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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사각지대...'섹스 산업'은 왜 여전히 건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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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사각지대...'섹스 산업'은 왜 여전히 건재한가

[민교협의 정치시평] 아직도 '카르텔'은 공고하다

한국 사회는 박근혜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개인이나 정당 중심으로 정치를 사고하는 오랜 관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울러 현실 정치에서는 진보/보수 혹은 좌/우 라는 구분은 허구적이며, 실제로는 정당 정치 이면에서는 사회의 기득권 집단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위해 만들어 낸 구도라는 것을 수면 위로 들어났다. 소위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기득권 지배 집단들의 문제부터 일반 대중 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의 심각한 문제들까지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시점에 일어나는 사회문제들은 어찌 되었든 그 정권의 문제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과거 극우파나 일부 좌파나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대중들은 이러한 논리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중들은 검찰의 '이명박근혜' 일당들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 기각이 현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 적폐 세력의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천 참사에서도 현장 하급 단위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관행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 소방 예산 등을 삭감하자던 집단이 바로 수구 기득권 정당이었음을 폭로하면서 그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하고 있다. 진보 매체 기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역시 언론의 비판 역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보다는 비판 꺼리를 맥락 없이 찾아다니는 일부 기자들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치적 민주화에 비해 더딘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인해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끔찍한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유사한 수준의 국가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대중들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소위 '금수저/흙수저론'에서 보듯 단순한 불평등이 아닌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차별이 구조화되어 있는 불공정한 갑질 사회, 억압적 위계사회, 공고한 신분사회에 대해 대중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극소수는 '탈조선'에 성공했을 수 있지만, 그러한 기회조차 찾기 힘든 이 땅의 대다수의 민중들은 극심한 좌절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거나 대안을 찾기도 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일부는 자포자기적 유흥이나 범죄, 자살로도 출구를 찾는데 그 비중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 혹은 전통적인 사회 문제 외에도 노동 재해, 소방관 처우 개선, 직장 내 폭력, 갑질 문제, 아동학대, 청소년 폭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온라인 상에서의 활동도 활발해진 것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 중요한 이슈의 경우 단순한 의견 표명 등을 넘어 강남역과 구의역 사건에서처럼 적극적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조직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최근 일베 싸이트 폐쇄 등 국가 기구에 대한 청원의 방식을 통해서도 의견을 표출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목소리들이 활발히 개진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촛불 정국이 촉발되었던 정유라 이대 특혜에 대한 분노에서 보듯, 특히 '공정성' 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도 동시에 표출하고 있음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위대한 촛불 혁명에 참여하고 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동시에 바로 직전까지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었던 다양한 한국 사회의 병폐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비판적 시민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회경제적으로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저급한 사회적 의식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좌파적 대안에 대한 부재는 대중의 불만과 비판이 왜곡되는 현상을 한층 더 부채질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국가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그 괴리가 훨씬 더 심각하다.

많은 이들이 불공정성에 대한 분노는 과감하게 표출하지만, 그 근본적 원인인 불평등이나 차별에 대해서는 그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먼저 최저임금, 임대료, 부동산 세금, 의료보험 등 근본적인 경제 불평등 구조 시정 노력 과정에서 자신이 손해를 볼 것으로 예측될 경우 정치적 지향과 다르게 매우 이기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경제적 이득의 문제가 아닌 경우에도 현 한국 사회에서의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의 원인을 여성이나 이주노동자 등에게 찾아 공격하는 경우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 국가에서 복지 혜택 축소의 원인을 외국인에게 찾거나 하는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의 좌절과 불안과 분노는 오히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향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언젠가부터는 경제적으로 전혀 위협이 되지도 않는 장애인, 5.18 유공자, 세월호 유가족 등에 대해서도 마치 불공정, 부정의의 실상인 양 왜곡하고 근거 없는 비난과 혐오를 쏟아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들을 잘못 이해하고 지지 혹은 비판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진보좌파 논객들과 지식인들에게 책임이 크다. 그리스 시리자 집권 전후의 문제, 유럽 극우파 대두의 문제, 영국의 브렉시트 문제, 미국의 트럼프 당선 등등 거의 모든 사안에 있어서 이들은 노동 대중의 불만이 표출되는 방식이 정치적으로 극우 포퓰리즘 혹은 시장주의적 우파적 대안을 추구하는 상황에 대해 극단적으로 무지했다. 사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오직 새로운 좌파 정치 세력이나 이데올로그 등 행위자들의 표면적 언사들에만 몰두하다 보니 이들이 집권한 이후의 변화를 단지 좌파 지도자들의 변절이나 자본으로의 투항, 정당의 신자유주의 수용 혹은 우경화로만 이해하는 방식이 수 십년 동안 지겹도록 반복되어 왔다.

대다수 진보좌파 논객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똑같은 오류를 수십년 동안 반복해 오고 있다. 근본적 혁명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는 상황 속에서 극소수의 극좌적 관념좌파들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정당 중심의 정치 논리, 자본의 지배 외 우리 사회의 실질적 지배 구조에 대한 몰이해, 특히 정당 권력 교체와 별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관료 지배 및 사회의 각종 기득권 집단들의 지배에 대한 무지는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적폐인 밤의 세계, 기득권 세력들과 동맹체를 이루고 있는 '어둠의 지배자'들에 대한 몰이해는 사회의 진정한 개혁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추한 영역이 여성들의 피눈물어린 용기와 참여로 이제야 폭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 속에서도 진보좌파 지식인들, 논객들의 한계들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계적인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특정 분야의 일로 축소하거나 일부 개개인들의 '성범죄' 문제로 좁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접대부에게나 하던 짓을 했다는 식으로 더러운 짓을 해도 되는 여성들은 별도로 있다는 식의 논리 하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성폭력을 당한 여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2차 가해'는 물론 '사실이라도 공공연하게 적시하면 위법'이라는 법의 허점을 찾아 수많은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정한 진보좌파 지식인이라면, 조금 더 논의의 지형을 확장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를 보지 못 했다. 성폭력과 성추행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문화에서 기인한다.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 깜짝 안 하고 훨씬 더 끔찍한 성폭력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성산업 공간이야 말로 한국 사회 젠더 폭력의 근원지이다. 한국 사회 성평등을 가로막고 있는 최악의 적폐를 청산해야 함을 역설해야 하지만 모두 다 엉뚱한 지점에서 소모적인 말싸움만 하고 있다. 유명한 개개인들의 성범죄를 단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소리조차 내지 못 하는 사회의 뒷면에서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드러내어 분쇄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적폐는 진보좌파 내부에도 많이 쌓여 있다. 사회와 대중을 종합적으로 보지 못 하고, 극단적으로 지지와 비판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관념은 이제 버려야 한다. 정작 지지해야 할 대중의 의지는 무조건 '문빠' 등으로 규정하고 비아냥대고, 오히려 비판해야 할 대중의 이기적 행동은 옹호하는 과오는 이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는 것을 역설하는 이들이 오히려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접근해서 차이들을 증오에 찬 적대적인 관계로 바꾸는 적폐행위들은 그럴싸한 논리로 은폐하고 있을 뿐 사실 이 사회에 만연한 혐오 감정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노동과 젠더 이슈 등 사회경제적 이슈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사회의 반영이 한국 정치이다. 모든 것이 한계가 큰 현 정권 하에서도 우리가 사회의 진보적 발전, 평등한 사회 건설을 위해 진정으로 구축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을 겪으며 상대적으로 공고화된 것으로 알고 있던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미투' 운동을 비롯한 몇몇 소중한 진보적 현상들이 정권이 바뀌더라도 다시 퇴보하고 억압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지와 비판의 지점들을 유연하게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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