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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봄, 야생화가 펼치는 7월의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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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봄, 야생화가 펼치는 7월의 연회

[현장] 백두산, 천상의 화원을 걷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던 안개는 순식간에 걷혔다. 그 질감과 무게의 반비례에 새삼 신기해 하던 것도 잠시, 곧이어 드러난 천지의 풍광은 탄식이 절로 나왔다. 6~8월, 채 석달이 되지 않는다는 백두산의 봄. 그 한창이었던 7월의 천지는 푸르렀다.

안갯 속 어머니 품 같은 천지의 자태

"백 번을 찾으면 두 번 정도 천지를 볼 수 있어서 백두산"이라는 현지 조선족 가이드 조용수 씨의 설명이 무색하게, 그날 백두산은 너그러웠다. 해발 2257m에 떠 있는 면적 9.17㎢, 최대 수심 384m의 작은 바다. 그러나 눈 앞의 천지는 위용으로 압도하기 보다는 부드러운 어머니 품 같은 느낌을 주었다.

▲ 해발 2257m에 떠 있는 면적 9.17㎢, 최대 수심 384m의 작은 바다. ⓒ프레시안(여정민)

초록의 풀들과 맞닿아 있고, 구비구비 솟아 있는 여러 봉우리들이 안에 파묻혀 있는 천지를 마주하기 위한 길은 셔틀 버스로 시작된다. 백두산의 서쪽 고개인 서파(西坡) 산문(山門)에서 탄 셔틀 버스는 해발 2400m까지 등산객들을 실어나른다. 셔틀 버스가 운행되는 백두산 도로는 지난해 완전히 개발됐다. 서파쪽은 북파에 비해 산세가 더 험준한 탓인지 도로 등의 정비가 늦어졌다. 산문이 세워진 것도 북파는 1980년대였지만 서파는 10여 년 뒤인 1998년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1264개의 계단길이 시작된다. 2006년 처음으로 돌로 계단을 쌓았고 지난해에는 나무 계단이 완성됐단다. 안개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숨소리는 거칠어졌고 함께 출발했던 일행들은 계단 위와 아래에 고루 흩어져 찾기가 어려웠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1264개의 계단길이 시작된다. ⓒ프레시안(여정민)

▲ 천지에서 내려다 본 계단길. ⓒ프레시안(여정민)

놀라운 것은 그 계단에서 돈을 받고 사람을 실어다주는 인력거꾼이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인 나라에서, 인간이 돈을 주고 인간의 육체에 자신의 몸을 의탁한다는 아이러니는 인력거꾼이 거듭 쏟아내던 땀방울만큼 충격적이었다.

짧은 계단은 아니지만,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올 때 잠시 한숨 돌리며 바라보는 백두산의 구석구석은 또 다른 발견이었다. 가장 기온이 높다는 7월에도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만년설과 노랑, 보라의 야생화들이 한 데 어우러지는 곳. '높다'는 단어보다 '넓다'는 단어를 먼저 떠오르게 하는 광활한 백두산의 고지대. 수목한계선을 이미 지난 탓인지 계단에서 보이는 시야에 키를 잴 만한 나무는 없었다. 저 들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쯤, 계단은 끝이 난다.

▲백두산 천지. ⓒ프레시안(여정민)

붉은 줄 하나로 나뉜 북한과 중국의 국경

▲ 북한과 중국의 국경은 붉은 줄 하나가 전부였다.ⓒ프레시안(여정민)
그리고 마지막 계단을 오름과 동시에 내내 내리던 보슬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천지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 하염없이 바라본지 얼마나 지났을까. 가이드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 바로 옆에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관광객들은 한 곳에 몰려 그 넓은 천지를 몸싸움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은 붉은 줄 하나가 전부였다. 빨래줄 같은 줄 옆에 5호 경계비가 놓여 있고 중국 군인들이 관광객들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호통치고 있었다. 그러나 피부 검은 군인도, "변경을 넘는 것을 엄금하며 변경 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엄금한다"는 경고판도 관광객의 기념 촬영까지 막기는 무리였다. 사람들은 붉은 줄을 한 발 넘어 브이(V) 자를 손으로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동서남북의 백두산 가운데 북한의 영토에 해당되는 것은 동파(東坡) 뿐이다. "통일되면 북한 땅을 거쳐 백두산에 오기 위해 그동안 백두산 여행을 안 왔는데 화산 폭발 얘기가 하도 나와서 아쉬움을 무릅쓰고 이번 여행에 참여했다"던 한 일행의 자기 소갯말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1800여 종 야생화의 경연장, 천상의 화원

천지에서 오래 머물 시간은 없었다. 일행은 두 그룹으로 나눠졌다. 한 그룹은 마천루에서 청석봉(2596m), 한허계곡을 거쳐 백운봉(2661m), 녹명봉(2603m), 용문봉(2595m), 천지 장백폭포, 소천지로 이어지는 트래킹을 떠났다. 마중여행사 김창원 본부장은 "뭐니뭐니해도 백두산의 장엄한 아름다움은 이 능선을 오르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바뀌어 우박과 비 정도는 감수해야한다는 날씨 걱정도 이날은 배낭 안에 담아두어도 될 듯 했다.

다른 한 팀은 서파 계단의 옆으로 빠져 노호배를 따라 야생화를 보며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노호배. 호랑이의 꼬리에서 시작해 머리쪽으로 따라 내려가는 이 야생화길은 서파의 계단이 생겨나기 전에 등산 코스였지만 현재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했다.

중국 백두산자연관리위원회는 등산객으로 인해 야생화를 비롯한 자연환경이 파괴된다는 판단에 따라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김창원 본부장은 "일주일에 1~2팀 정도만 이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주로 야생화 관련 연구자들이 대다수란다.

▲노호배를 따라 야생화를 보며 하산하는 코스 ⓒ프레시안(여정민)

▲구름국화. ⓒ프레시안(여정민)
▲홍경천. ⓒ프레시안(여정민)
▲비로용담 ⓒ프레시안(여정민)
▲구름범의귀. ⓒ프레시안(여정민)

▲ 하늘매발톱.ⓒ프레시안(여정민)

▲ 부채붓꽃. ⓒ프레시안(여정민)
▲ 나도개미다리. ⓒ프레시안(여정민)

1800여 종의 야생화가 자란다는 백두산을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었다. 이름은 물론이고 모양새도 생소한 다양한 꽃들이 그 자태를 뽐내는 경연장이기도 했다. 잘 알려진 야생화 군락지는 왕지화원, 고산화원 등 서파에 몰려 있다. 매년 7월 초부터 15일까지 서파에서는 백두산 야생화 축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 금매화. ⓒ프레시안(여정민)

▲ 층층이풀. ⓒ프레시안(여정민)

▲꿀풀. ⓒ프레시안(여정민)

▲ 바이칼꿩의다리. ⓒ프레시안(여정민)

일행은 야생화 꽃밭의 한 가운데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가진 휴식시간. 꽃밭에 제각기 앉아 백두산 자락을 내려다 보자니 흥이 절로 났던가, 일행 중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천상의 화원은 그야말로 연회장이 되었다.

백두산의 여름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프레시안(여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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