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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친미 대통령" 최은배 판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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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친미 대통령" 최은배 판사를 위한 변명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17> 법관의 표현의 자유

최은배 판사의 페이스북 글을 둘러싼 최근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표현의 자유, 한미 FTA 등과 같은 논란의 출발점에는 사회관계망 사이트(SNS)를 과연 공적 공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적 공간으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공적 공간으로 보는 사람들은 최은배 판사의 글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사적 공간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개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1월 25일 조선일보는 전자의 논리를 밀고나가 그 글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는 기사를 냈고, 최은배 판사 본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의 사적 성격을 강조하며 이에 맞서고 있다.

▲ 최은배 판사
그러나 이 문제를 지금처럼 '공적 공간/사적 공간'이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해서는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규명하기 어렵다. '공식적/비공식적'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구분 범주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원래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하지만, 사회과학에서 그것은 흔히 '행위자', '이익', '접근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에서 서로 구분된다. '행위자'의 측면에서 보면, 행위자가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개인적 목적을 위해 벌이는 행동은 사적인 것으로, 공동체의 복리를 위해 벌이는 행동은 공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영리활동과 같이 사적 이익을 위한 민간의 행위는 사적인 것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적 부문의 행위는 공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접근성'의 관점에서 보면, 물리적 공간, 활동, 상호작용, 정보, 자원에 대한 접근여부에 의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구분될 수 있다.

이 기준들 중 페이스북의 사적/공적 성격과 관련한 논란은 주로 '접근성'의 측면에서 발생한다. 비록 접근성의 수준에서는 각기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싸이월드,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적인 공간으로 간주한다. 페이스북은 개인 일기장이나 낙서장과 같은 사적 공간과는 달리, 그리고 법정, 강의실, 사무실, 공연장, 전시장, 버스, 지하철, 도로, 공원, 커피숍과 같이,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개된(open) 곳이라는 점에서 공적인(public)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인 공간도 형식이나 격식 그리고 의례를 중요하게 따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시 공식적인(formal) 것과 비공식적인(informal)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공적인 것 중에도 법정 판결문, 학술 논문, 인쇄물, 공연장, 전시장 등은 행위의 공식성이나 격식 혹은 의례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식적' 공적 영역으로 분류될 수 있는 반면, 버스, 지하철, 도로, 공원, 커피숍 등은 그것들을 중요하게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공식적'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페이스북은 공원이나 선술집 그리고 커피숍처럼 행위의 공식성과 격식이 별로 요구되지 않는 비공식적 공적 공간이다. 페이스북에 게시된 글은 자동으로 기록되며 비교적 광범위하게 공개된다는 점에서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개인적인 비망록으로 구성되고 끊임없이 수정되며 일시적이고 비공식적이라는 점에서 인쇄된 논문이나 연설문 혹은 판결문 등이 지니고 있는 정도의 공식성과 공적 성격을 띠지는 못한다. 페이스북이 지닌 이러한 비공식적 성격은 그것이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의 대면적 상호작용에서는 대체로 발견할 수 없는 자신과 친구들에 대한 매우 진솔한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이런 비공식적 성격 때문에, 최은배 판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라는 공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과 같은 개방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친구들 사이의 모임이나 활동이 의당 사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원에서 친구들과 친목 모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프라이버시를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공원에 있는 누구라도 공원의 비공식 모임에서 오가는 대화를 엿들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모임에 끼어들어 분란을 일으키거나, 모임 참가자의 이름까지 알려질 정도로 대화 내용을 공식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위가 되기 쉽다.

물론, 언론인들은 공적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공적 기록을 통해서 얻은 사실을 관련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공식 매체에 공개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공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그것의 공식성/비공식성을 고려하여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해야 하는 책무도 져야 한다. 어쨌든, 이 문제의 본질은 조선일보가 한미 FTA에 관한 최은배 판사의 개인적인 페이스북 의견을 공식 매체를 통해 스스로 공식화시켜 놓고서는, 마치 최은배 판사가 공식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한 것인 양 둔갑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최은배 판사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공격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조선일보와 보수 세력의 억지에 불과하다.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진행된 친구들과의 비공식 친목 모임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말하는 그 어떤 공무원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비판받을 수 없듯이, 비공식적 공적 공간인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공식적 직무와는 상관없이 친구들에게 한미 FTA에 관한 정치적 견해를 밝힌 최은배 판사의 행위는 그저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문제일 뿐이다.

결국, 남는 문제는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 날을 잊지 않겠다."는 최은배 판사의 페이스북 글이 얼마나 일반인의 상식과 어긋나는 말이냐 일 텐데,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은 대통령의 형이 이미 한 말이고, 무수히 많은 한국 시민들이 한미 FTA를 굴욕적 협상이라며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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