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던 끝에 뒤늦게 미세먼지 알림 앱을 설치했다. 누군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을 채택해서 "나쁨"이 일상이고 "좋음"은커녕 "보통"(PM2.5 21-25μg/㎥)만 나와도 기분이 좋아지는 앱이라 말했다. 공교롭게도 앱을 설치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의 미세먼지 환경기준이 미국과 일본 수준으로 조정되었다. 아직 WHO 기준에는 못미치지만 미세먼지 환경기준(PM2.5)은 연평균 25μg/㎥, 일평균 50μg/㎥에서 각각 15μg/㎥, 35μg/㎥로 강화되었다. 미세먼지 예보기준도 오는 7월부터 강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공식적으로 35μg/㎥ 이상이면 "나쁨"인 날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관리 기준이 강화된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 나쁨, 나쁨, 나쁨을 벗어나지 못하는 날들이 한동안 이어질 텐데, 과연 WHO 기준으로 마음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기분만 나쁠 것 같은데, 앱을 그냥 지우고 말까?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조치, 그러나…
미세먼지 환경기준이 강화된 만큼 미세먼지 주의보와 경보가 발령될 날도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9월 수립된 미세먼지 종합대책에 따라 2022년까지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감축하는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당장 체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일단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중국에서 유입되는 대기오염물질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만 환경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소요되고 여러 어려움이 예상된다. 나아가 중국으로부터의 유입을 상당부분 줄인다고 해도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크게 감축하지 않고서는 강화된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 날이 늘 것이다. 미세먼지 증가의 또 다른 요인인 대기 정체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바 평상시의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여서 대기 정체 시 누적되는 양을 줄이는 길이 최선이다.
난관은 여기에 있다. 분노를 누그러트리고 측정(추정) 자료를 보면 미세먼지 오염 수준은 개선되는 추세다. 지역별 편차가 존재하나 대다수의 지역은 역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전히 위협적인 수준이고 신속하게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여야한다. 그러나 이제 쉬운 해결책은 없다. 오염도가 아주 높았을 때는 연료 전환, 배출가스 규제, 저감장치 부착 등 몇가지 방안으로 비교적 손쉽게 오염수준을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오염도가 낮아질수록 추가적인 개선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 "노후" 경유차의 조기 폐차,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비상시" 공사 중단 등은 예외적인 상황을 가정하는데, 이제 일상적인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배출량을 줄여야한다. 달리 말하자면, 30년이 안된 석탄화력발전소는 개의치 않고 가동해도 되는지, 새로 뽑은 경유차는 마음껏 몰아도 되는지, 평상시에는 도시 곳곳을 마구잡이로 파헤쳐도 되는지, 질문을 던져야할 때가 왔다.
"에너지 체제"의 전환 없는 미세먼지 문제 해결이 가능할까?
환경부도 꽤나 난감할 것이다. 지난 해 미세먼지 종합대책 이후 환경부는 나름 적극적으로 미세먼지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온 사항들도 제법 많이 반영되었다. 미세먼지 환경기준 강화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에너지 체제 차원의 변화가 아닌 기술적 조정(technological fix)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치고 있다.
예컨대 미세먼지 환경기준이 강화된 다음날 환경운동연합은 KB국민은행의 석탄화력 투자를 비판하는 전국 캠페인을 예고했다. KB국민은행은 강릉 안인화력 사업에 대한 금융투자를 주도해서 비판받고 있는데, 안인화력은 LNG로의 연료전환 요구를 피해간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다. 문재인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중단한다고 했지만 진행 중인 사업의 전환에는 소극적이었다. 이처럼 석탄화력발전의 축소에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정치적 부담때문이다. 값싼 전기소비의 가장 큰 수혜자인 수출 대기업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시민들도 전기요금 인상에 강하게 반발한다. 여기에 편승해서 산업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가인상 수준 혹은 그 이하로 전기요금을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낮은 전기요금을 고수하는 한 석탄화력발전의 의미있는 축소는커녕 최소한의 환경급전도 어렵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것으로 일상적인 미세먼지 배출량 감축을 유도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비싼 마스크를 사고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 형태로 간접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전기요금에 환경비용을 직접 반영해서 오염원 자체를 줄이는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시야를 경유차로 돌려도 상황은 비슷하다. 노후 경유차의 조기 폐차는 더 빠르게 추진되어야한다. 그러나 "노후"만으로 충분한가? 도로이동오염원으로부터의 미세먼지 배출은 노후 차량에 국한되지 않는다. 또한 미세먼지의 배출량은 주행거리와 차량대수에 비례한다. 노후 경유차의 폐차로 초점이 좁혀지면 폐차 효과를 상쇄하는 차량대수와 주행거리 증가의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이에 비춰보면, 경유 승용차(나아가 내연기관)의 퇴출 계획이나 대중교통 이용으로의 교통 수요 전환과 같은 대책들이 더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한다. 다시 자동차산업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 없이, 운전자들의 관행을 문제삼지 않고, 기존의 교통체계를 유지한 채, 미세먼지 문제의 해결이 가능한지 질문이 제기된다. 대기오염물질 배출 총량제, 운행제한지역의 확대 등 눈에 띄는 대책들도 마찬가지다. 낮은 수준의 대기배출부담금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사회적 반발에 밀려 운행제한지역이 늘어날 수 있을까, 의구심을 해소할 만한 계획이나 조치는 아직 없다.
에너지 기본 계획을 넘어서 에너지 체제 전환 논의로
앞으로 일상적인 미세먼지 문제를 풀려면 에너지 체제의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값싼 에너지의 다소비를 촉진해온 에너지 체제의 변화없이 미세먼지 "좋음"은 요원하다. 대응 체계가 정비되면 최악의 비상 상황은 제법 피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보통"과 "나쁨" 수준의 위험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공산이 크다. 산업구조, 교통체계, 전기요금 등을 포괄하는 에너지 체제의 차원에서 미세먼지 문제를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 미세먼지로 숨 막히지 않는 사회로 가는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수립 절차에 들어간 제3차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도 고려되어야할 사항이 아닐까 한다. 즉 제3차 에너지 기본 계획이 "2040년까지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에너지 전환 정책의 종합 비전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갈등 관리적 시각을 넘어서서 에너지 체제의 전환을 위한 논의의 마당을 넓혀야 한다.
설령 합의 도출에 실패해 갈등이 일더라도, 당분간 현재의 에너지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미세먼지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논쟁하는 자리를 만들어야한다. 시끌벅적함이 없다면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은 미세먼지 경보를 몰고 오는 대기 정체만큼이나 답답하게 정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숨쉬기조차 이리 어려운데, 누구나 마음껏 떠들 수 있게는 해줘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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