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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빈곤율 46%, 연금 제도 확 뜯어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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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빈곤율 46%, 연금 제도 확 뜯어고치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에 직면한 노인의 삶

UN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중이 7%가 넘으면 고령화사회, 14%가 넘으면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대한민국은 올해 1월을 기준으로 전체 인구 5178만 중 65세 이상 노인이 738만명으로 14.3%에 이르렀다. 마침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매우 빨라서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6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41%에 이를 전망이다.

고령사회가 되어 노년기, 특히 연금제도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다. 연금은 노령, 사망, 장애 등 위험에 처한 인구집단에게 세금이든 사회보험료든 사회적으로 돈을 모아 지급하는 제도이다.

왜 노인에게 돈을 모아서 지급하는가? 돈은 우리가 삶에 필요한 필요와 욕구를 구현할 수 있는 교환재인데 노인은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돈을 확보하기 어렵다. 연금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첫째, 우리는 노인에게 충분한 돈을 드리고 있는가?, 둘째, 노인에게 돈을 지급하였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과연 의무를 다한건가?

우리는 충분한 연금을 드리고 있는가?

OECD가 발간한 <한 눈에 보는 연금 2017(Pensions at a Glance 2017)>을 보면 대한민국이 노인 빈곤율 45.7%이다. 20%대의 2위 그룹을 압도하며 독보적 1위이다. 사실 이 분야에서 1위를 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핵심 원인은 국가가 지급하는 공적연금의 취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여 고령사회 노후불안에 대응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는 우선 기초연금을 매월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증액하고자 한다. 이미 나이가 들어 국민연금의 가입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던 빈곤 노인층, 국민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납부하지 못해 수급요건을 못 채운 무연금 노인, 그리고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아 연금이 적은 노인들에게 연금을 더 드리려는 취지이다.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살아내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드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돈으로 음식을 사드실 수 있고, 월세 등 주거비용도 충당하실 수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시고 약도 사실 수 있다. 물론 30만 원으로 충분한 노후소득이 될 수는 없기에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자산조사형 보충연금의 추가 도입, 국민연금 사각지대 축소 등을 통한 연금 확보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추가적 재원확보가 가능하다면 국민연금 급여의 적절성도 높여야 한다. 특히 중하위 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

돈을 지급했다고 우리가 의무를 다한 것인가?

또 하나의 질문. 적은 돈이나마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했다고 우리사회가 노인에게 책임을 다한 것일까? 예를 들어 연세가 80이 넘고 90에 달하시는 고령 노인은 돈이 있으셔도 거동이 불편하여 쇼핑을 가시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치매까지 발병한다면 누군가가 옆에서 보살펴주어야만 한다.

연금제도가 보편화되면서 많은 노인들이 독립적인 은퇴생활을 누리게 되었지만, 연금제도에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 임종을 앞두고 독립적 생활이 불가능한 단계에 대한 고려는 담겨있지 않다. 노인의 삶에 연금제도가 개입하여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쾌적하고 건강한 여생의 확보라면 단순히 돈만 드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년기가 건강하려면 곰팡이가 없는 쾌적한 주거환경이어야 한다. 체온조절 및 거동의 불편 등 노인의 신체능력 감소를 보완할 수 있는 주거환경이어야 한다.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노인의 동선을 고려한, 깨끗한 공기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주거환경에 더하여 영양분을 고루 드실 수 있는 식사도 필요하다.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벗과 이웃도 있어야 한다. 지인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는 여가생활도 필요하다. 아플 때 보살피는 이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남은 시간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완화의료 정책도 필요하다.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에 직면한 노인의 삶

우리나라에서 회원제로 하여 상당한 가입비와 관리비를 내면 양질의 노년기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들이 시장에서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돈이 많다면 다양한 고품질의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노인이 그러한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이러한 서비스는 최상류층 소수의 노인에게 한정된다.

대한민국은 나이가 들수록 양극화가 심하고 빈곤율도 높다. 아직도 다수의 노인이 푼돈이나마 벌고자 길가의 폐지를 주워 푼돈이나마 벌어야 하고, 곰팡이 핀 쪽방에 아픈 몸을 누인다. 심한 경우 어느날 고독사로 발견되기도 한다.

결국 다수 노인의 노후 보장에 있어서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노인의 삶에 필요한 최저선의 소득을 확보해주지 못하고 있고, 설사 어느 정도의 금전을 확보한 노인이 있더라도 시장은 그 구매력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죽음 앞에서 우리 사회의 대처가 취약하다.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도 낮고 이를 위한 시설과 전문인력의 확충도 부족하다. 예를 들어, 영국은 정부가 완화의료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 수립을 하고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이를 폭넓게 지원한다. 여기에 시민사회 차원의 기부와 자원봉사가 더해져 거의 무료로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이야기로 넘기기에 우리 현실이 절박하다. 노인 완화의료에 대한 대책 보완이 시급하다.

연금제도의 과감한 재설계

연금제도는 애초 현금 복지로 탄생해 운영돼 왔다. 이제 노후가 길어지고 복합적 위기가 커진 만큼, 연금제도의 근본적 재설계도 생각해볼 때이다. 기존의 현금급여방식을 벗어나 현금, 현물, 서비스 급여로 필요에 맞게 재설계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한 시기인 80대 이전까지는 100% 현금 급여로 연금을 받다가 독립적인 삶이 어려운 80~90대에 도달한 경우 본인의 선택에 따라 일정 비중을 현물, 서비스 급여로 받는 방식은 어떨까. 예를 들어, 현금으로 40% 받고 현물, 서비스 급여로 60% 받는 식이다. 연금이라는 재원을 규모의 경제로 모아내어 효율적으로 노후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는 쾌적한 환경에서 삼시세끼 좋은 식사가 제공되고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고 아프면 적절한 조치와 돌봄, 죽음을 앞두고는 완화의료를 제공받을 것이다. 현금 급여와 현물, 서비스 급여가 조화를 이루는 연금제도로 재설계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요양서비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영세한 민간요양기관 중심의 서비스체계여서 질좋은 요양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롭고 과감한 공적 상상과 실험을 해보는 것을 제안한다.

이러면 어떨까. 교통이 편리한 도심지에 건축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엄청난 효율의 제로에너지 공공노인시설을 건립하고, 최적의 건물에너지 관리체계를 바탕으로 관리운영비를 최소화하면서 노인친화적인 동선의 가구배치와 유니버셜 인테리어, 열적 쾌적감을 가진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커뮤니티 설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멋진 노인커뮤니티를 만들고 예술인들이 수업을 개설하고, 보육시설 및 방과 후 교실 등을 개설하여 어르신과 어린이가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공공의료진을 배치하고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적절한 완화의료가 제공되는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완화의료는 대부분의 의료비가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 특히 아무런 효과가 없는 1~2개월에 집중되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올 초고령 사회의 의료비 폭증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도 있다.

OECD 1위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의 나라이자 급격하게 초고령 사회로 달려가는 우리 대한민국은 더 이상 동방예의지국이라 하기 어려우며, 변화가 없다면 미래의 전망도 어둡다.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죽음 앞에 서기에 노년기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제이기도 하다. 긴 수명의 고령사회 노후대책, 더 과감한 상상과 실험이 요청된다.

(오종헌 위원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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