에도 시장에서 결정된 적정가격이라고 우기는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부자감세로 재정을 파탄내고 4대강 사업으로 막대한 혈세를 낭비할 때는 입다물고 있다가 복지지출을 늘린다니까 망국병 운운하고 나선다. 시장을 신봉하는 그들이 수출대기업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금융거래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시장 자율을 해친다면서 쌍심지를 돋우며 나선다. 결국 그들의 주장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특정 재벌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할 때 뿐임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력을 넓혀가는 대규모 기업집단이 정치, 경제, 사회를 지배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은 미국의 1920년대 보수주의 시대와 유사하다. 따라서 이명박 시대 한국은 실체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재벌이 최근 미국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강력한 보수주의를 무기로 그야말로 진보를 굶겨 죽이다 못해 대학살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서민과 중산층은 피눈물을 흘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대침체를 합친 고통이 우리 서민과 중산층을 덥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보수주의가 더 문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겠다는 정치 영웅을 자주 접하게 된다. 깊은 뜻을 갖춘 분도 없지 않겠지만, 보수주의의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막대한 재정적자를 내 재정사정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재원을 마련해 가며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합리적 인사들 중에는 자신이 보수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민주정부 10년의 실패는 보수주의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 안에 보수주의가 너무나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보수주의가 정관경언 유착의 기득권을 위한 포획의 논리임을 알면서도 깨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시 집권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불안하기만 하다.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해 필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 저명한 관료출신 정치인이 논평하셨다. 자네들의 심정과 논지는 이해하겠는데, 내가 살아온 경험에 비춰볼 때 확신이 서지 않는다네. 그 솔직한 토로에 매우 감사하게 느꼈다. 왜냐하면 나 역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보수주의를 나 역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오고 배워온 과정을 극복하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그렇다면 보수주의를 깨는 비책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간단하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라. 워킹 푸어, 하우스 푸어, 허니문 푸어를 보라. 그들조차 부러움의 대상인 사람들을 보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울어라. 그 땐 해답이 보일 것이다. 해답을 얻은 분들은 손바닥에 답을 써서 필자와 맞춰보자. 적벽대전에서 주유와 제갈량이 서로 맞춰보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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