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개와 늑대의 시간'…지금 민주당의 시계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개와 늑대의 시간'…지금 민주당의 시계는?

[손혁재 칼럼]<9>야당으로 위상부터 재정립하라

4년전 이맘때 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MBC 드라마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방영되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광대 공길 역을 맡아 '왕남폐인', '이준기 신드롬', '예쁜 남자 신드롬'을 만들어낸 이준기 씨가 주연을 맡았다. '여자보다 더 예쁜 배우' 이준기 씨가 이 드라마에서는 거친 역할을 맡아 더욱 관심을 끌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빛과 어둠이 서로 바뀌는 시간을 의미한다. 어둑어둑한 어둠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동물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칠 무서운 늑대인지 제대로 구별이 안 되는 시간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의 어둠이라면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섬뜩하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 '개와 늑대의 시간' ⓒMBC

지금 민주당의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민주당의 회의 장면이나 기자회견을 보노라면 그 배경에 '2012 민주정부 민주당'이라는 글귀가 눈에 띤다.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해 세 번째 민주정부를 세우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필수인데 과연 민주당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인지 아직은 장담하기가 어렵다. 국민들이 민주당을 집을 잘 지켜줄 개로 인식할지 국민을 해칠지도 모를 늑대로 인식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민주당이 정권탈환을 자신하는 배경에는 반(反)MB 민심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채 백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 촛불민심에 크게 덴 뒤 국민의 지지를 포기했다. 공안기구를 앞세웠고, 과반수 국회의석을 믿고 돌격대식으로 밀어붙였다. 야당의 거센 반대로 여의치 않을 때에는 불법 탈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이명박 정부는 신호등을 무시하며 마구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았다. 이명박 정부에게 국민은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선거 때마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를 혼내주었다. 특히 지난 해 치러진 6.2 지방선거와 올해 치러진 4.27 재보선에서 이명박 정부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반(反)MB민심이 결정적인 한 방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만 두들겨서는 선거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지금의 민주당은 존재감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부에 등을 돌렸으면서도 민심은 민주당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MB의 대안으로 오히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가 더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선거 때마다 이긴 것은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한나라당의 패배, 아니 MB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성격이 더 강하다.

민주당이 반MB민심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똑같이 당한 경험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을 장악했고,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행정권력을 되찾았으며,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의회권력까지 독차지했다. 국민의 선택으로 한나라당의 일당독재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잇단 한나라당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반노무현 정서였다.

당시에는 '노무현 때리기'가 국민스포츠가 되었다는 비유까지 나올 정도로 모든 것이 '노무현 탓'으로 돌려졌다. 하다못해 궂은 날씨라든가 개인적인 불운조차도 노무현 탓으로 간주되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열린우리당에게는 국정운영에 실패한 무능한 정치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노무현 때리기'만으로 한나라당은 이겼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한 국민은 '부패했지만 유능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냈다. 지난 3년 동안의 MB 실패로 한나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약화되었다. 어찌 민주당이 'MB 때리기'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다르다. 최근 몇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한나라당에게는 확고한 지지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 주리라는 믿음으로 어떤 경우에도 한나라당을 적극 지지한다. 차떼기가 불거져도 성희롱이 문제가 되어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준다고 믿는 한 자발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민주당에도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자'라 불리는 적극 지지층이 있었다. 지금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과거와 견주어 충성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등을 돌린다.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지만 서민은 민주당보다 민주노동당 쪽으로 기울어 있고, 중산층은 한나라당 쪽에 가깝다.

민주당의 현주소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민주 평화 개혁 인권 민생의 정치적 보루였던 민주당은 마침내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정권재창출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무능의 프레임'이 확산되면서 민주당은 10년 만에 야당의 자리로 돌아왔고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도 무시되었다.

그러다보니 '싸우지 않으면서 죽는다'는 냉혹한 평가까지도 나왔다. 민주당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정부여당의 실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야당이자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야당이다. 국정에 실패한 무능한 정치세력이라는 낙인이 너무 깊다. 특정지역에 기대는 폐쇄적 야당이라는 평가도 뼈아플 것이다. 한나라당도 특정지역에 기대고 있지만 민주당보다는 덜 욕을 먹는다. 민주당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민심인 걸 어찌하랴.

민주당의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야당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야당의 역할은 '소금'과 '등대'이다. 야당은 정치가 썩지 않게 만드는 소금이다. 그러나 과연 민주당이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폭주를 민주당은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다. 국회의석 4분의 1을 겨우 넘는 숫자로는 원내과반수의 한나라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민주당의 무능 무기력이 용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KBS 수신료 처리과정을 보면 잘못된 현실인식과 안이한 전략에 안타까울 뿐이다. KBS 수신료 인상이 현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임을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합의해줬다면 직무유기다.

또 야당은 등대여야 한다. 거칠고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안전한 항로를 알려주는 등대처럼 야당은 국민에게 내일의 희망을 주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폭주로 민주주의가 뒷걸음치고, 민생이 어려워지고 남북관계의 단절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고 야당에게 정권을 넘겨준다면 민주주의가 되살아나고 민생이 좋아질 것이며 한반도에 평화분위기가 조성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야 국민이 지금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민주당을 대안으로 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2012 민주정부'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활기찬 민주당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대안정당/수권정당/민생정당/정책정당/젊은 정당/전국정당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명박의 실정에 따른 반(反)MB민심이라는 반사이익에 기대는 '소극적 정치'에서 벗어나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 아젠다를 먼저 제시해서 한나라당을 끌어가는 '능동적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국민의 요구를 확실하게 반영함으로써 야당으로서의 정체성과 선명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가치, 새로운 이념을 제시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민주 평화 개혁 진보 인권 민생 복지의 정치적 보루로서의 '정체성'(Identity)과 억울함이 없는 사회, 정의로운 사회,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반칙 특권을 하지 못하는 투명한 사회와 더불어 보편적 복지 등 대민전략구상(생활정치)을 통한 '신뢰'(confidence)의 회복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표로 홍준표 의원이 선출되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운영의 실패에 공동책임을 져야 할 친이계는 몰락해 뒤로 물러났다. 민주당이 한 방을 노리며 두들기려 한 상대가 뒤로 빠지고 40대와 50대로 짜인 젊은 한나라당 지도부가 새로운 상대로 등장했다. 민주당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하루에 두 번 찾아온다.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이다. 지금 민주당의 시간은 빛나는 해가 찬란하게 떠오를 새벽일까. 어두움이 내려와 차기 이후를 기다려야 할 오후일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