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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선거' 부추기는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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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돈 선거' 부추기는 선관위

[초록發光] 무늬만 선거공영제, 개혁이 절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가 심각하게 출마 여부를 고민한다는 소문이 떠돈다. 기탁금만 5000만원. 선거 공보물 1장짜리 인쇄만으로 6000여만 원은 족히 든다. 법적인 선거비용 제한액의 50%만 사용하더라도 20억 원이 넘는 수준이다. 물론 이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거나 15% 이상의 득표를 한다면 사용한 선거비용의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감 선거는 정당 선거가 아니고, 현역 교육감에 비해 상당한 인지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경선에서 당선된 민주진보 후보자도 주저하고 있는 마당에, 수십억 원을 감당하며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명시적으로 '선거공영제'를 시행한다. 선거공영제는 선거의 관리·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후보자 개인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국가가 부담하는 제도를 말한다. 헌법 116조 2항은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한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선거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고, 누구나 균등하게 선거운동 기회를 주고, 무엇보다 국가가 관리할 때 과도한 선거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의 취지다.

그런데 실상은 무늬만 선거공영제에 불과하다. 선거는 '돈 많은 사람들의 잔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감뿐만 아니라 광역단체장 후보도 50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기초지방의회 후보자 기탁금도 200만 원이다. 지역구 가구 수에 맞게 수만 장에서 수백만 장을 제작해야 하는 책자형 공보물, 수천만 원이 드는 대형 유세차량, 벽보와 현수막, 선거사무실 비용과 선거사무원 채용 등 선거비용 한도액이 지역구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비용이 적은 지방의회의원 선거도 4000~5000만 원은 감당해야 한다. 유력한 정당의 후보자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규모를 지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20대 총선 당선자 현황을 보면, 선거는 특정인들만의 축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53명의 지역구 후보자 중, 여성 당선인은 26명으로 10.2%에 불과했다. 30세 미만의 당선인은 한 명도 없다. 30세 이상 40세 미만의 당선인은 단 1명뿐이다. 반면 60세 이상 당선인은 70명이다. 전체 당선인의 27.6%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비례대표 당선인의 상황은 조금 낫다. 47명의 당선인 중 여성이 25명이다. 정당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할 때는 5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되, 후보자명부의 순위의 매 홀수에는 여성을 추천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공직선거법 47조) 그러나 나머지 상황은 지역구 결과와 유사하다. 40세 미만 당선자는 2명에 불과하고, 60세 이상 당선자는 16명으로 전체 비례대표 당선자의 34%다.

국회의원들의 재산 현황을 보면 특정인들만의 축제라는 사실이 더 명확해진다.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은 40억2천7백만 원이 넘는다. 청년,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는 물론이고 일반 직장인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지방의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제도 정치는 다양성을 상실한 상태다.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성들과 거대 정당만 살아남는 불공정한 구조다. 선거공영제가 전혀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불공정을 더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거공보물은 유권자가 후보자와 정당을 판단할 수 있는 주요한 선거운동 매체다. 돈이 없는 후보는 1장짜리만 제작하고, 돈이 많은 후보는 6장짜리를 만들기도 한다. 돈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디자인과 종이의 질이 달라진다. 돈 많은 후보자와 정당은 화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보물과 같은 홍보수단은 모든 후보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선거공영제의 취지다. 왜냐하면 어차피 공보물은 정책이나 공약, 후보자의 이력 등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지, 유권자가 공보물의 디자인이나 면수, 색상 등으로 후보자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통의 홍보매체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일괄적으로 제작하여 배포하는 것이 더 공정한 룰이다.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공보물 발송 책임이 있음에도 후보자와 정당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후보자나 정당을 홍보할 수 있는 선거공보물은 선거기간 중에 각 가정으로 배송된다. 이 공보물은 후보자나 정당이 제작하는 대신, 선거관리위원회는 발송을 책임진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후보자나 정당이 제작한 선거공보물은 '시・군・구선거관리위원회로 제출'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자와 정당에 공문을 발송해, 읍・면・동 주민센터로 이송해줄 것을 요청한다.

경기도의 읍면동은 554개, 서울은 423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요청대로라면 후보자와 정당이 운송비를 부담해야 한다. 액수가 만만치 않다. 헌법은 선거에 드는 경비는 후보자와 정당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돈을 더 쓰는 선거로 유도하고 있다. 선관위에 항의하면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위해서 협조해달라는 말만 반복한다. 선거관리위원회 스스로가 헌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선거공영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흔히 선거공영제라고 하면 정당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을 떠올린다. 2017년 상반기에만 지급된 정당 국고보조금의 총액은 630억 원이었다. 이 중에서 각 당에 지급된 대통령 선거 보조금은 421억 원이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이 가져간 보조금 총액은 각각 185억 원, 180억 원, 129억 원. 거대 정당들의 돈 잔치였다. 올 2018년 상반기에만 108억여 원의 국고보조금이 지급됐다. 더불어민주당이 31억, 자유한국당이 32억,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쳐 29억여 원 규모다. 이렇듯, 현재의 선거공영제는 거대 정당을 지원하는 구조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비용'으로 비유되는 선거공영제가 '거대 정당이 독식하는 비용'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돈이 없어도 누구나 균등하게 선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선거공영제의 취지다. 정치참여의 장벽을 높이는 고액기탁금 제도를 폐지하고, 선거비용 반환 조건도 낮춰야 한다. 공통으로 제출해야 할 공보물, 벽보, 현수막 등도 선관위가 일괄적으로 제작하여 배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러한 홍보 매체들은 돈이 많은 후보자와 그렇지 않은 후보자 간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에게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획득한 정당의 득표율과 연동하거나 진성당원 숫자 대비 당비납부액 비율과 연동하여 배분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매번 선거를 경험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선거공영제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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