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일개 블로거인 드루킹의 옥중편지를 대서특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일보> 스스로도 "이 글이 모두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구속 중인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을, "김경수에 속았다"는 매우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1면 톱기사(5월 18일 자 <조선일보>)로 밀어 올렸다. 결국 <조선일보>가 오랜 세월 보여 온 행태인 정치적 개입, 선거 개입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특종 때만큼이나 <조선일보>의 검은(?) 의도가 가감 없이 드러난 사례다.
그런데 이는 <조선일보>뿐 아니다. 한 언론사의 분석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무려 783건, 하루 평균 23건의 드루킹 기사를 쏟아냈다고 한다. 이는 <조선일보>의 577건을 압도하는 분량이다. 특이한 점은 일방적 주장에 근거한 추측성 기사는 이처럼 한여름 홍수처럼 쏟아내는 데 반해 경찰청의 댓글 공작 기사는 고작 7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한 블로거 관련 기사가 국가기관의 그것보다 무려 110배나 많다. 언론 역사상 이렇게 많은 기사를 일시에 쏟아부은 경우가 또 있던가?
그렇다면 김경수가 지시했을까?
모든 것은 특검에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김경수가 드루킹에게 댓글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의 조건들을 종합해 보면 김경수가 그러한 지시를 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구성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캠프는 '문재인 대세론'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수적으로나 실력 면에서나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지지기반이 겹치는 안희정, 박원순이 캠프를 꾸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안과 박이 사람 기근에 시달리니 문 캠프에서 (과장을 조금 보태면) 사람을 빌려주는(?) 수준이었고, 가는 사람도 나중에 다시 오는 것으로 양해를 구하고 가는 식이었다.
캠프에만 사람이 넘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일상생활 대부분을 문재인을 위해 투자한 지지자들이 있다. 이른바 문빠들이다. SNS에 글 올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기사 퍼 나르고 기사에 댓글 다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그 열정이 과도하다 보니 다른 후보들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박원순은 이를 가지고 '친문 패권주의'라 비난에 나서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문 후보가 직접 나서서 자중하라고까지 했을까.
캠프 안팎으로 사람이 너무 많아 골치였고 지지자들이 인터넷 활동을 너무 맹렬하게 해 문제였다. 그런데 김경수가 드루킹에게 댓글작업을 지시했다? 상식적이지 않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주요인 중 하나가 댓글공작 아니었나? 그래서 논리적이지 않다. 만에 하나, 김경수가 2016년 10월 드루킹에게 댓글공작을 지시한 게 사실이라면 대선 기간 중엔 드루킹에게 댓글공작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었어야 차라리 논리적이다. 직접 만난 게 몇 번 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대선 기간에도 댓글공작을 시킨다? 정신 나간 사람 아닌가.
댓글공작 지시받았다면서 돈은 왜 주나?
김경수가 드루킹에게 100만 원을 격려금으로 지급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드루킹은 유력 인사들에게 돈을 주면서 그들을 관리하는 스타일로 보인다. 송인배 청와대 비서관에게 200만 원, 김경수 의원실 한모 보좌관에게도 500만 원을 건넸다. 그런데 김경수로부터는 돈을 받았다?
또 작업을 지시했다면 지시자가 지시받은 사람에게 작업에 필요한 비용과 수고비를 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드루킹은 송인배와 김경수 보좌관에게 오히려 돈을 줬다. 그는 2016년 10월 매크로를 시연한 자리에서 고작 '격려금' 100만 원만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김경수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이 동원되는 작업인데 그 액수가 터무니없이 작기도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댓글공작이라는 엄청난 일을 수행했는데 이후 대선 때까지 수고비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비밀공작팀을 그렇게 관리하는 캠프가 과연 있을까? 김경수가 지시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이지 않다.
'김경수 대 드루킹'이 아니라 '기득권 대 개혁세력'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 보자. 지방선거에서 드루킹 논란이 여당의 고공행진이나, 또는 경남지사로 출마한 김경수의 상승세에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논란 이후 김경수와 김태호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그럼에도 <조선>, <중앙> 뿐 아니라 많은 매체들이 드루킹 기사를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 <중앙>은 왜 김경수를 짝사랑하듯 쫓아다닐까? <조선>, <중앙>은 왜 그렇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김경수 죽이기'를 위해 '전사적 총력전'에 매진하는 것일까.
지금 보수언론이 목표로 삼는 것은 김경수를 떨어뜨려 김태호를 당선시키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작게는 김경수라는 친노·친문의 적자를 죽이려는 것이고 크게는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개혁세력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다.
그를 지금 죽여야 한다 #1: 개혁세력의 아이콘
그들은 김경수를 문재인을 이을 개혁세력의 아이콘으로 간주한다. 지금도 야당은 문재인 한 사람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데 개혁세력에서 이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정치인이 나오면 어떻겠는가. 이런 식이면 앞으로 기득권 보수가 다시 권력을 쟁취할 가능성은 '0'에 다가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경수는 서울대 출신에 인물마저 좋은 데다 깨끗한 이미지의 동안이다. 지난 대선 문재인의 약점 중 하나는 그의 이미지였다. 중장년층에 퍼진 "대통령이 되면 뭔가 뺏어 갈 것 같다"는 이미지, 그리고 중장년 여성들의 "우리 남편 보는 것 같다"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꽤 애를 써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김경수는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는 참신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소유자다. 싹을 잘라야 한다.
그를 지금 죽여야 한다 #2: 친노의 적자
한국사회에서 가장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친문은 그 자체로 보수 기득권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번식력 외에 친노에서 친문으로 진화할수록 인물도 좋아지고 세련됨마저 더해지고 있다. 보수 입장에선 그들이 상종 못 할 친노의 적자이자 친문의 젊은 상징인 김경수는 눈엣가시다. 그래서 다른 정치인과는 다르게 김경수에게만큼은 감정이 듬뿍 실릴 수밖에 없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가 각광 받는 정치인 반열에 올라서는 그 모습을 과연 보수 언론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까? 노무현을 상전으로 모셔야 했던 과거의 치욕이 다시 떠오르지 않겠는가. 당연히 김경수는 제거해야 한다. 특히 노무현의 양팔로 불리던 이광재와 안희정이 모두 사라져버린 지금 김경수만 제거할 수 있다면 친노의 후예들은 대충 정리되는 것이다.
그를 지금 죽여야 한다 #3: "김경수를 내놓으시오!"
이번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수많은 캠프가 있는데 그중 가장 핫한 캠프는 바로 김경수 캠프다. 그의 인기 때문이다. 그가 경남의 고성 출신으로서 진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김해에서 정치를 한다는 지역적 확장성 때문만은 아니고, 출중한 외모의 서울대 출신이어서만도 아니며, 노무현의 마지막을 함께 한 비서관이어서만도 아니다. 이 모든 것에 더 해 뭔가가 있다.
지난 대선 이후 경남 사람들은 거의 김경수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다. 보수의 텃밭인 '부·울·경(부산·울상·경남)' 지역에서 고생 끝에 개혁적 대통령의 탄생을 보게 된 많은 사람들은 "해냈다," "여한이 없다"며 기뻐했는데 경남 사람들은 좀 달랐다. "한 번 더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 가운데엔 김경수가 있었다.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모두가 "김경수라면 돕겠다"는 식이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 때의 뼈아픈 기억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청와대에 대고 줄기차게 "김경수를 내놓으시오"를 외쳤다. 처음엔 그가 초선 의원인데다가 대통령 옆에서 보좌하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의 지방선거 차출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영남 공략의 시급함이 강조되면서 의원직을 사퇴하고 경남으로 내려가게 된다. 대중적 인기뿐 아니라 지지세력에서도 그는 이광재, 안희정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제거의 대상이다.
미래를 결정하는 결투
이 사건의 핵심은 '김경수 대 드루킹'이 아니다. 이 논란의 본질은 한국사회 '기득권 대 개혁세력'이고, 더 축약하면 '보수언론 대 친문'이다. 친노에서 더욱 진화해 그 지지 기반을 넓혀가는 '친문 죽이기'인 것이다.
김경수는 이미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선거 이후 '김경수 경남지사'는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수위를 다툴 것이다. 이게 다 보수언론이 애쓴 덕이다. 바로 그 때문에 보수언론은 자신의 치명적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김경수에게 상처를 내기 위해 드루킹 사건에 더욱 매달릴 것이다. 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보수와 친노의 싸움은 2002년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2009년엔 보수의 승리였고 친노는 폐족이 됐다. 그런데 노무현의 비극적 사망은 문재인을 다시 세상 밖으로 밀어냈고 2017년 친노는 친문으로 버전업(?) 해서 다시 승리했다. 수세에 몰린 보수는 지금 김경수를 노리고 있다.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는 이 싸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이 뒤얽히며 벌였던 싸움에 이어 가장 긴 싸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싸움은 박근혜 탄핵과 함께 군부독재의 역사가 마무리된 지금,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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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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