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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FTA, 이명박의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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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FTA, 이명박의 FTA

[기자의 눈] 대낮 버스 안에서 '분노한 민심'을 보다

아는 기자가 말했다. 인간은 동물인지라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주 빠르게 직감한다고. 본인이 쓴 기사와 관련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절감했다고 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 도박으로부터 비롯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2040세대'라는 신조어가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할 정도로 20대부터 40대의 투표 결과는 '분노한 민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듯 했다. 이번 선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치권엔 또다시 전운이 감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를 놓고 격랑이 일고 있다.

여당은 말한다. 한미FTA는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한 일이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현 민주당)도 찬성하지 않았냐고.

야당은 맞선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FTA 재협상으로 노무현 정권 때 맞춰 놓은 이익 균형이 깨져버렸다고.

두 정권을 거친 한미FTA를 둘러싼 여야간 대치는 국회 안에서 뿐 아니라 장외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만든 TV 광고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FTA, 이젠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 하겠습니다'는 내용이 골자인 이 광고는 첫 부분에 '2006년 2월 3일 한미 FTA 협상 출범 선언'이라는 자막과 함께 "국민 여러분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중심에 놓고 협상을 진행했습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음성과 모습이 나온다.

이에 대해 노무현 재단은 지난 28일 성명을 내고 "광고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는 노 전 대통령이 재협상 논란 중인 한·미FTA를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었다"며 "허위사실로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모욕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비난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노무현 정부 핵심 측근들이 3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광고 중단과 사과 등을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노무현의 FTA는 좋은 FTA고 이명박의 FTA는 나쁜 FTA냐'는 질문이 나왔다. FTA를 일관되게 반대해온 쪽과 현재 FTA 강행 처리를 주장하고 있는 쪽에서 동시에 말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31일 민주당 등 야권이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하고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해 한 글자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의제 정치가 민심을 바르게 수렴하고 이를 대리하는 것이라고 할때 노무현 정부에서 FTA를 찬성했던 세력들이 반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일관성을 따지고 들면 홍준표 원내대표도 노무현 정권 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한미 FTA에 대해 반대 발언을 했었다.)
▲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는 경찰. ⓒ뉴시스

그렇다면 한미FTA를 둘러싼 갈등이 정략적 계산에 따른 정치권 일각의 갈등과 대립으로 끝날 것인가. 으레 그랬듯 통과시키기 전엔 시끌시끌하지만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키고 나면 조용해질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28일 오후 우연히 목격한 '분노한 민심' 때문에 이런 판단을 하게 됐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엔 FTA를 반대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들로 난장판이었다. 누가 봐도 시위대보다 경찰 수가 훨씬 많았다. 경찰은 국회 정문 앞을 전경버스로 막고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는 등 강경 진압했다. 늦은 밤 시간도 아닌 대낮에 벌어진 혈투(?)를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도 목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날 오후 4시 국회를 빠져나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엄청난 수의 경찰이 시위대를 따라 이동하느라 10여분 가까이 움직이지 못했다. 술렁이던 버스 안의 '민심'이 터져나온 것은 버스 기사가 경찰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면서 시작됐다. 버스 기사는 경찰들이 헬맷과 방패로 백미러를 건드리면서 이동하자 경찰들을 향해 거칠게 항의했다.

이어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승객이 창문을 열고 경찰을 향해 고함을 쳤다.

"그러길래 정치를 똑바로 해봐. 데모를 하나. 정치를 개떡으로 하니까 그러지."

60대 정도로 보이는 다른 승객도 동조했다.

"겁은 많아 가지고 경찰 풀어서 때려잡으려 하고. 먹고 살게 해줘야 될 거 아냐. 이렇게 대낮에 멀쩡한 사람들 못 가게 길 막고 뭐하는 짓이야."

길이 막힌 원인이 시위대가 아니라 정권에 있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딱히 FTA에 대한 찬반 여부라기 보다는 현 정부가 반대 여론을 힘으로 누르고 일방통행하는 것에 대한 '분노한 민심'이 대낮 버스 안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한미 FTA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FTA 반대 진영에서 협정의 문제를 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밑바닥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 정권이 나의 이익을 보장해 줄 것이냐'는 질문은 어렵다. 하지만 '이 정권이 나에게 해를 끼치냐'는 판단은 쉽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정치가 나에게 해를 끼친다고 여겨질 때 바람에 누웠던 민초들은 일어서기 시작한다. FTA 처리 강행은 그 본질을 떠나 이명박 정권의 일방통행에 분노하고 있는 민심을 또 한번 건드릴 것은 분명하다.

31일 국회 안팎은 FTA 처리 문제로 또 삼엄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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