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이브였던 어제 오후,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선 거창한 세리모니가 있었다. 이름 하여 '새 성전 입당 감사예배'.
구약성서 창세기 11장 1~9절에 나오는 바벨탑(Tower of Babel)을 연상시키는 새 예배당은 연면적 2만 7000㎡(약 8000평)에 지상 5층, 지하 4층 규모. 대예배실 7200석을 포함, 총 8550석의 초대형 예배당이다. 교회 건물로는 한국 최초(아마도 세계 최초)의 돔(dome)형 건물.
정문 앞엔 방귀깨나 뀌는 인사들의 화환이 즐비했다. 그 중 일부는 몰아친 강풍에 쓰러지기도.
前·現職 대통령 '난리 블루스'
오후 3시 시작된 1부는 '예배'였다. 통상의 개신교 예배 형식에 성찬식을 곁들인 것 외엔 특기할 만한 게 없었다.
문제는 2부 '감사와 나눔' 시간에 발생했다. 축사 하러 나온 인사는 전 대통령 YS(84). 손명순 여사와 함께 온 그는, 이 교회 담임목사가 자신의 임기 동안 많은 도움과 기도를 해주었다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어른"이라고 찬사한 후, 찬송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을 불렀다.
이어 MB의 축하 메시지가 대독(代讀)됐다. 그 뒤로 각 개신교단의 대표선수들의 축사. 거기까진 그런대로 괜찮았다.
3부 '축하 찬양'순서. 사회자로 등장한 남녀는 황희만과 조미숙. 여기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황희만(57). 그는, MBC 구성원들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 담임목사가 청와대에 압력을 넣어 MBC 부사장을 시켰던 자다. 지금은 무슨 MBC 자회사 사장을 하고 있단다.
림인식 목사(노량진교회 원로)의 축도로 행사가 마무리되기 직전, 담임목사가 나와 내빈을 소개했다.
전 국회의장 김수한·김형오, 경기지사 김문수, 전 총리 정운찬, 전 국정원장 김승규, 전 민주당 대표 정세균,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상득·이재오·윤석용, 민주당 국회의원 김영진, 전 과학기술부총리 김우식, 김덕룡 전 대통령 특보, 허준영 코레일 사장, 손병두 KBS 이사장 등(無順).
무슨 정치판 행사인가.
문화명령 짓밟은 '저주의 굿판'
호화판 낙성 행사는 장장 두 시간 반이 지나서야 끝났다. 한 여름을 방불하는 실내에 있다 나오니, '귀빈'들이 타고 온 차들이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아! 기독교의 하나님이 성서(聖書)를 통해 내리신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또는 위임통치명령)과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 지상대명령(The Great Commandment, 또는 선교명령) 중 문화명령(창세기 1장 26~28절)이 여지없이 유린되는 현장.
860억 원(땅값 빼고)이 들어갔다는 저 새 예배당은 과연 하나님께 바쳐진 걸까?
현대백화점 천호점 맞은편에서 쥐포 구워 파는 어르신이 바친 건축헌금, 명일여고 대각선 도로 상에서 상추 파는 과부 할머니가 바친 두 렙돈도 들어 있을 텐데.
오늘은 AD(anno domini) 2011년 12월 25일. 감격스런 성탄절. 같은 장소에서 성탄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만약 예수께서 서울에 오신다면, 과연 저 십자 바벨탑을 방문하실까?'
밤엔 종로구 이화동 '거리에 천사' 사무실이나 가야겠다. 그래서 그곳에 온 아름다운 사람들과 다운타운에 나가 심야급식이나 해야지. 거기선 예수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27년 째, 한 대형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평범한 교인입니다.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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