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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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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전태일통신 12〉한 노숙인이 비노숙인에게 띄우는 편지

저는 노숙인입니다. 그리고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범죄자는 아닙니다. 이 험한 사회를 헤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랄지는 모르지만 결코 양심을 파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저를 보는, 저를 대하는 시선을 생각하면 저는 정말 제 자신이 마치 오물이나 쓰레기 폐기물이 된 것처럼 소름이 끼치고 서럽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모멸감에 분노까지 치밉니다.

***"나도 노숙인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제발 그런 낙인을 찍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노숙인이라고 얘기하면 구데기 피하듯 하지 말아 주기 바랍니다. 요즘 하도 떠들어서 저도 알고 있는 줄기세포 유전자에 애초부터 노숙인이라는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노숙인은 물론 자신의 잘못 때문이긴 하지만 어쩌다가 지독히도 불운해서 우연히 노숙인이 된 것뿐입니다.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제가 노숙인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칼날같이 불안한 세상이 되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거지가 와도 따뜻하게 대접하는 인심이 있었는데….

그래서 혹시나 제가 조금이라도 노숙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몇 자 적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아침을 여는 집'이라는 조그마한 노숙인 쉼터에 살고 있는 58세 된 독신 장애인입니다. 저는 '아침을 여는 집'이 내 집인 양 같이 입소한 동료들(노숙인들)과 가족적 분위기에서 밝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에 IMF 한파, 마침내 거리로 나서다"**

먼저 제 소개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부유한 집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중산층 정도의 가정에서 6남매 가운데 네번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에 한국전쟁을 겪었고, 일사후퇴 때는 눈 덮인 피난길에서 무척이나 고생을 하였다고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제가 일명 꼽추라고 불리는 장애인인데, 장애도 그때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 몸이 이상이 생겨 여러 병원과 용하다는 의원을 어머님과 같이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닌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도 어머님의 고생하신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고인이 되신 어머님의 노고와 사랑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합니다.

고등학교 때 아버님이 사업이 잘 안되어 학업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워 돈도 벌고 학업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으로 공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 현실 때문에 뜻대로 되질 않아 그 후 자영업을 하면서 입에 풀칠하는 수준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장애인에다 경제적 여유도 없었기에 결혼도 못한 채 나이만 먹었고, 결국 IMF 여파에 제가 하던 기원을 중단하게 되어 삶 자체가 피폐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 친척과 형제들의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1년간 먹다가 이 짓도 못할 짓이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집을 나올 때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안면이 있는 기원에 가서 상대가 없는 손님에게 바둑 상대도 하고 청소 등 잡일을 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차디찬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결국 거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노숙인이 되어 잠과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는 거리의 생활은 참으로 힘든 생활이었습니다. 벼룩시장에서 침낭을 구해 공원 의자에 얼굴만 내밀고 밤하늘을 보며 잠을 청하였습니다. 밤하늘을 보며 '내가 왜 무슨 잘못으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을 반복하며 세상과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였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에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엎치락뒤치락 잠을 못 이루다가 몸이 뒤틀리는 증상에 당혹하여 죽음의 공포까지 느껴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적도 있습니다.

어느날, 이름모를 동네 공원벤처가 잠을 청하기 적당한 장소라 앉아 있는데, 지나가는 중년부부가 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듯 스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바뀌었네. 전에 보이던 사람은 며칠 전부터 안보이더니…."
"요즈음 노숙자들이 많아진대."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던 나는 '이제 내가 노숙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엊그제만 해도 평범한 생활을 하던 서울 시민이었는데…' 하고 긴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노씨'를 아십니까**

세상과 떨어져 있는 두려움으로 혼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서울역 지하도 등 노숙인들이 여럿 모여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몇 달 안 되는 거리 경험이었지만 전보다 건강은 나빠지고 죽음의 공포 등으로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아침을 여는 집(노숙인 쉼터)이라는 시설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나라의 재정으로 침식을 제공받으며 공공근로라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어 불안감과 궁핍감이 해결되어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 하는 저소득층조차 제가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네들의 싸늘한 시선은 거리의 시민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노숙인이라는 낙인의 딱지를 단 저희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이야기를 해 보겟습니다. 아침을 여는 집에서 같이 생활하던 진 씨 성의 그 친구는 얼굴도 잘생겼고 공무원같이 단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진 씨는 주식에 투자하여 패가망신해 아침을 여는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공공근로를 나가 일하다 손가락이 골절되어 치료를 받으러 나라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갔는데, 서류를 본 의사 선생께서 "노씨군(노숙자)!" 하며 퉁명스럽게 대하여 한바탕 싸움이라도 할까 하다가 통증이 심하여 꾹 참고 치료받고 왔다고 분이 안 풀려 서너 번씩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듣는 저도 허탈해져서 맥이 빠졌습니다. 의술은 인술이라는 데 몸 치료는 물론 마음도 밝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마음에 상처를 주는지….

***이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거리노숙인'들을 만난다**

제가 생활하는 아침을 여는 집의 노숙인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으나 거리에서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을 매주 목요일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 정기적으로 만나 야간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홀아비 마음 과부가 안다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며 작은 희망이라도 나눌 수 있도록 거리 노숙인들과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2003년 12월부터 시작된 거리 노숙인 야간상담은 벌써 100차를 넘게 진행했습니다. 3년 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에 저는 매주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자신감도 없고 해서 망설였지만 이제는 어렵지 않게 이들과 커피 한 잔 하며 인사와 덕담, 통성명도 하게 되어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입장으론 얼마 전의 나를 만나는 '우리'라는 동질감 때문에 거리감이 없었고 의협심까지 생겨 밤늦은 귀가길에도 힘든 줄 모르고 발걸음이 가벼워 기분까지 좋아졌습니다.

여담이지만 서로 통성명을 할 때 역대 대통령 이름과 연예인 이름이 있기에 '자신의 처지가 떳떳하지 못하여 가명으로 말해주는구나' 생각했는데, 일 년이 훨씬 지나 얼마 전 모 노숙인 지원기관에서 진행하는 자활사업 출석 호명 때 그 이름이 실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실내는 웃음바다가 되었지요.

어렵게 지내는 친구들(거리 노숙인들)의 처지를 보면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한 친구는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날 남산 꼭대기 처마 밑에서 119응급차에 실려가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남대문 지하도에서 마치 망부석이 팔짱을 끼고 누워 있는 것처럼 힘들어 꼼짝도 못하겠다고 하면서 빨리 죽는 것이 소원이라며 치료 받기를 거부하며 지내기도 합니다.

***"낙인만은 사양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 희망과 세상을 버리지 않은 많은 친구들은 단돈 몇 백 원을 얻기 위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고, 또 다른 친구들은 길가에 버려져 있는 신문·박스·고물 등의 재활용품을 수거하러 밤낮을 이 동네 저 동네 헤매고 다닙니다. 그렇게 모은 몇 천 원 안 되는 돈으로 과거의 쓰라린 상처와 현실을 잊으려 한 잔 술을 마시곤 합니다. 그러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술을 먹던 습관만 남아 이제는 습관이 악습이 되어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평범했던 삶이 판단착오와 사기 등의 피해자가 되어 범죄나 대형사고가 나면 앞뒤 생각없이 노숙자일 거라고 보도되는 뉴스나 기사를 듣노라면 비통함에 크게 마음을 상한 적도 있었습니다.

노숙인이 아닌 시민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노숙인의 불행에 대해 제발 범죄시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제발 낙인은 찍지 말았으면 합니다. 노숙인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도로 노숙의 늪으로 밀쳐 넣는 잔인한 짓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노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은 참 사람을 작게 만듭니다. 또 내 한 몸 뉘일 공간이 없어 거리로 노숙인 쉼터로 떠도는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을 하고자 하지만 이제 몸은 하나씩 병들어 가고 할 수 있는 일도 고용해 주는 사장님도 점차 줄어가고 있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듭니다.

연말입니다. 요즘처럼 싸늘한 연말이면 저희들은 더욱 힘듭니다. 그러나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요. 보통사람들이 꿈꾸듯이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저도 갖고 살아가렵니다. 저처럼 없이 사는 사람들이 희망을 놓지 않고 나은 삶을 꿈 꿀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무관심을 넘은 낙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짧지 않을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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