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러운 기대감과 냉정함 사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본 고성군민의 입장은 예상만큼 뜨겁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10년 만의 금강산 관광 재개 기대감이 뜨겁다는 언론 보도는 조금 과장된 듯 했다. 그러나 기대감은 있다. 군민들은 기대감 한 편에 '고성이 수혜를 입지 못한' 과거 금강산 관광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남북 정상이 만난 27일, 강원도 고성군을 찾았다. 남북으로 분단된 고성군의 남쪽 중심은 주민이 모인 번화가이자 고성군청이 자리한 간성읍을 시작으로 관광 거점인 화포리와 초도리, 금강산 관광의 관문인 명파리 등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에 관심이 가긴 하는데…
간성읍에서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이부겸(62) 씨는 "북한이 이번에는 정말 앞뒤 다른 행동을 하지 말고, 진실되게 평화를 향한 움직임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남북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 정상이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를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은 걸로 아는데, 회담을 잘 해서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는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 후보자들이 관심을 쏟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동해북부선 연장과 철원평화산업단지 조성, 금강산 관광 재개를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삼아주기를 청와대에 요청한 바 있다.
대북 강경 노선을 강조하는 야당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엿보인다. 정창수 강원도지사 후보(자유한국당)는 금강산 관광 재개, 동해북부선 기반 시설 조기 확충 방안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두 사업 모두 더불어민주당의 지분이 큰 사업이지만, 당장 강원도민의 생활에 크게 밀접하다 보니, 당을 가리지 않고 이를 선거공약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 씨는 "당장 오늘도 어느 당(여야 여부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군수 후보가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 설문조사를 하고 가더라"며 "금강산 관광이 잘 되면 고성군도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에 조심스러운 기대감"
하지만,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닌 듯 했다. 기실 간성읍은 사실상 금강산 관광과 큰 연관이 없다. 지역민 생활의 중심지이며 인근 부대 군인의 이동 거점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한 핵심 지역은 화포리와 명파리다. 화포리에는 한국 최대의 석호이자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이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사용한) 별장 등을 품은 화진포가 있다. 인근 초도리에는 초도항과 화진포 등 일대를 찾는 관광객을 위한 민박촌이 형성되어 있다. 명파리는 금강산 관광 당시 접경 지역으로서 전성기를 누린 곳이다.
화포리가 중요한 점은 또 하나 있다. 이곳에는 2008년 7월 박왕자 씨가 북한군에게 피격당해 사망하기 전까지 한국 전역의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 입경을 대기하던 화진포 아산 휴게소가 있다. 현재 이곳은 영업이 중단되었다. 출입 금지 안내판이 이곳이 사유지였음을 말해줄 뿐, 간판은 이미 하얗게 빛이 바래 오래되어 보였다. 관광 중단 10년째인 현재,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시대가 변했다. 남북은 다시 화해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화진포 인근 주민들은 혹 금강산 관광 재개 기대감이 없을까.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신재석(59) 씨는 "금강산 관광 당시도 고성이 얻는 이익이 언론 보도만큼 크지 않았다"며 "금강산 관광 재개에 거는 기대감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수혜는 잠깐이었다. 곧 현대아산이 북측에 직접 음식점 등을 개설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고성을 거쳐 북으로 들어가던 관광객이 이제는 온전히 북한 내에서 돈을 쓰게 됐다. 고성군민이 기대 가능했던 관광 수익은 남한으로 돌아온 관광객들이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들러 건어물을 사는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따로 아산 휴게소로 오는 관광객의 사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 씨는 "개인적으로 아산 휴게소로 오는 관광객도 속초나 강릉처럼 큰 도시를 들르지, 고성을 찾지는 않았다"며 "관광객이 새벽에 북한으로 가니, 우리는 관광객이 온 줄도 모르고 살았다"고 전했다.
민박업을 하다 5년 전 사업을 접었다는 박용진(63) 씨의 말도 비슷하다.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가 사업 지속 여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박 씨는 "속초와 강릉이 관광지로 뜨면서 고성을 찾는 이는 더 줄어들었다"며 "금강산 관광 중단 여부는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씨는 "고성군민이 정주영 현대 회장의 업적까지 부인하는 건 아니"라며 "고성군에도 관광객이 들를 수 있도록 해준다면 우리는 당연히 관광 재개를 반긴다"고 설명했다.
동해북부선 연장 사업에 관심
고성군민 일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보다 동해북부선 연장 사업에 더 큰 기대감을 보였다. 외지인이 고성에 머무르게끔 하는 게 중요한데, 금강산 관광객이 고성에 머무르게 할 수 없다면 대신 동해북부선 연장을 통한 대 시베리아 물류기지로 고성을 발전시켜달라는 주문이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경의선 현대화와 함께 동해북부선 연결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동해북부선은 강원도 강릉~고성~제진을 지난다. 북의 나머지 철도도 잇는다면 시베리아로까지 연결된다. 이 선은 관광선은 물론, 물류노선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지역민이 물류기지 조성을 원하는 이유다.
"고성 부동산이 뜬다는 건 거짓말"남북 정상회담을 맞아 언론이 주로 주목하는 곳은 서쪽의 파주와 동쪽의 고성이다. 특히 언론은 "땅값이 얼마 올랐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통일에의 기대감이 이들 지역 땅값을 밀어 올린다는 내용이다.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강원도 고성군 토지 거래량은 전달 대비 77% 늘어났다. 하지만, 이 같은 거래량 상승은 서울 투기 세력의 작품이지, 통일에의 기대감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지역민은 지적했다.부동산중개업자 신재석 씨는 "바닷가 지역의 땅값이 3.3㎡당 200만 원대로 오르긴 올랐다"면서도 "실제 거래가 이뤄진다기보다, 호가만 뛰어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기세력이 남북 통일 호재로 일단 호가를 띄워놓았다는 주장이다.신 씨는 아울러 "지난달 거래량 상승도 통일 기대감보다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의 사업 목적으로 인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성과 양양군, 속초시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 대상 지역이다. 이에 따라 이들 사업자들이 지역에 진출하면서 거래량이 늘어났다는 게 신 씨의 설명이다.신 씨는 오히려 "통일 기대감으로 과거 '묻지마 투기'를 한 땅들은 거래가 안 된다"며 "지금은 (싸게) 부르는 게 매매가일 정도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남북출입사무소 인근 현내면 사천리가 대표적이다. 인근 일대는 하단 그림에서 보듯, 투기업자들에 의해 잘게 쪼개져 팔렸다. 신 씨에 따르면 당시 매매가는 3.3㎡당 20만 원대에 육박했다. 지금은 5만 원 정도에도 구입 가능하다고 신 씨는 설명했다.신 씨는 "매입 문의 전화가 하루 한두 통 정도 오긴 하는데, 실제 매입하는 이들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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