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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다. 안철수의 1500억이 대선용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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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다. 안철수의 1500억이 대선용이라 해도…

[김종배의 it] 귀에 박힌 못 빼고 눈 호강할 기회 얻었으니

처음에는 의아했다. 1500억 원에 해당하는 안철수연구소 지분 절반을 사회에 내놓기로 한 안철수 원장이 기자회견(오늘 예정)을 한다기에 의아함을 넘어 기묘하기까지 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상기하면 그랬다. 대놓고 자랑하고 뽐내는 것 같아 해괴했다.

한데 아니었다. 안철수 원장이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을 읽어보니 기자회견을 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안철수 원장은 이메일을 통해 분명히 밝혔다. "국가와 공적 영역의 고민 못지않게 우리 자신들도 각각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의 동참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안철수 원장은 '개인 플레이'를 하려는 게 아니라 '조직 플레이'를 하려는 것이다. '선행'을 넘어 '문화'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의 "작은 실천"을 사회운동으로 확산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1500억 원을 내놓는 것이고, 기자회견을 하려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려는 것이다.

▲ 안철수 원장 ⓒ프레시안(김하영)
정치권과 언론은 한 목소리로 진단한다. 안철수 원장의 사회 환원을 대선 출마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한다. "많은 분들의 동참" 희망을 세력 구축의 일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상관없다. "국가와 공적 영역의 고민 못지않게"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그가 정말 대선에 뜻이 있는지 다시 한 번 곱씹게 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그의 사회 환원이 말 그대로 "작은 실천"에 한정된다 해도 사회 문화를 바꾼다. 그래서 좋다. 이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의 사회 환원이 대선용일 경우인데, 이 또한 나쁠 게 없다. 국민 입장에선 전혀 밑질 게 없다.

새로운 시도다. 이전 대선 후보들과는 상당히 다른 행보다.

없지 않았다. 이전 대선 후보들 가운데 재산 사회 환원을 약속한 사람이 더러 있었다. 가깝게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러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할 때 재산 사회 환원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날 때까지 그의 사회 환원은 '입'에서만 맴돌았다. 그저 약속이었지 실천이 아니었다.

정몽준 의원도 있다. 그 또한 범현대가와 함께 5000억 원의 재산을 출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차원이 달랐다. 개인적인 차원이었다. 아무리 넓게 봐도 가족 차원에 그친 시혜적 기부였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의 사회 환원은 '개인'을 넘어 '조직화'를 시도하는 환원이고, '선행'을 넘어 '문화'를 조성하려는 환원이다. 일종의 사회운동인 셈이다.

안철수 원장의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그의 '가치'는 생명력을 얻는다. 무수한 정치인이 '18번'처럼 읊조리는 '깡통 가치'와는 달리 구체성을 확보한다. 이것은 철학이자 비전이다. 조중동이 윽박지르다시피 요구했던 '대선 후보 안철수'의 철학과 비전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덕에 국민은 중요한 평가잣대를 확보한다. 나눔없는 성장에 질려버린 국민 입장에선 실현 불투명한 장밋빛 공약보다 훨씬 실용적인 평가기준을 얻게 되는 셈이다. '공약집'만 보고 대선 후보를 평가하던 데서 벗어나 실천 정도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니 평가의 구체성 또한 배가된다. 국민 입장에서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없다.

물론 한계는 있다. 기부 릴레이가 이어진다고 해서 안철수 원장이 이메일에서 밝힌 "건강한 중산층의 삶이 무너지고" "젊은 세대들이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온정주의의 틀에 갇히면 구조적 문제를 희석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안철수 원장이 정말 대선에 뜻이 있다면 사회 환원만으로 '퉁' 칠 수는 없다. 그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 중 하나"로 지목한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 그리고 그 근본에 있는 교육'에 대한 "국가와 공적영역"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 전반에 대한 입장도 밝혀야 한다.

하지만 그 문제는 차후의 일이다. 아울러 "작은 실천"의 성과에 따라 추진력이 달라지는 문제다.

지금 국민 입장에서 중요한 건 새로운 감상거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입의 향연'에 질려하던 차에 '몸의 시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뭔가 해드리겠다'가 아니라 '뭔가 보여드리겠다'고 하니 귀에 박힌 못을 빼고 눈 호강을 할 기회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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