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를 닷새 앞둔 가운데, 보수·중도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논란이 의도했던 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오히려 바른미래당 내부의 분란만 부추기는 양상이다. 직접 선거를 뛰고 있는 입장에서 단일화에 대해 원칙적으로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 측과, 호남 민심을 의식해 '자유한국당과의 단일화는 안 된다'는 명분을 강조하는 당내 호남계 간의 내분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는 8일 오전 이례적으로 당 대표 명의로 직접 성명을 내어 "바른미래당 창당 정신을 훼손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단일화 논의를 당장 중단하라"면서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와 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간 단일화 문제와 당대당 통합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는 거대 양당의 공생관계를 청산하고 중도개혁실용의 가치 추구를 위해 탄생한 바른미래당의 창당 정신을 훼손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 공동대표는 "한국당은 국정농단과 적폐세력이며 낡은 이념의 잣대로 한반도의 평화마저 거부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청산과 배제의 대상이지 연대와 통합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며 "안 후보와 김 후보 간 시대착오적·정치공학적 단일화 논의를 당장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표를 얻기 위한 선거 공학적 연대"라며 "당대당 차원에서의 연대·연합에 의한 단일화, 그리고 조건과 합의에 의한 성사를 전제로 한 단일화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고 못박았다.
박 대표는 이어 서면으로 배포한 중앙선대위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좀더 직접적으로 안 후보를 겨냥했다. 그는 "(한국당과의) 후보단일화, 연합·연대, 당대당 통합 운운은 바른미래당 스스로를 청산과 배제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엄중한 해당(害黨)행위"라며 "이번 서울시장 단일화 논의는 한국당과 김문수 후보가 기획·연출한 추악한 정치 굿판에 안철수 후보가 끼어든 것으로서, 안 후보는 이 굿판을 당장 걷어차고 빠져나와야 한다"고 했다.
광주 동구가 지역구인 박 대표는 바른미래당 내에서 김동철 원내대표, 주승용·김관영·권은희 의원 등과 함께 호남 세력을 대표하는 인사다. 김 원내대표와 주 의원, 문병호 인천시장 후보 등은 이미 지난 6~7일 개인 명의 성명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청산돼야 할 정당과 단일화 운운하는 발언이 나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김동철), "개인적으로 반대이고 그렇게 같이 할 수도 없다"(주승용), "기득권 양당 구조의 한 축인 한국당과 선거연대를 하는 것은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것"(문병호) 등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당대당 통합이나 '후보 간 협상에 의한 단일화'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안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손학규 중앙당 선대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대당 통합 얘기가 나오니까 지역에서 호남 표가 많이 흔들린다고 한다"며 "당대당 통합 얘기는 안 후보나 선대위 차원에서 전혀 나온 일이 없고, 연대도 얘기한 바 없다"고 말했다.
손 위원장은 "인위적, 공학적 단일화는 없다고 계속 강조했고, 안 후보가 김 후보를 만났을 때도 '내가 야권 대표 주자다. 내가 박원순 후보를 이길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했다"며 "(단일화는) 어떻게 진행해 나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김 후보의 결단의 문제다. '내가 지금이라도 양보해서 안철수로 하여금 박원순과 대결해 이기도록 하자'는 (김 후보의) 결단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손 위원장은 당내 호남계의 반발에 대해 "오해"라며 "안철수-김문수 만남에서 마치 당대당 통합 논의가 된 것 아니냐는 오해가 호남 쪽에서 많이 있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성명 발표를) 한 것으로 안다. 안 후보나 당에 반발한 게 아니라 호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성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안 후보 본인도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권 후보들 중 한 후보에게 가능성이 많아서 지지가 모이면 다른 후보가 대승적으로 양보하거나 또는 끝까지 가더라도 결국은 될 후보에게 유권자들이 모두 다 표를 모아주는 방식으로 진행이 될 것"이라며 "인위적인 단일화, 서로 합의하고 여론조사하고 그런 형태는 아닐 것이라고 진작 말씀드렸고 저는 일관되게 마찬가지 입장"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 전망에 대해서는 "당들도 치열하게 쇄신의 노력들을 다 해야겠지만, 그게 바로 정계개편으로 이어진다든지 과연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이같은 입장을 가진 안 후보 본인과 일부 주변 참모 그룹, 손학규 선대위원장 정도가 '야권 연대'에 그나마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는 그룹이다. 손 위원장은 지난달 3일 당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그 이유로 "지방선거 후에 진행될 정계개편을 준비하기 위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호남계는 호남 민심 이반을 이유로 한국당과의 제휴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특히나 한국당과 '한 뿌리'인 구 바른정당계 역시 야권 간 연대나 이른바 '보수 통합' 등 정계개편 논의에는 부정적이다. 유승민 공동대표는 지난 5일 외신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한 사람(김 후보)은 당대당 통합, 한 사람(안 후보)은 양보만 얘기하다보니 서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며 "선거 8일 전에 당 대 당 통합을 꺼내는 건 정치적으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얘기고, 여론조사와 같은 원칙도 없이 무조건 상대방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라는 것도 무리"라고 양자를 싸잡아 비판하며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에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유 대표는 "저는 김 후보가 한국당 후보로 확정되기 전인 지난 4월 초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후보 단일화 얘기를 했었다"며 "그 당시 상대 후보와의 합의, 국민적 명분, 당내 반발 극복 등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면서도 "그 이후 단일화 얘기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가 며칠 전 후보 간 만남이 있었던 모양인데, 보도 내용을 봐서는 두 사람이 단일화를 하겠다는 진정한 의지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국당과의 '보수 통합'에 대해서도 바른정당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전해져 온다. 유 대표는 외신기자클럽 토론회에서 "갈라져있던 야당이 새로운 보수, 개혁보수 중심으로 크게 뭉칠 수 있을지, 그것은 아직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 문제"라며 "국민적 명분이 결국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이준석 노원병 보선 후보도 전날 평화방송(CPBC)에 나와 "당대당 통합이라는 건 예를 들어 홍준표 대표 같은 사람들을 안고 가야 된다는 이야기"라며 "홍 대표 같은 분이랑 같은 당 해가지고, 제가 젊은 사람이 신세 망칠 일 있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까지 했다.
한편 전날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가 끝난 이후 안철수-김문수 후보 간 단일화 회동이 있을 가능성이 회자됐으나, 두 후보는 회동을 갖지 않고 토론회 후 각자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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