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에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후보들의 포스터가 아닌 공약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후보자 선거공보·공약을 클릭했더니 우리동네 후보자 찾기가 나타났다. 주소를 하나씩 클릭했더니 시도지사 후보 9명, 교육감 후보 3명, 구시군의장 후보 5명, 시도의원 후보 3명, 구시군의원 후보 4명의 사진과 선거공보, 5대 공약, 후보자 정보보기 등이 나왔다.
이 모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방선거에서는 특히나 후보들의 공약을 보고 투표를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서울시장 후보 9명의 공약이라도 들여다보고 투표를 할 생각으로 모든 후보의 5대 공약을 다운로드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모든 후보들의 5대 공약을 꼼꼼히 검토하지 않은 채 사전투표를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5대 공약의 제목을 표로 정리하면서 서울시장 후보를 선택하기 위한 관점을 정리한 후에 투표했다.
서울시장이 되려면 적어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핵심인 교통정책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의 남과 북을 가르는 한강의 복원 등에 관한 공약이 있었으면 했다. 서울시에 사는 청년들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의 걱정거리인 거주권 문제 해결에 관한 공약도 보고 싶었다.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등 노동문제에 관한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시장이 되려면 적어도 5대 공약에 인권과 젠더 관점에서 준비된 공약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놓고 수준 이하의 혐오 발언을 하는 후보나 얼버무리는 후보는 일단 이번 투표 범위에서는 제외했다. 지금이라도 반성한다면, 나중에 뽑아드리는 방법이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길고양이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공약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바라는 서울시장의 자격조건에 부합하는 후보는 2명으로 압축되었다. 1명은 나의 기준을 전반적으로 충족했고, 또 다른 1명은 내 취향에 부합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1명을 선택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선택한 후보가 이번에 서울시장이 될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후보도 마찬가지다. 정당과 후보의 인지도와 지지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기준과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시건방지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시건방지다'는 비위에 거슬리게 잘난 체하며 지나치게 주제넘다는 뜻이다. 내가 시건방지게 기호 1번과 2번, 3번 중에서 고르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비위에 거슬리게 '관점' 운운하며 잘난 체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방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후보의 공약을 보고 내가 선호하는 기준에 따라 투표를 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포스터에 대한 품평이나 훼손을 할 시간에 자신의 투표 기준을 정하고 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정정당당하게 비판하기를 시건방지게 권해본다. 서울시장 후보의 5대 공약 제목을 정리했으니 아직 투표를 하지 않은 서울시민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함정은 공약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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