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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그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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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그는 왜?

[정욱식 칼럼] 급변하는 한반도, '김정은 코드' 읽어야

"70년 동안의 조미(북미)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이에 모든 국가 핵무력의 폐기를 엄숙히 천명한다."

2020년을 전후해 나올 것으로 보이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의 일부이다. 물론 가상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에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하고 올해에는 신년사를 통해 국면 전환을 꾀하면서 마음 한켠에 두었던 '속내'였을 것이다. 또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이런 속내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케미'를 일으키면서 다짐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핵이라는 물리학의 결정체와 변화무쌍한 인간 의식이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독촉했던 아인슈타인이 나중에 이를 가장 후회하면서 반핵을 주창했던 것처럼,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을 맡아 불철주야 '신의 불'을 달궈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불렸던 로버트 오펜하어머가 나중에는 '핵 군축의 아버지'가 되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체질적인 거부감, 북한이 본래 원했던 것은 핵무기라는 고정 관념과 굴절된 역사 인식, 화석처럼 굳어진 불신, 그리고 힘, 특히 군사력이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다는 교조화된 현실주의 국제정치론 등이 뒤섞여 있었다.

김정은에게 핵무기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한의 "공동의 목표"라며, 두 가지를 분명히 했다. 하나는 북한이 핵실험을 중지하고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중단키로 한 것은 핵보유국 지위를 노린 것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써 4월 20일에 나온 노동당 결정서의 취지는 분명해졌다.

또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요구한 것이다. 이건 이번 판문점 선언의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의 외교 문법은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핵화를 요구를 수용하고 남한은 대북 제재와 압박이라는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한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니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하고 협력해달라'고 했다. '게임의 법칙'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한반도 비핵화가 왜 '이제는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희망으로 바뀐 것일까? 앞서 가상으로 써본 노동당 결정서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즉,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무기는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조미 대결의 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가 없었거나 비핵화 약속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거나 핵 능력이 고도화되지 않았던 상태와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포한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비교해보면, 이러한 진단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 지난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김정은이 '국가 핵무력 건설' 숙제를 빨리 끝내고 싶었던 이유

세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도 미국 현직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간절히 원했었다.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도 자신의 친구 데니스 로드맨을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로드맨이 미국에서 '종북주의자'로 왕따 당하는 모습만 지켜봤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김 위원장이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직후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 시도가 초대장이 된 셈이다.

둘째는 종전과 평화협정이다. 이 둘은 북한의 오랜 요구였다. 그 결과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13년 동안 "별도의 포럼"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이 사이에 북한은 의외의 모습도, 상식 밖의 모습도 보였다. 2010년에는 "정중히"라는 대단히 이례적인 표현을 쓰면서까지 평화협상 개시를 호소했지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이듬해에는 미국 국방장관에게 "평화협상이 시작되지 않으면 핵 참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협박성 위협도 해봤지만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3년에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불사했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작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이후 종전과 평화협정이 가까워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신년사에서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를 끝내고 싶다는 열망을 피력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을 때, 트럼프는 남북한이 종전을 논의하고 있다는 천기를 누설하면서 "축복"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급기야 '판문점 선언'에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키로 했다.

셋째는 "단계적 군축"이다. 김일성 시대 북한의 군축 제안은 프로파간다로 치부되었고 김정일 시대의 군축은 선군정치와 어울리지 않은 짝이었다. 반면 김정은 시대의 군축은 매우 중요하다. 병진노선, 더 나아가 '선군(military first) 정치'에서 '선경(economy first) 정치'로의 성공적인 전환의 열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군축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무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줄였다.

하지만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한반도 차원의 군축이 필요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공식 수행단에 인민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을 포함시켰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하게 하는 파격까지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판문점 선언에는 "단계적 군축"이라는 합의가 포함되었다. 6,15에도, 10,4 선언에도 없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대전환은 김정은이 왜 작년에 잇따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와 트럼프의 전쟁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핵무력 건설 완성을 향해 폭주를 거듭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힘이 있어야 비로소 상대방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상당 부분은 하나둘씩 실현되고 있다.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게 김정은 코드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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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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