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적 소수자가 선천적이라는데도 동성애 혐오가 여전한 이유는?
성적 지향, 즉 게이, 레즈비언 등의 다름이 선택이 아닌 선천적이라는 메시지는 1985년 미국인 20%만이 수긍했으나, 2015년에는 47%로 늘어났다. 이는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2015년 발표했다. 이런 메시지는 오늘날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어 정치, 사회적으로 성적 소수자를 향한 전향적 제도를 만드는 근거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성적 지향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조차 동성애 혐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의 가치 판단 기준이 다양한 논리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이 입증된 사례다. 예를 들면 민족이 선택 사항이 아님을 아는 사람이 인종 차별주의자가 되는 것과 엇비슷한 현상이다.
이런 사실은 미국 테네시 대학 패트릭 그르잔카 조 교수 등이 남녀 대학생 645명을 대상으로 성적 지향성과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의식 조사를 실시해 '대학생들은 게이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동성애 혐오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 1월 과학전문지에 발표하면서 밝혀졌다.
조사에 응한 대학생 두 그룹은 남녀학생으로 구성된 379명, 여학생만으로 구성된 266명으로 나뉘었다. 연구팀은 먼저 이들 그룹을 상대로 LGBT의 선천적 요인 등 성적 지향에 대해 질문하고 이어 성적 소수자에 대한 가치판단을 측정하는 질문을 한 뒤 이를 통계처리 했다.
그 결과, 대학생 대부분은 성적 지향이 자연적 현상임에 동의하지만 게이가 되면 이성애자 등과 매우 다르게 인식된다고 믿고 있고, 이런 믿음은 결국 편견과 차별을 부추기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성애적 성향이 강할수록 동성애 혐오도 강해 동성애 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동성애 혐오를 감소시키는데 제한적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그르잔카 조 교수는 "동성애 혐오는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한 개인적 믿음에 의해 항상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개인적 믿음, 즉 고정관념화 되어 있는 가치관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LGBT 공동체가 이성애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비합리적인 일부 사회적 가치관을 개선토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르잔카 조 교수는 "성적 소수자가 되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결과라는 논리만으로 동성애 혐오를 감소시키기 충분치 않다"며 "동성애 혐오 현상이 약화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고정관념화 되어 있는 가치관을 공략해야 한다. 이런 가치관에 성적 지향의 자연적 기원 등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르잔카 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성적 소수자의 권익 논란이 벌어질 때 '선천적 기질'이라는 과학적 연구에 바탕을 둔 답변은 그간 가장 강력한 옹호 수단이어서 동성애 결혼 합법화, 의료 혜택 제공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LGBT 차별을 해소할 결정적 무기가 되지는 못했다.
성적 지향은 타고난 것으로 변경 불가하다는 인식은 동성애 혐오에 사로잡혀 있던 일부 과학과 정치, 법체계 등에 큰 영향을 미쳐 성적 소수자들을 이성애자로 바꾸려던 과학자, 종교인, 심리학자 등이 견해를 수정하도록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과학적 지식의 영향력이 가치관을 바꿀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성적 지향에 대한 개인적인 소신이나 믿음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시킨다. ‘소신이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생물학적으로 성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수잔나 D. 월터스 노드이스턴 대학 교수는 1999년 펴낸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여성들>이라는 저서에서 TV와 영화 등 미디어 속 여성은 실재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을 반영한다기보다 남성의 욕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하며, 여성 관객은 이렇게 대상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소비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월터스 교수는 동성애의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로 성적 소수자가 선천적으로 태어났느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한다. 개개인은 자신이 경험하는 성적 지향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이를 시민 권리 차원에서 공론화하려 하는 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월터스 교수는 "역사적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도는 노예, 집단 학살, 인종차별주의에서처럼 극악한 정치적 노림수로 악용됐다"면서 "사람들이 성적 정체성에 생물학적인 측면이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동성애 혐오라는 믿음을 동반한다. 즉, 이들은 어떤 측면에서 게이는 비정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월터스 교수는 이어 동성애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해야하느냐 마느냐는 논란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어느 누구도 이성애에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듯이 동성애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월터스 교수는 사람들이 인과관계를 살필 때는 이미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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