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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실 가득 채운 메모지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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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원순 시장실 가득 채운 메모지의 의미는?"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10>서울시장 보궐선거 참관기

올 해 3월 나는 참여연대 활동을 잠시 접고 안식년을 즐기고 있었다. 15년만의 휴식이었으니 내게는 몹시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9월 2일 백두대간에 있는 그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이후 50여 일간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서울시장 선거에 빨려 들어갔고 정신없이 뛰고 또 뛰었다. 내가 맡았던 일은 여러 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도와 달라 읍소하는 일, 후보의 현장방문과 유세를 지원하는 등의 실무적인 일이었다. 그나마도 선거운동은 처음이라 어설프기만 해서 후보나 주변분들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승리의 동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박원순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대와 역사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을 여기에 세웠고 밀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와의 아름다운 합의가 그랬다. 돈도 조직도 없는 후보에게 펀드를 몰아주고 자원봉사자가 되어주고 지역책임자가 되어주는 일도 어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경선투표를 위해 투표마감 직전에 마치 수험생이 고사장 안으로 뛰어가듯 몰려가던 젊은이들을 보면서, 광화문 집중유세를 위해 몰려든 1만 명이 넘는 인파를 보면서, 전국 곳곳에서 서울의 지인들에게 투표하라고 전화와 문자가 쇄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투표마감 2시간 전부터 경이롭게 올라갔던 투표율을 보면서 나 역시 '이 보이지 않는 힘이 무엇일까' 탐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가 끝난 이후 여러 평가와 후일담이 쏟아져 나온다. 2040세대의 생활상의 고통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선거를 좌우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여기에 어떤 이는 정당과 시민운동, 노동운동이 총망라된 야권연대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시민운동가나 자원봉사자 중심의 좌충우돌 선거운동을 적절하게 바로잡아준 민주당의 지혜로운 대응과 협력이 선거승리의 동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SNS의 위력과 나꼼수와 같은 비제도권 미디어의 영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선거라고도 한다. 모두 의미 있는 평가이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바로 현장, 경청, 공감, 소통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정치에 관한 것이다.

내가 겪었던 경험 하나에서 새로운 방식의 정치에 관한 얘기를 시작해보겠다.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열린 경청투어 현장에 후보와 함께 참석했다. 경청투어는 후보의 일방적 연설이 아니라 현장에서 유권자들의 요구나 의견을 듣고 답하는 일종의 토크쇼 같은 형식이다.

주민 40-50여 명이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전동휠체어를 타야하는 장애인들이었다. 공공임대아파트 계약자가 사망하면 그 가족들이 쫓겨날 수밖에 없는 현실, 장애인의 자녀들이 아르바이트해서 일정한 소득이 발생하면 장애인 지원금이 줄어드는 사연, 임대아파트가 너무 좁아 장애인으로서 생활하기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 관계가 끊어졌지만 부양의무자로 확인되었다는 것 때문에 기초수급자에서 밀려나야 하는 상황 등 절박하고 애끓는 사연이 쏟아져 나왔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수년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운동을 해온 터라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당사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직접 들은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후보는 이런 사연 하나하나를 수첩에 적고 일일이 답변을 했다. 그런 문제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시장이 된다면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나가겠노라고 다짐했다. 시장취임 후 가장 먼저 할 일로 '올 겨울 서울시민 그 누구도 추위에 떨지 않도록 월동대책에 주력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도 이곳에서였다. 몇몇 분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가 시장이 된다고 해서 일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해서는 아닐 것이다. 유력한 시장후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주며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준 것에 대해 그저 고마왔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박원순이 9월 2일 시민운동 하는 후배들을 불러 했던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다. 속리산 언저리를 걷던 어느 날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데 그 빗소리가 이 땅의 고통 받는 이들의 그리고 4대강의 울부짖음으로 들리더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울부짖는 것 같았다며 자신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괴로웠다고 했다. 또 하나 그는 정치는 초보라 잘 모르지만 시민들의 말을 경청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원대한 정치적 결단을 기대하고 있던 나는 솔직히 빗속에서 울부짖음을 들어 경청의 정치를 해보겠다는 그의 출사표가 난데없었다. 선거를 후보의 메시지와 정책을 던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던 나와 달리 그는 진정 이 땅의 고통 받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토닥이고 싶어 했다.

▲ 취임 직후 한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박원순 시장. 여느 정치인과 다르게 앉아있는 참석자들에 방해가 될까 허리를 숙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연합뉴스

그런 이유로 박원순 후보는 선거운동 시작부터 경청과 소통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현대의 선거가 미디어선거라지만 후보가 직접 유권자를 만나는 선거운동을 무시할 수 없다. 후보와 악수를 한 경우 유권자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박원순은 시간은 많이 들면서도 만나는 사람은 소수에 한정되는 경청 투어나 타운홀 미팅 방식을 강조하였다. 빠르게 옮겨 다니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고 악수하는 기존의 선거운동방식에 비해 몹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거 막판에 가서는 기존의 연설방식의 유세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근 한 달여를 시민들의 질문이나 요청사항을 듣고 답하는 선거운동으로 일관했다. 여기 소개된 임대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장애인, 시장상인, 대학생, 사회복지사, 버스기사, 환경미화원, 노동조합관계자, 교육관계자, 벤처기업인, 공동체운동을 하는 마을주민 등등 수십 번의 경청투어가 열렸고, 그 과정을 통해 시정에 관한 많은 의견을 제안 받았다. 지역 유세에서도 즉석에서 유권자들의 질문과 의견을 담은 메모지를 모으고 가능한 이에 답하려 노력했다. 시간이 부족해 다 듣질 못하면 질문이나 의견이 적힌 메모지를 모아 선거캠프로 가져왔다. 그 메모지들이 지금 시장실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선거가 아니라면 목소리 한번 내볼 수 없는 분들이 정치인에게 당당히 답변을 요구하는 과정은 몹시 흥미롭고 각별했다. 생활현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시민들의 분노와 절망, 기대와 희망의 아우성에 후보와 선거캠프가 온 신경을 집중해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선거운동 방식은 일방적인 연설이나 잘 봐 달라며 악수를 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확연히 구분되었다.새로운 선거운동방식이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그를 시장에 당선시켰다고 한다. 아직 새로운 정치가 무엇인지 분분하지만, 내가 이번 선거운동에 참여하며 느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이 '현장'과 '경청'을 중시하고 '공감'과 '소통'을 실천하여 시민들과 '신뢰와 협력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새로운 정치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새로운 정치의 물꼬가 트였다. 내년 선거에선 봇물이 터지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말. 선거기간 내내 나의 뇌리 속엔 이번 선거에서 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희망하는 정권교체도 물 건너가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잘하고 있는 건지,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단일후보 경선룰 최종안을 보면서, 네거티브 공세에 휘청하면서, 본선에서 지지율 역전이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숨 막히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역할이 달랐던 선후배 동료들에게 화를 많이 냈다. 언쟁도 많았다. 진심으로 죄송하다. 너그러이 용서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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