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몇 초로 끝난 판결 선고
2018년 3월 20일, 오사카고등재판소는 오사카 조선학원이 오사카부와 오사카시를 상대로 보조금 교부 재개 등을 요구한 재판의 항소심에서 조선학원 측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부당판결을 선고했다.
재판이 시작된 후 재판장은 "본건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항소 비용은 공소인이 부담한다"고 판결문을 읽고는 이유를 일체 설명하지 않은 채 배석재판관 두 명과 함께 도망치듯 법정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걸린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일본의 재판에서 판결문만 읽는 판결 선고가 자주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냉담하고 너무나 모욕적인 처사에 방청석을 메운 조선학교의 학생과 관계자, 지원자들은 격앙했다.
법적인 쟁점은 차치하고, 이 보조금재판에서--이와 병행해 진행 중인 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제도 적용 요구 재판에서도--조선학교 측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민족교육에 관한 권리 인정이다. 조선학교 측은 제1심과 항소심의 심리에서 일본국헌법의 조문 등에 근거해 보조금 불교부가 조선학교 학생의 학습권, 민족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에서 오사카고등재판소는 보조금 불교부에 대해, 오사카부·오사카시가 정한 교부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교부하지 않았을 뿐, 조선학교의 교육활동 자체를 규율하고 제한한 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조선학교에 대해 새로운 교부 요건을 추가해 조성제도에서 배제하는 차별정책을 실시하면서, 민족교육을 직접 규제하는 조치가 아니라고 적반하장 조로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 지급되어 온 보조금의 갑작스런 정지로 말미암아 조선학교의 경영이 곤란에 처해도 상관없다는 냉혹한 태도였다.
법적 규제를 뛰어넘는 행정재량을 인정한 판결
특히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지방자치체에 대해 법적 규제를 뛰어넘는 재량권을 인정한 점이다. 조선학원 측 변호인단은 오사카부가 조선학교를 표적으로 개악한 보조금 교부요강의 내용이, 그 근거가 된 사립학교진흥조성법 등의 법률 규제를 뛰어넘는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사립학교진흥조성법의 취지·목적은 수학 상 경제적 부담을 가볍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데에 있는데, 보조금 교부요강의 개악(특정 정치단체와 일선을 그을 것, 정치지도자의 초상화를 교실에서 떼낼 것 등의 소위 '4요건' 추가)은 학교와 특정 정치단체(조선 총련)와의 관계를 이유로 교부요건을 엄격화한 것이어서 진흥조성법이 정한 학교에 대한 규제(학교법인에 대한 질문·검사 실시, 입학자 수 시정 명령, 예산의 변경 권고 등)에 비해 과도한 규제인 것이다. 이는 진흥조성법의 취지·목적에 반해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어 재량권의 일탈, 남용에 해당하므로 무효라는 것이 조선학원 측 변호인단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오사카고등재판소는 조선학원은 보조금 교부를 요구할 만한 구체적 권리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보조금 교부 요건을 정한 오사카부의 재량권 행사는 제한되거나 금지되지 않는다며 조선학원 측의 주장을 물리쳤다. 즉, 지방자치체의 보조금 행정에서는 법을 벗어난 요건을 임의로 설정해도 무방하다고 행정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함으로써, 행정이 정치적 이유로 학교의 교육내용에 대한 간섭을 용인한 것이다. (오사카고등재판소의 논리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뿐, 설사 조선학교가 재정난에 처한다 한들 학교의 교육활동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서 무방하다는 것이 되겠지만. )
한편, 오사카시 보조금에 대해서 조선학원측은 (1)오사카시 보조금은 본래 독자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오사카부의 보조금 불교부가 오사카시의 보조금 불교부에 대한 이유가 되지 않으며, (2)보조금 불교부를 결정한 뒤에 교부요강을 변경하는 등 중대한 행정절차 위반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명명백백한 이러한 주장도 명료하지 못한 이유로 물리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제1심 판결은 조선학교 아이들이 학습권이나 민족교육의 의의 등에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그저 오사카부·오사카시 측의 주장을 추종한 것이었다. 특히, 오사카부 요강에 추가된 '4요건'은 분명히 조선학교를 표적으로 하는 정치적 의도로 설정된 것임에도, 제1심 판결에서는 피고인 오사카부에서도 주장하지 않은 행정의 "재량 범위 내"라는 판단 하에 '4요건'의 설정을 옹호했다. 항소심 판결은 행정의 재량권이라는 '요술지팡이'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한층 강화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오사카고등재판소 판결의 자세에 대해, 판결 당일 저녁의 보고집회에서 한 변호사는 제1심에서는 조선학원 측이 제시한 논점을 피하면서 피고(오사카부·오사카시) 승소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항소심에서는 모든 논점을 다루면서 그 논점을 하나씩 격파하려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제1심보다 더욱 악질적이라고 했다.
부당판결이 의미하는 것
그런데 행정재량의 범위는 '고교무상화'재판에서도 주요한 쟁점이다. 조선고급학교를 '고교무상화'제도 적용의 지정 기준에 "적합하다고 인정함에 이르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불지정 처분으로 했다는 문부과학대신의 결정에 대해, 문부과학대신의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고 불지정 처분을 취소하라는 원고(조선학원) 전면승소의 판단을 내린 오사카지방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히로시마지방재판소와 도쿄지방재판소는 문부과학대신에 의한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해 조선학원, 조선학교 학생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부당판결을 내린 것이다. (세 지역 모두 패소한 측이 항소해 현재 고등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다. )
조선학교에 대한 오사카부의 조성제도는 1974년도에 시작했는데, 특히 1995년도부터는 인건비를 포함한 '교육에 관한 경상비용적 경비'로 보조 대상이 확대되어 갔다. (한편, 오사카시는 1991년도부터 시내 조선초중급학교에 교육용구 정비 등의 명목으로 보조금을 교부하기 시작함.) 오사카부가 '경상비용적 경비'로 보조금을 교부해 온 것은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받을 권리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조선학교가 '일본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에 착목한 것이었다. 당시 오사카부의 담당자는 보수세력의 반발로 민족교육의 의의를 정면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가운데, 조선학교의 재정 지원을 실시하는 논리로 지혜를 짜내 보조금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렇듯 일본국가로부터 조성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지방자치체가 그 지역의 사정에 맞춰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제도를 만들어갔다. 그런 이유로 제도의 내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조선학교가 소재한 29곳의 도도부현 모두가 1997년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고교무상화'제도를 둘러싸고 일본정부가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차별적인 자세를 보이고 특히 문부과학성이 2016년 3월 29일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교부해 온 도도부현 지사 앞으로 사실상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통지를 송부한 이후, 2016년도 보조금 교부는 13곳의 도부현으로 줄어들었다. 지방자치체의 조선학교 조성제도가 위기에 직면하게 됨은 조선학교의 재정을 압박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민족교육 그 자체의 의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결코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승리의 그 날까지'
한편, 판결보고집회에서는 오사카 조선학원 이사장, 조선학교의 어머니, 재학생, 졸업생, 교원 등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변호인단과 일본인 지원자들도 한결같이 부당판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또한 한국에서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손미희 공동대표가 참가해 힘차게 연대 의사를 밝혔다.
실은 판결에 앞선 3월12일, 오사카의 조선학교 지원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죠호쿠학교를 지원하는 모임(城北ハッキョを支える会)'의 대표인 오오무라 스나오(大村淳) 선생님이 병환으로 우리 곁을 떠나가셨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커다란 슬픔 속에서 항소심 판결을 맞이했다. 당일의 보고집회는 참가자 전원이 보조금 재판 제1심 부당판결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래 '승리의 그날까지'를 부르고 마무리되었다. 모두가 오오무라 대표의 영전에 바로 '승리의 그날까지' 계속 싸워나가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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