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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3당합당의 저주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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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딩동, 3당합당의 저주가 풀렸다

[기자의 눈] 평화와 민생이 지역주의를 폐기했다

6.13지방선거 결과 부산, 울산, 경남 등 광역단체장 세 곳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 이와 함께 놀라운 일은 부산 기초단체장 선거 15곳의 가운데 13곳에서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탄생한 것이다. 울산에서는 구청장 4곳을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경남 15곳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곳은 무려 7곳이다. 'PK 선거혁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것 같다. 오랜 '지역주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간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화 이후 정치사에서 지역주의의 시발로 지목돼 왔던 사건이 3당 합당이었다. 1987년 민주화의 열망 속 야권 분열로 취약한 기반에서 집권했던 노태우 정권은 1990년 1월 22일, 당시 집권 여당 민주정의당과 제2야당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을 해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키는 작업을 주도했다.

군사독재 정권 후예 노태우와 김영삼, 그리고 김종필의 결합이었다. 지역으로는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그리고 충청권 정치 세력의 결합이었다.

가치를 위한 통합이 아니라 지정학적 연합을 만들어 선거에 이기고자 한 '기술'이었다. 지역에 정치적 전선을 긋고 전근대의 전쟁 개념인 '합종연횡'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치를 버리고 이익을 위해 '조작'하는 정치가 시민들에게 복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역주의는 일종의 '가상현실'일 뿐이었는데, 이 가상현실은 참 효과가 좋았다.

정권 연장의 꿈을 위해 노태우는 김영삼과 민주계를 들였고 이후 1992년 대선에서 "호랑이를 잡으러" 들어간 김영삼은 민정계의 견제를 뚫고 '여권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3당 합당에 대한 평가는 많다. 그중에서도 지역주의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90년대 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이 조장했던 '독재 정권의 지역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 '민주화 이후의 지역주의'가 새롭게 전개됐다. 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자원을 독점한 독재 정권의 지역주의는 간단하게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에는 조금 다른 방식을 필요로 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계승자였던 보수 정당은 특정 지역을 '악마화'하고 해괴한 '신념'을 조작해내 민주화 이후의 지역주의를 성공적으로 한국 사회에 안착시켰다.

▲ 노태우 전 대통령, 민주자유당 창당 기념식 참석. ⓒe영상역사관

군사독재 정권에서 '야도'로 불렸던 PK(부산·경남)는 '문민정부' 출범을 위해 김영삼을 적극 지지했다. 민간인이 대통령인 '문민정부'는 유권자들에게 당위성까지 쥐여줬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초원복국집 사건'은 잠복했던 지역주의가 환부로 드러난 대표 사례였다.

대선을 목전에 둔 1992년 12월 11일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 초원복국 음식점에서 모여, 대선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통일국민당(정주영 후보 측) 인사들에 의해 폭로됐다.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은 부산시장, 부산교육감,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부산경찰청장 등 주요 공안 담당 고위당국자들을 불러모으고 이렇게 말했다.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그 말은 맞다. 그러나 안 해봐서 모른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지. 지금 경북, 대구 사람들 섭섭하다. 30년간 대한민국을 휘두르다 놓게 되면 손해. 정권을 가지고 있으면 특혜는 못 받아도 억울한 일 당하면 한 다리 건너로 집권층이니까 피해는 안 당했는데, 피해 안 보는 것만 해도 중요한 일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사소하지만 미국같이 민주주의 나라도 리틀 록에서 그 잔치를 벌이고 클린턴, 아칸소주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 죽자. (일동 웃음) 남들이 비웃을 것이다. 당락을 불구하고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받는다. 바보라고…. 이번에 거제도에 가서 물어보니까 거제도 생긴 이래 처음이라는 건데 자기 고향에서 많이 지지를 안 하면, 무슨 저 사람은 고향에서도 제대로 인심이 없느냐 그런다고. 제대로 해주지도 않고 다음에 가서 거제도 봐달라 그럼 말이 되느냐…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의 발전에 긍정적…경남, 부산이 5백8만인가 그런데 80% 투표하면 4백만…그중에서 80% 얻는다 해도 3백20만인데 그것 가지고 되겠느냐고….
()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 분들하고 서울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그때 대구 분들 우리에게 손 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일동 웃음)…안 그렇습니까? ()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김영삼은 이 사건을 돌파하기 위해 '불법 도청'을 부각시키며 지역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그리하여 당시 초원복국 사건은 지역주의와 관련해 보수 세력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남겼다.

첫째, 지역주의는 불가피한 것이다. 둘째, 지역주의는 내놓아도 부끄러운 게 아니더라.

두 번째 시사점은 매우 중요했고, 핵심이었다. '염치없는' 정치가 판을 쳤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뭐가 문제냐며, 도덕성 논란을 뭉갰다. 불법 선거 모의의 부끄러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도청' 행위를 비난하면서 여론을 희석시켰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지역주의는 통했다. 김영삼은 당선됐다. 재미를 봤다.

이후 지역주의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 됐다.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은 '전라도 빨갱이'로 곤욕을 치렀다. 그리고 투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은 스스로 지역주의 극복의 아이콘이 됐고, 지역주의 극복을 정치 제1의 가치로 내걸었다. 가치가 아닌 것을 없애는 가치.

노무현은 1999년 월간 <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역감정을 깰 수가 있나요? 미쳐야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지역갈등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맙니다. 똑같은 사실도 지역을 오가면 흰 것이 검은 것이 되고, 검은 것이 흰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어디 있으며, 정당 간의 정책 경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2000년 노무현은 16대 총선에서 종로 지역구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당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노무현과 맞붙었던 한나라당 허태열은 이렇게 연설했다.

"민주당은 전라도 정권, 전라도 사람이 키우고 사랑하고, 반대로 우리 한나라당은 부산시민이 키웠고 부산시민이 사랑했습니다. 지금 살림살이 나아지신 분 계십니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저기 몇 분 계시네요. 혹시 전라도에서 오신 거 아닙니까? 중앙정부 요직에 부산사람을 찾아볼 수 없어서 몇몇 사람이 눈에 띄면 천연기념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사업수완이 있어도 이제는 다 틀렸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아들딸들이 비굴하게 남의 눈치나 살피며 종살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습니까?"

노무현은 떨어졌다. 지역주의는 강고했고, 누군가에게 유용했다. 노무현은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지역주의 타파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주의 청산을 내걸고 개헌과 대연정을 제안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극복은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숙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역주의를, 인위적으로 해체하려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지역주의 청산 자체를 위한 정치 개혁은 실패했다. 그리고 정권은 한나라당에, 이명박에게 넘어갔다. 2009년 이명박 정권에서 허태열 의원은 부산국정보고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좌파는 80%의 섭섭한 사람을 이용해 끊임없이 세력을 만들고,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으며 거기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게 민주당이다. 좌파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똑똑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빨갱이일 뿐이다. 이들이 지난 10년간 6·25 전쟁 때처럼 완장을 차고, 정부의 녹을 받아먹으며 큰소리쳤던 것 아니냐. 지난 10년간 깔아 놓은 좌파들의 인프라를 걷어내려면 한나라당이 20년간은 집권해야 한다."

허태열은 이후 박근혜의 대통령비서실장이 된다. 권력의 정점을 잠깐 맛봤지만, 그가 말한 '한나라당 20년 집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박정희 신화와 함께 한나라당(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은 무너져내렸다.

조짐은 보였다. 2010년 지방선거, 2014년 지방선거에서 PK 지역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설마' 했다. 그러나 2016년,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부산은 민주당에 국회의원 5석을 안겨줬다. 혁명이었다. 그리고 박근혜는 탄핵됐고, 아버지의 신화까지 스스로 거두어 갔다. 자유한국당이 출범했지만, 그들은 현재 자신의 좌표가 어딘지도 모르는 듯하다.

2018년 3당 합당 이래 민주당은 처음으로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요인은 다양할 것이다. 일단 세대가 바뀌었다. 70년대생은 40대가 됐고, 80년대생은 30대가 됐다. 그리고 지금 10대, 20대는 한반도 역사의 대전환기를 목도하고 있다. 이들은 노회한 정치 전략과 전술을 거부한다. 지역보다 가치를 중시하고, 내 삶이 어떤지 직시할 줄 안다.

추상적인 '대의'와 마키아벨리적 '전략'만이 판을 치던 정치는 이제 힘을 많이 잃은 것 같다. 그리고 고질적 지역주의는 결국 평화와 민생에 자리를 내준 것 같다. 빠른 시간 안에 영남 지역에서 보수 정당이 지지를 받는다 해도 앞으로는 누구도 그것을 '지역주의' 탓이라고 말하지 않게 될 시대가 올 것 같다.

28년 만에 3당 합당의 저주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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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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