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16일 급냉각된 남북·북미관계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두 정상 간 직통 전화인 '핫라인'을 통해 오해를 해소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 특보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북아평화경제협회 포럼 '남북정상회담 평가와 북미정상회담 전망'에 참석해 한 강연에서 "오늘부터 일어난 현상을 볼 때,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예측하기 참 어렵다"며 "어제까지는 참 좋았는데 오늘부터는 어렵다고 본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문 특보가 언급한 '오늘 상황'은 북한의 남북 고위급 회담 전격 취소 통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1부상의 담화 발표 등이다. 문 특보는 "북한이 '맥스 선더' 군사훈련과 태영호 전 주영 북한 대사 문제, 대북 삐라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는 성의를 다했는데 남측이 안 하니까 (회담을) 하기 어렵다'고 하고 있다"며 "김계관 부상도 담화를 발표하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하는 '핵탄두를 테네시주(州)로 실어내야 한다'는 얘기나 화학무기, 인권 문제, 선(先)핵폐기 후(後)보상 등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안 할 수도 있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문 특보는 현 상황에 대해 "우리 입장에서 보면, 공을 들여놨는데 북이 저리 나오니 화날 만도 하다"면서도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통화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오는 22일 문 대통령이 미국에 가기 전에 통화를 하고 가야 할 것"이라며 "남북 정상 간 직접 통화가 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맥스선더' 훈련에 미국 전략폭격기 B-52가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에 "아직 전개가 안 됐고 (당초) 내일부터 전개할 것이었지만 오늘 송영무 국방장관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났고 B-52는 전개가 안 되게 얘기했다"고 언급했다. 이날 오전 한 정부 관계자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B-52는 이번 훈련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특보는 다만 부분적인 어려움에도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 변화에 관한 "상황을 낙관한다"며 "지난해의 어려움울 생각한다면 문 대통령이 여기까지 잘 해왔고, 지금 있는 어려움 정도는 극복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북미 회담 전망은?…"비핵화 단계마다 쟁점, 그럼에도 희망 걸어본다"
문 특보는 내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외교사에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 실패해도 성공으로 포장하거나, 실패할 거면 아예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며 낙관론을 폈다.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 2번 갔고, 김정은 위원장과 심층적 얘기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며 "거기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을 2번 만난 뒤 '현안을 상당히 많이 파악하고 있고 복잡한 사안을 잘 이해한다. 결정을 단호하게 한다'고 얘기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하다가 국무장관을 하는 폼페이오 장관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평가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다만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까 의구심이 많다"는 국제적 여론을 언급하며 "지난주 미국 워싱턴 D.C.에 가서 미국 전문가 200~300명을 만나보니 80%는 회의적이었다. '김정은도 트럼프도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지도자 둘이 만나는데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었다"고 특히 미국 전문가들의 회의적 반응을 소개했다.
문 특보는 '북핵 문제'란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물질 △핵물질을 무기화하는 핵실험 △핵물질과 미사일 등 관련 물질·기술의 비확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무기의 운반·투발수단 등 4가지가 핵심임을 언급하며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비핵화 논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한국이 주장하는 비핵화 개념은 1992년 선언에 기초를 두고 있다"며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 '남과 북은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우리는 지켰지만 북한은 지키지 않았다. 북이 1992년 합의를 지키면 (핵 문제는)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물론 북한은 '남한은 미국 핵우산이 있지 않느냐. 핵무기 비대칭 국면이니 우리도 핵을 갖겠다'고 할 테지만, 미국은 1992년 한국에 있던 전술핵을 철수해갔고 지금 한국에는 핵무기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지난 8일 볼턴 보좌관도 백악관 브리핑에서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이 선언에는 핵사찰 방법에 대한 남북 간의 합의도 포함돼 있는데, 사찰은 현재 상황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기될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문 특보는 "핵무기 해체 과정은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라며 "북한이 가진 핵물질과 핵시설, 핵탄두, 미사일 등을 국제사회에 신고해야 하고, 그러면 신고한 것을 가지고 (그것을 토대로) 핵물질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가서 사찰하고 핵폭탄은 NPT상의 P-5(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가 사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사찰도 3가지가 있는데, 해당 국가가 허용한 것만 보는 '일반사찰'과 해당국은 보여주지 않겠다고 해도 IAEA가 파악한 것을 보는 '특별사찰', 그리고 신고하지 않은 것까지 미국이나 IAEA가 자의적으로 들여다보는 방식의 사찰이 있다. 미국이나 IAEA는 세 번째를 주장하겠지만 북한은 이를 받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특보는 사찰 다음 단계인 '검증'에 대해서도 "(예컨대) 북한이 6차 핵실험 때 수소탄을 쐈다고 했는데 그럼 이것을 어떻게 (검증)할 것이냐. 실험과 관련된 모든 기술적 문건을 넘겨서 과학자들이 분석을 해야 한다. HEU도 얼마 동안의 기간만큼 가동했는지, HEU를 얼마나 뽑아냈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 얼마나 되는지 등 하나하나를 다 봐야 한다"며 "오래 걸릴 것이다. 수십만 페이지를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폐기' 역시 만만한 과정이 아니며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뿐 아니라 불가역적(CVID의 'I'. Irreversible) 폐기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문 특보는 지적했다. 그는 "핵무기 관련 가역적 현상은 사람 때문에 생긴다. 모든 지식이 사람 머릿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라며 "북한 핵과학자는 1만5000명 수준으로 상당히 많다. 이들을 전직(轉職)시키고 평화적 목적을 위해 미국 등 타국으로 데려가 살도록(이주)해야 한다"며 지난 10일 일본 <아사히> 신문이 '미국이 북한 핵과학자의 미국 이주를 요구했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을 언급했다.
문 특보는 또한 북미 간 풀어야 할 문제로 이같은 △비핵화의 기술적 문제 및 △미국이 선호하는 '일괄타결'과 북한이 주장하는 '행동 대 행동', '단계적·동시교환적' 해법 간의 입장차 문제와 함께 △"얼마나 빨리 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재선에 관심이 많다. 그러면 2020년 11월까지는 가시적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 과정의 복잡성을 고려했을 때 2년 반만에 되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그나마) 북한은 최대한 느긋하게 하려고 할 것"이라며 "다음 문제는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를 언제부터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신고 정도 하면 그때부터 할 것이냐? 그럴 경우 유엔 안보리가 제재 해제 결의안을 채택해야 하는데, 그 과정도 복잡하다. 북한은 빨리 해달라는 것이지만 국제사회는 (나름의) 작동 메커니즘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럼을 주최한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고, 이화영 전 민주당 국회의원,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등이 이사진 및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홍영표 신임 민주당 원내대표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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