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아줌마, 오늘부터 오지 마세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아줌마, 오늘부터 오지 마세요"

[고령화, 돌봄의 사회화] ③ 장밋빛 성과 뒤에 숨은 요양보호사의 한숨

고령화·핵가족화·여성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노인 돌봄을 '제도'로 추진한 것이 장기요양보험제도이다. 노인을 돌보는 '가족 내 무급노동'을 '사회적 돌봄'으로 전환하는 의미 있는 제도임은 분명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지 10년째를 맞이하여, 정부는 노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가정의 수발 부담이 경감되었으며 여성의 일자리도 늘었다고 평가를 내놓았다.

그런데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지탱하기 위한 10년간 생계부양자인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애써 외면하려 한다. 현재 140만 명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36만 명으로 자격증 취득자의 25%만 일하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시급제 최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이다. 특히 재가요양보호사의 고용 불안정은 심각하다.

시급제 낮은 임금, 불안정 노동

"아줌마, 오늘부터 오지 마세요."

어느 날 김 모 요양보호사는 출근 준비를 하는데, 돌보는 82세 어르신의 보호자로부터 문자 하나를 받았다. 근무하는 센터에 전화해보니, 다른 센터로 보호자가 옮긴다며 거듭 죄송하다고 한다. 그날로 김 요양보호사는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다른 재가센터에 전화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해고뿐만 아니라 어르신이 요양원 입소, 사망, 장기 입원을 하면 일자리를 잃는다. 시급제 최저임금이라서 일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다. 재가요양보호사는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해도 언제든지 일자리가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안정적인 노동시간과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방문 요양 3·4등급 이용자가 1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3시간씩 주 6일 일하고 받는 월급은 65만 원 남짓이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두 군데, 세 군데를 돌아야 하는데 이동할 때 드는 교통비는 요양보호사의 몫이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기면서 자격증을 딴 10년 차 오 모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돌봄 전문가로서 자부심이 크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한탄한다.

"우리 요양보호사는 최저임금에 목매다는 형편이죠. 그래서 처우개선비를 달라고 요구해서 그나마 조금 받았는데, 2018년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싹 없애버렸어요. 여전히 최저임금인데."

요양기관은 공단이 지급하는 시간당 수가에서 운영비를 제외한 금액을 요양보호사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데, 임금은 항상 최저임금에 맞춰진다. 복지부는 저임금 해소 대안으로 2013년부터 시간당 625원 처우개선비를 지급하였다. 요양보호사에게는 상당한 임금 상승효과를 보았다. 그런데 2018년부터는 기관 자율에 맡겼고 기관에서는 지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는 2017년 10월 도입된 장기근속장려금 제도(보건복지부에서 장기요양기관에 3년 이상 동일기관에서 근무한 종사자에게 지급)는 단기근속 비율(근속연수 1년 미만)이 76.4%인 재가요양보호사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 재가요양보호사가 일흔이 넘은 어르신을 부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근골격계 질환∙비인격적 대우

최근 이 모 요양보호사는 허리디스크 중증 진단을 받았다. 장기요양 2등급 어르신을 휠체어 이동하고 체위를 변경하면서 얻는 병이다.

"요양 일 하기 전에는 허리가 멀쩡했는데, 5년째 들어서면서 안 좋아졌어요."

요양보호사의 업무 중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 대한 체위변경, 이동, 목욕 등은 신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으며 상당수의 요양보호사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린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생기는 퇴행성 질환으로 여겨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적용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재가요양보호사는 일하는 장소가 가정이고, 여성 혼자 방문해 일하다 보니 이용자와 이용자 가족의 부당한 업무지시나 도둑누명, 언어폭력, 성희롱에도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장기요양기관이 난립하고 기관 생존을 위한 이용자 확보 경쟁 현실에서는 기관의 관리책임의 역할은 결국 이용자나 보호자가 원하는 요구만 들어주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기관에서도 요양보호사 편에 서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방어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진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요양보호사만 탓하고, 일을 그만두게 하면 그냥 억울한 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받아요."(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 '2017년 노동상담 사례집')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의 2017년 노동상담 사례 443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노동조건(임금, 실업, 퇴직금, 부당해고 등)에 대한 상담이 64.6%, 업무(부당업무, 업무고충) 7.7%, 건강(산재, 직업병) 5.9&, 인권(성희롱, 폭언/폭행) 3.8%다.

돌봄노동의 고귀한 가치, 존중되어야

요양보호사의 일은 인간과 인간이 직접 대면하여 혼자 일상이 불가능한 누군가를 보살피는 휴먼 서비스를 특징으로 한다. 돌봄노동 또한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노동처럼 공적인 필요에 따라 국가가 제도를 통하여 만든 직군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돌봄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돌봄의 가치를 국가와 지자체가 인정하고 지지하며 그만큼의 공적 책임과 역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김희강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돌봄이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지탱하고 견인하는 가치이자, 국가운영의 주축이 되는 원리"라고 강조한다.

지자체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국가와 지자체는 요양보호사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시급 노동의 고리를 끊을 수 있고, 직업적 자긍심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장기요양기관이 과당경쟁 제체가 아닌 서비스 질로 승부하는 공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가 구립 직영 재가요양기관을 설립하여 지역사회 어르신의 욕구에 대해 선도적인 위치에서 통합적으로 관리, 조율하여 공공으로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조례 제정을 통하여 요양보호사의 노동, 권익, 자부심이 지켜질 수 있는 지역사회 제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