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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난독증인가

지독한 대미의존증, 혹은 평화체제 공포증

"한국 역시 국내적 제약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만약 평화협정이 조인된다면, 주한미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수 야당은 주한미군의 감축·철수를 강하게 반대할 것이고, 이는 문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딜레마가 될 것이다. 또한 문 대통령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선언의 국회 비준을 원하고 있지만, 보수 야당은 비준에 반대하며 이행을 지연시키려 할 것이다."

조선일보가 문제 삼은 '문정인 주한미군 철수론'의 기고 글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2일 1면 머리기사에서 <문정인 "평화협정 땐 미군 주둔 어렵다">라는 제목 아래 "문정인 특보도 30일 미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의 길' 기고 글에서 '평화협정이 서명되면 주한미군은 어떻게 될 것인가. 더 이상 한국 주둔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보다 한국이 먼저 주한미군 철수론을 꺼내는 모양새다"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우선 부정확한 보도다. 잘못된 인용이다. 문정인 교수는 "만약 평화협정이 조인된다면...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썼다.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과 주둔이 어려워지는 것은 분명 다른 얘기다. 기사의 ABC조차 지키지 않았다. 왜곡이다.

다음으로 문정인 교수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성사될 경우 일어날 변화를 객관적으로 예측했을 뿐이다. 조선일보 보도처럼 "북한보다 한국이 먼저 주한미군 철수론을 꺼"낸 것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내외적 어려움을 거론하면서 주한미군의 정당성에 대한 이의 제기, 그리고 이에 대한 국내 보수 여당의 반대를 예상했을 뿐이다. "보수 야당은 주한미군의 감축·철수를 강하게 반대할 것이고, 이는 문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딜레마가 될 것"이란 부분이 그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문 교수의 예측은 너무도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와 뒤이은 보수 야당의 반대가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너무도 빨리, 너무도 격렬하게 반대 움직임이 나타났을 뿐이다.

▲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프레시안(최형락)

1949년 6월 남한을 떠난 미군은 왜 한반도에 돌아온 것일까?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 때문이다. 이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남한을 지킨다는 것이 주한미군의 가장 중요한 존재 근거였다.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한 마당에 주한미군의 존재 근거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남과 북 사이의 평화 정착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당분간 주한미군이 필요한 이유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지난 1991년부터 미군이 평화유지군으로 남한에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러한 입장은 6.15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밝혔고, 지난 4월 19일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주한미군의 역할에는 일정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판문점선언에 나온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려면 미군 핵무기의 남한 전개도 폐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2년 2월말의 한미 군사훈련 때부터 핵전략자산의 남한 반입 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그 직전 북한의 은하3-2호 우주로켓 발사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후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실험을 지속하면서 미군 핵무기 반입 훈련의 강도도 강화돼 왔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이루려면 이 또한 폐지돼야 한다. 당연히 북한은 이를 요구할 것이다.

북한은 2015년 7월 6일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1.남조선에 끌어들여 놓은 미국의 핵무기를 공개하라 2. 남조선에서 핵무기와 기지를 철폐하고 세계 앞에 검증 받으라 3. 미국이 조선반도에 핵 타격 수단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담보하라 4. 우리 공화국에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약하라 5.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 철수를 선포하라" 등의 '한반도 비핵화 5대 조건'을 발표했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 속에 천신만고 끝에 핵무기를 개발했다. 그 핵무기들을 전면 폐기시키기 위해서는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 최소한은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들여오지 않으며 핵무기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 비핵화다. 그리고 이것은 주한미군의 군사 훈련이 2012년 2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북미 관계가 정상화된다면 김정은 참수작전과 같은 군사훈련은 당연히 폐지돼야 할 것이다.

즉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되고 북미 수교가 이뤄지려면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에는 반드시 일정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적어도 당분간 주한미군 철수는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핵을 가진 북한과 대치하며 미국의 핵우산 속에서 전쟁 일보 직전의 상태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그리고 북미 수교 등을 통해 진정한 평화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난독증(dyslexia)이라는 게 있다. 글을 읽고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증세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는 난독증의 결과이거나, 아니면 주한미군의 조그만 역할 변화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독한 대미의존증의 징후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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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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