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막급이다. 책임지지 못할 말을 쏟아냈으니 말이다. GM과 관련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팩트 체크'는커녕 새로운 소식을 소화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이젠 GM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도 수많은 뉴스를 생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용두사미가 될지언정 뱉은 말은 지켜야 그나마 <인사이드 경제> 연재라도 유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두서가 좀 없더라도 최근에 나온 뉴스들 중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지점, 언론들이 잘 다루지 않은 쟁점들을 몇 가지 체크해보도록 하겠다.
한국GM 연간 50만대 생산 체제?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부르는 말
"현재 한국GM의 생산량이 연간 50만대를 밑도는데, 앞으로 50만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난 2월 20일, 국회를 찾은 GM 해외사업부문(GMI) 사장 배리 엥글이 한 얘기이다. 대부분 언론이 이 얘기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한국GM의 장밋빛 미래가 열리는 것처럼 써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런 얘기를 다룰 때에는 ‘한국GM의 현재 연간 생산량이 얼마인지’ 정도는 확인하고 쓰는 게 상식 아닐까?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간하는 ‘자동차 통계월보’에 공시된 한국GM 생산량을 연도별로 뽑아 표를 만들어 보았다. CKD(반조립제품)는 제외하고 완성차 생산량만 뽑아낸 것이다.(아래 표)
연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생산량(대) | 810,854 | 785,757 | 782,721 | 629,230 | 614,808 | 579,745 | 519,385 |
우선 엥글 사장의 말과는 달리 한국GM의 연간 생산량은 단 한 번도 50만대를 밑돌았던 적이 없다. 2011~2013년에는 80만대 안팎의 완성차 생산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엥글 사장이 말하는 연간 50만대 생산 시스템이란? 그렇다. 지금보다 생산량을 더 줄인 상태, 더 많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엥글 사장이 말하는 50만대 물량 유지 시점이란, GM 본사가 한국에 신차를 배정한 이후를 얘기한다. 안정적인 북미 수출 물량이 보장되는 신차가 온 뒤에나 50만대 수준을 유지한다는 말은, 그 전까지는 50만대보다 밑도는 생산량이 될 것이라는 말.
한국에 신차가 배정된다 하더라도 4년 뒤(2022년)에나 양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엥글 사장의 말은 2018~2021년까지의 생산량은 40~50만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군산공장 폐쇄에 이어 부평·창원공장에 대한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슨 돈으로 1월말에 4000억을 갚았을까
글로벌 GM의 돈놀이, 고금리대출 행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국GM의 막대한 차입금 중 1월말에 약 1조1000억 원에 대한 채무 만기가 도래했다. 그런데 언론 기사에 따르면 이 중 7220억의 채무는 만기를 1개월 연장했고, 4000억의 채무는 본사에 갚았다는 것. 즉, GM 본사가 4000억을 회수해 갔다고 한다.
2016년 한국GM 감사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본 결과, 본사가 회수해간 차입금은 위에 푸른 박스로 표시된 외화차입금(원화환산액 약 4097억)인 것으로 추정된다.(푸른 박스는 <인사이드 경제>가 표시한 것임.) 아니, 지난 3년간 2조 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결국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국GM이 도대체 무슨 돈으로 4000억을 갚았다는 것일까?
혹시 추가로 차입을 해서 빚 돌려막기를 한 것일까? 그렇다면 차입을 해올 곳이라곤 GM 본사밖에 없다. <인사이드 경제>가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GM은 여신을 근거로 경영에 간섭하려는 금융기관 대출을 매우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 지상욱 의원(바른미래당)과 산업은행 등에 따르면, 1월말에 차입금을 상환한 결과 한국GM이 본사로부터 차입한 금액이 총 3.2조에서 2.9조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만일 본사로부터 추가 차입을 해서 4000억을 상환한 것이라면, 총 차입금이 줄어들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 뿐이다. 차입금이 아니라면 완성차업체가 만질 수 있는 자금이란 차를 팔아서 돌아오는 현금, 즉 매출액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런 현금은 통상적으로 매달 들어가는 기업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는 게 정상인데, 가뜩이나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한국GM으로부터 본사가 현금으로 회수해갔다는 말이 되니까 말이다.
그럼 한국GM은 대체 무슨 돈으로 운영경비를 댄다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한국GM이 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도는 상황이다. 만약 임금체불이 현실화된다면, 노동자들에게 줄 임금으로 본사 차입금을 갚았다는 말이 된다.
상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기가 고작 한 달 연장된 7220억의 차입금 만기(2월말)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상태이다.(아래 표의 푸른 박스) 게다가 2016년 감사보고서를 추가로 분석해보면, 오는 4월 2일부터 9일까지 매일 1600억씩 총 9880억의 차입금 만기가 도래한다.(붉은 박스) 다시말해 2월말부터 4월초까지 갚아야 할 차입금 규모만 1조7100억에 달한다는 것이다.
저 돈은 또 무슨 수단으로 갚아나간단 말인가? 혹시 임금만이 아니라 퇴직금까지 저당을 잡으려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이사회를 거쳐 소집될 주주총회에서 한국GM은 부평공장 부지를 본사에 담보로 제공하자는 안건을 올린다고 한다.
한국GM이 빚을 지고 있는 채권자는 막대한 차입금이 발생한 본사만이 아니다. 수 조원 대의 ‘퇴직금충당부채’를 지고 있는 노동자들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채권자들이다. 그런데 공장 부지를 본사가 담보로 잡겠다면, 정말로 퇴직금까지 저당을 잡겠다는 말이 아닐까?
두 개의 표에 공통으로 달린 주석을 보면, 차입금에 대해 이사회 결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기가 연장되고 있다. 그 이사회는 GM 본사의 이사회가 아니라 한국GM 이사회를 말한다. 오늘(2월 23일) 열리게 될 한국GM 이사회는 만기 연장 문제를 어떻게 논의하게 될까?
군산공장 폐쇄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군산공장 폐쇄 발표의 충격 탓일까? 여러 언론사들이 놓치고 있는 문제가 있다. 2월 13일,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자마자 GM 본사 역시 홈페이지(www.gm.com)에 이와 관련한 보도자료(성명서)를 게시했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 때문인지 게시된 날짜는 한국보다 하루 앞선 2월 12일로 되어 있다.
본사의 성명에 따르면 군산공장 폐쇄로 인해 총 8억5000만 달러(약 9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3억7500만 달러는 희망퇴직 위로금 등 노동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현금성 비용인 반면, 나머지 4억7500만 달러는 비현금 자산상각(non-cash asset impairments)에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한다. (아래 글)
이러한 비용 지출은 대부분 2018년 2분기 말까지 반영되며, 이는 특별 지출로 인식되어 조정 EBIT(영업이익) 및 희석 EPS(주당 순이익)에서 제외된다는 말도 나와 있다. 사업계획을 세우던 시점에 예상할 수 없었던 사안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비용 지출이 이뤄질 경우 특별 지출(Special Items)이라는 항목으로 회계 처리를 하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 GM 본사의 회계장부에는 군산공장 폐쇄 관련 비용이 특별 지출이 되어 영업이익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즉 본사의 영업이익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본사의 회계장부에는 그렇게 처리한다 치고, 군산공장 폐쇄 비용이 한국GM 회계장부에는 어떻게 기록될까?
우리는 이미 이런 종류의 문제를 한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2013년 12월, 갑자기 쉐보레 유럽을 철수한다는 GM 본사의 일방적인 결정이 있었다.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쉐보레 유럽 철수비용에 대해 GM 본사의 회계장부에는 특별지출로 처리한 반면, 한국GM 회계장부에는 지분법 손실로 모조리 영업외비용 처리가 되었다. 2013년 한국GM이 기록한 1조 원의 영업이익은, 이런 막대한 영업외비용 등으로 인해 1000억의 당기순이익으로 폭삭 내려앉게 된다.
군산공장 폐쇄비용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만일 폐쇄가 강행된다면 군산공장이라는 중요한 유형자산에 대한 재평가를 할 수밖에 없고, 가동이 중단된 공장이기에 엄청난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국GM 회계장부에는 엄청난 비용으로 잡히게 되며, 이는 영업이익 내지 당기순이익에 직접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즉, 한국GM의 올해 회계장부 역시 수천억의 군산공장 폐쇄비용이 반영되어 1조가 넘는 당기순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GM 본사의 회계장부에는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는 반면, 비용과 손실은 한국GM 회계장부로 집중된다는 얘기이다.
신차 하나 개발하는데 28억 달러의 투자?
한국 정부와 GM 사이에 본격적인 협상이 개시되었다. 삼일회계법인을 동원해 실사를 진행하게 되며, 실사 내용에 따라 한국 정부의 지원 내지 투자 참여계획을 밝히겠다고 한다. 현재 정부는 지분율 비례로 자금을 지원하는 유상증자 등에 참여할 생각은 없지만, 28억 달러의 신규 투자에는 참여할 의향을 내비추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인사이드 경제>는 산업은행, 삼일회계법인 등이 진행한다는 실사에 대해 1%의 신뢰도 보내기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지금까지 <인사이드 경제>를 통해 주장해온 바 산업은행 역시 현재의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방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기관이 책임을 묻는 실사를 진행한다는데 그 결과에 과연 무슨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아울러 ‘28억 달러의 신규 투자’에 대해서도 한 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다. GM 본사가 모종의 신규 투자를 할 계획이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28억 달러라는 수치에 대해서는 팩트 체크를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이 투자는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 얼마의 기간 동안 투자되는 것인지? 이 중에서 본사가 부담하는 비용은 얼마이고 한국GM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인사이드 경제>가 파악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28억 달러 투자는 GM 측이 한국에 배정할 가능성이 있는 ‘신차’를 개발하고 양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28억 달러라면 한국 돈으로 3조에 달하는 금액이다. 아니, 신차 하나 개발하고 양산하는데 3조가 들어간단 말인가? 요즘 언론사에 자주 출연하는 수많은 교수, 전문가라는 양반들은 왜 이런 문제를 짚지 않는지?
통상적으로 신차 한 대를 연구·개발(R&D) 또는 디자인·엔지니어링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5000억이 채 안 된다. 개발 뒤에 양산을 위해 라인 설비를 새롭게 바꾸는 비용까지 포함하더라도 통상 6000~7000억 정도가 들어간다. 3조 원이라면 신차 4~5대를 개발하고 양산할 수 있는 정도의 투자라고 할 수 있다.
GM이 한국에 배정하니 마니 하는 신차는 크로스오버(소형 SUV)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사이드 경제>가 보기에 그 차량을 개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한국 정부에 현금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금액인 5000~7000억과 오히려 가깝다.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신차 하나에 28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엄청나게 부풀려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이러한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 황당해진다. 군산공장 폐쇄와 한국 철수를 무기로 GM은 한국 정부와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신차 하나 배정할 테니 정부도 자금을 지원하고 노동자들은 임금·복지 혜택을 양보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신차 개발과 양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결국 한국 정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애고애고, ‘비단장수 왕 서방’이 울고 갈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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