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될까. 최저임금 산입법 개정안으로 촉발된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정치권을 넘어 학계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내에서조차 엇박자를 낸 사안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자'인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소득 주도 성장론자'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여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 논란이 참전했다. 4일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올해 고용감소 효과를 두고 대략 하한은 3만6000명, 상한은 8만4000명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미국이나 헝가리의 기존 관련 연구결과를 이용한 결과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헝가리에서의 고용 감소 속도를 한국 인구에 적용, 각각 하한과 상한으로 잡았다. 미국은 1977~1980년, 헝가리는 2000~2004년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다.
상한의 근거가 된 헝가리의 사례에 따르면, 2000∼2004년 최저임금을 실질기준 60% 인상한 결과 임금노동자 고용은 약 2% 감소했다. 최저임금을 10% 인상할 때 고용이 0.35% 감소한 셈이다. 하한의 근거가 된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 10% 인상 시 고용은 0.1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 공약인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위해 내년과 내후년에도 최저임금을 15.3%씩 올릴 경우 고용 감소 규모는 각각 9만6000명과 14만4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ILO 고용정책국장 "KDI, 좋지 않은 선례 남겼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다른 나라 사례처럼 고용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은, 국내 통계 수치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해외 사례를 참고한 것이기 때문에 이론상 추측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KDI 발표를 두고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이 국장은 이날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KDI 보고서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분석이 한국을 분석한 게 아니라 미국과 헝가리의 최저임금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가져와 한국에 대입했을 뿐만 아니라 전망까지 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 국장은 "최저임금 효과가 노동시장 사정이나 구조에 따라 다르기에 추정치를 가져와 분석해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자기 나라 최저임금 효과를 예상하고 공개적으로 대서특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그나마 미국과 헝가리에서 가져온 추정치도 편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미국의 경우, 추정치 -0.015는 그나마 옛날 것이고, 그 이후 추정치는 0에 가까웠다. 즉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전체적인 고용감소 효과는 없었다"면서 "그런데도 굳이 이 추정치(1970~1980년대)를 사용하는 것은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를 전제하고 분석한다는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저임금 상대수준이 한국과 비슷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감소 효과가 발생하지 않은 영국(고용탄성치 0) 사례는 인용하지 않은 점을 꼬집기도 했다. 덧붙여 보고서에서 언급한 2000년대 최저임금을 인상한 프랑스의 경우,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면서 불가피하게 시간당 임금을 조정하면서 인상된 최저임금이기에 한국과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이렇게 부정확하고 편의적인, 그것도 외국에서 '수입된' 추정치를 기초로, KDI는 한국 최저임금을 논평했고,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으로 결론냈다. 분석보다는 용기가 더 돋보인다"며 "이런 분석에 한 나라의 경제부처 수장이 침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온갖 잘난 척하면서도 정작 어설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일 것"이라고 '최저임금 속도론'을 주장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겨냥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임 인상, 고용 위축 효과 없다"
이번 KDI 보고서는 또다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기존 보고서와도 내용이 배치된다. 지난 5월 3일, '문재인 정부 1주년 고용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노동연구원은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지난 4월까지 고용동향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위축 효과는 없었다는 것이다.
올해 1~3월 경제활동인구와 사업체 노동력을 조사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량과 노동시간 등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는 대신 노동시간단축 등의 수단을 사용해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11월부터 사업장마다 노동시간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 1월에는 노동시간이 많이 감소했다가 2월부터는 감소폭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임금 총량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다.
홍 연구위원은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처럼 노동 강도가 극대화된 사업장에서 인원 감축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서너 명이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한 명을 빼고 두 명이 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최저임금이 올라도 일자리가 유지되는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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