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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체성에 경계를 그을 수 없다

[LGBT 차별을 넘어] 누구나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닐 수 있다

5. 성적 소수자에 대한 연구 어디까지 왔나? -2-

개인의 성적 지향은 흔히 당사자의 진술에 의존해 규정된다. 그런데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성적 지향을 과학적 확인이 어려운 당사자의 의견 진술에 의존하는 한계상, 그 정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마이클 베일리 심리학 교수 등은 성적 지향에 대한 현행 과학적 연구방법론의 한계와 문제점 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지난 2016년 4월 과학전문지에 발표했고, <허핑턴포스트>가 그 해 9월 보도했다.

베일리 교수팀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에 혼란함을 느낀 한 미국 남성의 증언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나는 고교 시절 남자 친구와 성적 관계를 가졌지만 나 자신이 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 성장하면서 나는 내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믿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내가 남자였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깔끔하게 파악치 못하는 데는 명확하지 않은 성적 지향의 경계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 즉, 자신의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경우를 경험한다. 성적 지향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

베일리 교수팀은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살피거나 외부에 밝힐 때 본인 스스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애매한 경우가 있으며, 그런 판단을 할 때 영향을 받는 정치적, 사회적 요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성적 소수자에 대한 과학적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성적 지향은 성적 행동, 성적 정체성, 성적 매력, 심리적인 성적 욕구 등 4가지 항목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을 이성애자로 밝힌 남성이라 해도 심층 조사를 하면 남성과 성 관계를 맺은 경우가 발견된다. 동시에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리거나 여성에게 감정적으로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성적 정체성은 4가지 항목의 다양한 조합으로 나타날 수 있다.

동성애는 진보 성향이 강한 국가에서도 일정 정도 낙인 요인이 되는 경향이 여전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매력이나 정체성, 행동 등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진술한다. 그러나 현재 성적 지향을 조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자기 진술인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는 1950년을 전후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게이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개인들이 성적 정체성을 밝히는 형식의 조사에서 게이와 레즈비언, 양성애자는 약 5% 정도로 나왔다. 일부 조사에서는 동성애 감정이 있다고 인정한 성인의 비율이 1.8~11% 정도로 편차가 컸다.

다른 조사를 보면, 성인 남성 7만1190명과 성인 여성 11만77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의 93.2%와 여성의 86.8%가 자신을 완벽한 이성애자라고 밝혔다. 여러 조사를 살필 때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또는 비이성애가 얼마인지는 당분간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성적 정체성은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유동성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밝힌 이를 차별적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pixabay.com

결국, 성적 정체성은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유동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개인의 경우 자신의 전반적인 성적 정체성과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는 남성, 다른 상황에서는 여성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리사 다이아몬드(Lisa Diamond) 박사가 2008년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레즈비언 79명을 상대로 1995년부터 2년마다 한 번씩 10년간 성적 정체성을 조사한 결과 3분의 2는 최초에 주장했던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변경했고, 3분의 1도 한 번 또는 두 번 이상 성적 정체성을 바꿨다. 자신의 레즈비언 성향을 양성애와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한 여성이 많았고, 이들 중 자신이 레즈비언이나 이성애자라고 최종 답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다이아몬드 박사의 조사에서 여성의 경우, 남녀 두 성에 동시에 애정을 느끼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적 충동 대상이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연구를 놓고 많은 여성이 이성애와 구분되지 않는 정체성을 선택해, 레즈비언과 이성애 사이의 구분은 종류가 다른 것이라기보다 등급의 차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나아가 양성애가 과연 실재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자신을 양성애자라고 밝힌 개인이 실제로는 이성애나 동성애 중 하나의 성적 욕구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이성애나 동성애라고 밝힌 개인이 양성애자의 성적 흥분, 성적 매력, 성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분명 양성애는 하나의 성 정체성 범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양성애자임을 주장한 개인이 양성애와 다른 성적 감정,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상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성적 지향이나 범주 등은 최근에 나온 개념들로 더 충분한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동성애라는 단어는 1869년 프러시아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성애자라는 단어도 원래는 여성에게 관심이 있는 남성만을 의미했다. 이때만 해도 여성은 단지 재산의 일부로 여겨졌고, 여성 성의 목적은 출산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는 의학 용어로 주로 사용되다가 오늘날에는 사회과학적 용어로 더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성적 지향은 사람의 성적 특성을 구분하면서 복합적인 인간의 특성을 획일적으로 분류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LGBT통계를 낼 경우 옹호론자들은 성적 소수자의 숫자가 많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반대론자들은 성적 소수자의 숫자가 적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논란이 동성애 혐오 경향이 비이성적으로 강한 사회나 국가에서 지속된다면 그 문제가 심각하다. 만약 동성애가 나쁘다면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 해도 나쁜 것이 되고, 나쁜 것이 아니라면 비 이성애자들은 그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 해도 보장된 권리를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성 정체성을 빌미로 인격을 공격하는 건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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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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