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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사회의 비극, '사회적 타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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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사회의 비극, '사회적 타살' 공화국

[의제27 '시선'] 한국은 왜 '자살공화국'이 됐나

"광주에서 고교생 자살 사건이 잇따라 교육당국의 학생들에 대한 자살 예방과 위기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번에 투신 자살한 여고생 2명을 비롯해 올 들어 모두 4명의 고교생이 목숨을 끊는 등 최근 3년 동안 광주에서 30명이 넘는 학생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2008년 7명, 2009년 14명, 지난해 6명 등 27명에 달했다."[노컷뉴스] 2011년 06월 19일(일)

"지난 19일 오전 9시께 익산시 동산동 모 아파트에서 임모(71)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요양보호사 김모(55)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임씨는 2007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우울증 증세를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오후 7시께 완주군 소양면에서 노부부가 자신의 집에서 제초제를 나눠 마신뒤 남편은 현장 사망했고,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남편은 10년 전 뇌출혈로 인해 병원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5년 전 우울증을 앓아오면서 부부가 동반 자살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노컷뉴스] 2011년 06월 21일(화)

"자영업을 하는 50대 가장이 부인, 아들 2명과 함께 집에 연탄불을 피워 동반자살했다. 17일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7시50분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김모씨(52)와 부인 박모씨(49), 중학생(14)과 초등학생(12) 두 아들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 거실 탁자 위에서는 '가족한테 미안하다. 애들은 맡길 사람이 없어 데려간다'는 내용의 A4용지 2장에 김씨가 쓴 유서가 발견됐다. 김씨는 보증금 2000만원, 월세 70만원 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나 몇달치 집세를 내지 못하는 등 최근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향신문] 2011년 06월 17일(금)


연일 우울한 자살 소식은 너무나 일상적이듯 너무나 익숙하게 전해지고 있다. OECD 국가중 최고의 자살율을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을 가히 '자살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뭐라 할 말이 없다. 작년 한해 모두 1만 4천명, 하루에 40명가까이, 두시간에 세명꼴의 자살자들이 발생하는 나라이다. 인구 10만명당 30명이 자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웃 일본의 19명을 능가하고 있고 스웨덴의 10명이란 수치를 비웃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율의 심각성은 1988년, 1998년, 2008년을 거치면서 10년마다 이 수치가 배로 뛰었다는 점에도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자살이 과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의 '자살(自殺)'인가? 그에게 목숨을 끊으라고 강요한 보이지 않는 손은 없었던가? 우리 사회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벼랑끝으로 내몰았고 더 이상 출구가 없는 그들은 마침내 스스로의 방어기제를 더 이상 발동시킬 수 없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아주 순전히 그의 죽음이 100% 개인적인 이유와 사유 때문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그에게 있어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희망의 사다리를 늘어 뜨리지 않고 그를 방치·방임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한 사회의 자살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점에서 필자는 일찍이 2003년도 자살을 '사회적 타살'로 정의하기 시작하였다.
▲ 독거노인을 찾아 위로하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한국의 높은 자살율은 넓은 복지사각지대가 한 원인이기도 하다. ⓒ연합

사회적 타살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서울시 경찰청이 밝힌 자살 현황에 따르면 전체 자살자 수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세계경제위기로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8년부터는 빈곤이나 사업실패 등 경제난으로 인한 자살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자살의 이유가 빈곤인 경우 2007년 64명에서 2009년 151명으로 약 2.4배 증가했고, 사업실패도 59명에서 138명으로 2.3배 이상 증가하였다. 희망을 잃어 자살을 택한 수도 105명에서 253명으로 2.4배 증가했고, 가정불화는 88명에서 304명으로 약 3.5배 큰 폭으로 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자 중 진정 생활고에 의한 비관이 이유인 경우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실제 경찰의 자살원인별 통계도 추정치일 뿐이다). 그러나 경제난과 빈부격차의 심화, 신용불량자의 급증 등 정황을 고려할 때 사회적으로 가벼이 넘길 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하기에는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 생활고를 비관하여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건이 빈발함은 우리 사회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하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음을 반증하는 예이다. 특히 전형적인 빈곤층만이 아니라 중산층 또는 서민층(중소기업 회사원, 검찰공무원, 소규모업체 사장 등등)으로부터 급격히 몰락하여 극도의 생활궁핍에 시달리는 계층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벼량끝 계층"이 존재하고 있음이 자각되어야 하며, 또한 우리사회 내에 일하면서도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신빈곤층(working poor, 노동능력이 있어 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부득이하게 실업상태에 있는 빈곤계층)' 형성의 기제가 작동되고 있음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자살의 만연 현상은 우선 그 원인이 순순히 개인의 부족, 무능, 나태, 심리적 장애 등등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이라는 점, 그리그 사회구성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생활고에로 인해 가장 극단적인 해결방안(?)이자 구제수단(?)인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별다른 사회적 지원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부터 이를 '개인적 차원의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타살'이라고 정의내림이 옳다. 더군다나 스스로의 형편과 처지에 대해 더욱 더 귀책사유를 찾을 수 없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의 자살은 더욱 더 사회적 책임이 크다. 나아가 가족동반자살은 더 큰 문제이다. 배재대학교의 이미숙 교수가 지적하듯, 이는 정확히 말하면 '자녀살해후 자살'로 불리어야 한다. 아무런 죄 없이 태어나 이 사회가, 그들의 부모가 이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야만에 불과하다.

벼랑 끝에 내몰려 사회에 의한 타살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이들이 발생하는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제도는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수당 등 소득보장수단들이 도입되어있으나, 실제 혜택을 받는 대상자수와 급여수준이 적절하지 못함으로써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사회복지제도는 주로 저소득계층 위주의 잔여적 제도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4대 사회보험이 중산층을 중심으로 가동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등 주변계층들을 사각지대로 갖고 있어 결과적으로는 그림의 음영처리된 부분처럼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중 아예 소득이 부족하여 공공부조의 대상이 되거나, 중산층 이상의 상위계층인 자들은 오히려 다행이다. 문제는 차상위계층이거나 그와 유사하지만 국가와 사회로부터 별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갑작스런 실업이나 파산에 의해 그러한 계층으로 전락한 중산층이 바로 벼랑끝 계층이다.

<그림> 소득계층별, 종사지위별, 인구계층별 복지제도의 적용 실태


▲ 빈 공간이 이른바 '복지사각지대'다. ⓒ프레시안

이들 벼랑끝 계층들에게 별다른 지지책이 없음은 아래 그림처럼 가족의 지지정책에 투여되는 사회지출이 지극히 미미함에서도 입증된다. OECD 국가들은 GDP 중에서 평균적으로 2.4%를 가족지지정책에 대한 재원으로 사용하는 데 우리는 겨우 0.2%수준에 불과함을 그림은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우리는 그나마 현금급여나 세제혜택은 거의 없고 약간의 서비스급여만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미국이나 일본을 제외한 여타의 OECD 선진국가들과는 대조되지 않는가?

<그림> 가족에 대한 사회지출의 GDP 상의 비중
ⓒ프레시안

대한민국은 가족 기능의 사회적 지지가 매우 취약한 가운데 이미 전통적인 가족내 부양기능이 급속히 저하됨으로써, 가족이란 울타리가 자살의 방지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살로 이르는 고속망 역할을 하는 불행한 모습이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만연하는 사회적 타살을 줄이는 방법은 결국 세가지지지망으로 압축된다. 우선 개인의 심리적, 정서적 자기지지망을 강건하게 만드는 일이다. 자살의 문턱으로 밀려 나와도 스스로 자살이란 문턱을 넘지 않을 수 있는 자기지지망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지역사회 지지망이다. 공공과 민간에서 지역그물망을 통해 벼랑끝 계층에게 이웃의 지지망을 통해 고립감, 절망감, 우울증을 벗어나도록 가장 가까운 타인들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인 어려움까지도 해결하는 지지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 번째 지지망인 국가지지망이 중요치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보았던 사각지대를 좁히고 부실한 가족지원책을 복구하는 대대적인 노력이 무엇보다도 사회적 타살 공화국을 벗는 강력한 기반이 된다.


그간 우리사회에는 정신치료전문가와 상담전문가의 손에 자살시도자들의 문제를 맡기는 것이 주된 처방이었다고 해야 한다. 이들 전문가에 의해 자기지지망이 강화되기만을 바라온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경제적 능력이 있고 스스로 이들 전문가를 찾아갈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접근법이다. 한편 여전히 국가지지망은 허술하기만 하고 선별적 복지니 복지포퓰리즘이니 하는 덫에 걸려 요원한 발전의 길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나의 의미있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사회적 타살을 막아보자는 적극적 방책이 모색중이다. 바로 서울 노원구가 주목된다. 노원구는 2009년 관내에서 자살한 이들이 180명이란 사실에 주목하고, 학교, 병원, 119 소방대, 경로당, 복지도우미(통장)..... 등등을 통해 독거노인, 아동청소년 등 자살에 취약한 계층들을 상대로 직접 심리검사지를 통해 진단하고 실제 고위험군을 찾아내 공식적, 비공식적 지지체계를 만들어 주는 시스템을 발동시킨다. 이미 1만2천명에 달하는 관내 독거노인들을 전수 검사하였고, 2학기가 들어서면 관내 모든 학교 학생들의 검사도 계획되어있다. 생명을 소중히 지키는 일에 관내 종교지도자들과 뜻있는 이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개인 스스로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임의적이고, 국가의 지지망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요원한 가운데 지자체가 앞장 서 지역사회 지지망을 만드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는 것이다. 서울 노원구의 실험이 사회적 타살 공화국의 오명을 당장 씻어내지는 못한다해도 적어도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주효한 비책을 찾아내는 의미만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는 6.2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권력이 보편적 복지세력들로 상당수 이관된 결과, 우리가 맛볼 수 있는 희망의 한 조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타살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우울한 현주소는 복지의 확대과정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보편적 복지를 달성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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