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분석은 똑같습니다. 친이계는 몰락했고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이 됐다고 합창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비주류 중립파를 자처해온 홍준표 의원이 당 대표가 된 반면 친이계의 지원을 받은 원희룡 의원은 겨우 4위를 해 체면을 구겼으니까요. 여기에 친박계 단일후보로 나선 유승민 의원이 2위를 했으니 누가 봐도 한나라당은 친이계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 보면 다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친이계의 몰락이 친이계에 자유를 선사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국일보'의 표현처럼 친이계가 '구주류'를 넘어 '비주류'가 된 게 확실한 만큼 그들은 이런저런 사정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비주류'에게 부여된 몇 안 되는 특권 가운데 하나인 '목청 높일 자유'를 얻은 것이니까요.
'목청 높일 자유'만 얻은 게 아닙니다. '목청 높일 이유'도 많아질 겁니다. 이번에 새로 꾸려지는 최고위원단의 면면을 보면 유승민 의원을 제외한 선출직 최고위원 4명이 모두 수도권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누구보다 민심의 격랑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죠. 이 때문에 이들이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주도할 공산이 크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큽니다. 실제로 홍준표 새 대표는 "당의 요구를 정부가 응하지 않을 땐 당에서 치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고, 유승민 의원은 "내년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명박 정부와 확실하게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홍준표 신임 한나라당 대표. ⓒ뉴시스 |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가, '박근혜당'이 쾌속질주를 할 것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징검다리 건너듯 할지 모릅니다. 때론 휘청대고 때론 기우뚱하면서 한 발 한 발 더디게 내디딜지 모릅니다. 과연 이런 행보가 발등의 불로 다가온 총선을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김준규'는 관심 없다
별 관심이 없습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퇴를 선언했다고 해서 새롭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습니다. 이미 예고된 사퇴이기에 그렇고, 임기를 고작 40여일 남기고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오히려 모든 언론이 지적했듯이 그가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를 온몸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맙기까지 합니다. 국민에게 검찰의 실체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셈이니까요.
관심사는 '김준규'가 아니라 '포스트 김준규'입니다. 후임으로 어떤 사람이 검찰총장 자리에 앉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상당히 예민한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줄줄이 치러지기에 그렇습니다. 새 검찰총장이 어떤 '마인드'와 '스탠스'로 레임덕과 선거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검찰의 위신과 정체성이 재조정 될 뿐 아니라 정치권의 기상도도 달라집니다.
주어를 '포스트 김준규'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 바꿔도 의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나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를 후임 검찰총장에 앉히는지를 보면 임기 말 권력관리 구상을 엿볼 수 있거든요. 정면돌파로 가는지 순응으로 가는지….
군부대조차 이 지경인데
국방부가 안보체험장을 연답니다. 민간업체에 위탁해 예비군훈련장을 실탄사격장으로 개방한다고 합니다. 대상은 16세 이상, 즉 고교생 이상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수로 인한 총기사고 가능성을 우려하고, 실탄 분실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하지만 군의 대답은 한가합니다. "민간위탁업체가 사고 예방과 실탄 분실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수립하고 실탄사격 체험은 교관의 엄격한 통제에 따라 실시할 계획"이라는 겁니다.
'공자님 말씀'을 반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팩트 제시'라고 하니까 이 사례를 언급해야겠네요.
어제 해병대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모 상병이 총알 15발이 들어있는 K2 소총을 난사해 4명의 병사가 사망하고 한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김 상병은 총기를 난사한 후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하려다가 실패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눈길을 끄는 건 김 상병의 총기와 실탄 입수 경위입니다. 당시 김 상병은 근무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총기와 실탄을 손에 쥘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버젓이 소총에 실탄, 게다가 수류탄까지 확보했습니다. 야밤도 아니고 오전 10시, 즉 백주대낮에 아무 제지를 받지 않고 총기와 실탄을 훔친 겁니다. 군 수사당국의 추정에 따르면 근무교대를 틈타 상황실 총기 보관소에서 소총과 실탄을 훔쳤다고 하는데요. 어떨까요?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는 군부대에서조차 이렇게 총기·실탄을 어렵지 않게 훔치는 판에 민간위탁업체가 '철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요?
참고로 지나간 뉴스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2005년 12월 강원도 고성군 율곡부대 예하 모 대대에서 총기 탈취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모 예비역 중사와 장모 예비역 병장 등이 은행을 털기 위해 이 부대에 들어가 K2 소총 2정과 실탄 700발, 수류탄 6발을 훔쳐 달아난 겁니다. 민간인이 군부대에 들어가 총기를 탈취하는 판에 민간위탁업체가 관리하는 예비군훈련장에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4일부터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의 '뉴스진맥'이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재됩니다. '뉴스진맥'은 조간 신문의 내용을 요약해주는 천편일률적인 '뉴스브리핑'이 아니라 김종배 씨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뉴스의 전후 맥락을 살피는 새로운 형식의 뉴스 읽기입니다. 이 글은 '미디어토씨'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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