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초청과 김정은의 수락으로 이뤄진 이번 정상회담은 '기존 외교 문법의 파격'을 통한 '기존 외교 문법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중국과의 정상외교를 가장 중시해왔고, 그래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중국 지도자들과 만났었다. 적어도 김정일 시대까지는 이랬다.
하지만 김정은과 시진핑이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또한 북중 정상회담 소식이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김정은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트럼프도 이를 전격 수용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5월 이내"라는 역제안까지 내놓았다.
이는 기존 외교 문법의 파격이었다. 이에 시진핑은 서둘러 김정은을 초청해 북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7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던 북중관계를 복원시킨 셈이다.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 소식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크게 두 가지 우려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한반도 문제 협상 구도에서 중국이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이다.
특히 북중관계의 악화와 북미관계의 일괄타결이 교차하면, 1970년대 미국-중국-소련 사이의 3자관계 대격동이 오늘날 북한-미국-중국의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북한이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고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 전략적 제휴를 원하고 있다는 분석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포위망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1970년대 중국과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의 우려는 이와는 정반대의 시나리오에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자칫 전쟁 가능성을 포함한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시진핑은 한반도에서의 "부전(不戰)과 불란(不亂)"을 명확한 금지선으로 설정해왔다.
또한 북핵 문제의 악화가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를 비롯한 군사력 및 동맹 강화의 빌미가 되어온 것에도 강한 경계심을 보여왔다. 더구나 최근 들어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격화되고 대만해협의 위기마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다시 한반도 정세가 위기로 치달으면 중국의 전략적 부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김정은-트럼프의 담판이 품고 있는 상반된 시나리오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 협상과 해결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판단을 야기했다. 그 일차적인 결과가 바로 북중 정상회담이다.
북한의 전략적 판단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미관계 밀착에 대한 중국의 우려는 북중관계 회복의 '지렛대'가 된다. 거꾸로 북미관계 파탄의 우려는 북중관계 회복의 '절박한 필요성'을 야기했다.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에 이어 북중관계의 회복, 그리고 예상되는 북러관계 강화야말로 7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질 북미 정상회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반도는 구질서의 부분적인 회복과 신질서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교차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 중심의 구도에서 남북한이 외교 전면에 나선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평창의 나비효과'가 만만치 않은 지정학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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