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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한번 냅시다!

[다산 칼럼] 나는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북쪽에서보다는 남쪽에서 먼저 민중의 승리가 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 국민의 새롭고 자발적이며 집단적인 열정의 폭발로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이 나라에 찾아오는 아테네의 봄입니다. 이 아테네의 봄날의 압력에 따라 분단된 북쪽에서도 서서히 자기 나름의 평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반도의 북쪽에 찾아오는 프라하의 봄입니다. 이와 같은 두 개의 봄이 반드시 반도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 역사의 숨결입니다. 그리고 이 봄은 서서히 두 개의 봄을 하나의 봄으로 결합하기 위한 준비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점차 반도 전체의 봄의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것은 한반도 주변정세의 해빙추세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반도 전체에 휘황찬란한 대지의 봄을 이룰 것입니다. 비무장지대에는 지뢰 대신 꽃과 사슴과 노루와 다람쥐와 더불어 밤새도록 친교와 통일이 토론됩니다."

한반도에도 봄은 오는가

이는 박정희 유신정권이 지배하던 시절, 1976년 12월 23일 저녁 6시 20분부터 9시 40분까지 3시간 20분에 걸친 김지하의 법정 최후진술의 한 부분이다. 나는 지금 한반도에 찾아오고 있는 봄이 그때 그 김지하가 말했던, 지뢰 대신 꽃과 사슴과 노루와 다람쥐와 더불어 밤새도록 친교와 통일이 토론되는 그런 ‘반도의 봄’이라고 단언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와 비슷한 봄기운이 한반도에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의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 그리고 북한예술단의 공연 때만 해도 나는 과연 한반도에 그런 봄이 올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3월 초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우리 측 특사단에게 남북·북미정상회담 외에도 군사적 위협해소와 체제보장을 조건으로 비핵화 의사를 밝히고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전략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예전 수준의 한미 군사훈련을 양해한다고 했을 때 어쩌면 한반도에도 봄이 올지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한 가닥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이어서 미·일·중·러에 특사를 파견하는 발빠른 행보와 관련국들의 반응, 특히 애초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던 일본이 남북관계의 진전과 비핵화 국면에 변화를 가져온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하고, 북·중간의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아 이제 한반도에서 필경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마침내 한국이 무슨 일을 내겠구나 하는 기분 좋은 예감을 갖게 되었다. 더 나아가 우리 다 함께 힘을 합쳐 일을 한번 크게 내보자고 선동 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우리 예술단의 ‘봄이 온다’ 평양공연을 보고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인민들이 남쪽 대중예술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진심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돌아오는 가을에 ‘가을이 왔다’는 주제로 또 한 번 공연제의를 하는 것을 보고, 그가 한번 지나가고 마는 그런 봄이 아니라 결실을 거두는 가을로까지 이어지는 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4월 27일이 오기까지는

나는 문재인정부가 하는 '내로남불' 인사와 어설픈 정책 등 여러 부분에서 불안하고 미덥지 못한 구석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통제하기 어려운 북·미 두 지도자를 협상장으로 끌어내어 한반도의 운명과 세계평화가 걸려있는 21세기 최대의 판을 용케도 잘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엔 국민과 더불어 아낌없는 응원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우리에게는 가슴 설레는 한판이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벅찬 발걸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결과도 낙관하기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럽다.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은 회담 그 자체로 세계사적이다. 여당과 야당 등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문재인 대통령을 밑받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단기필마로 이 역사적인 사건들을 일구어냈다. 평창올림픽이라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놓치지 않았고, 기다릴 때와 나아갈 때를 헤아려 신이 역사 속을 지나는 순간 뛰어나가 그 옷자락을 붙잡았다. 마침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구축, 남북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를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인화(人和)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뿐이다.

4월 27일의 남북정상회담과 뒤를 잇는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봄을 규정할 것이다. 이때 남북정상회담에서의 선제적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남북간의 잦은 발걸음이 논의되고 세계와 인류를 향한 역사적인 ‘한반도 평화선언’이 남북지도자 공동의 이름으로 나와서, 세계를 감동케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있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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