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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부실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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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부실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의제27 '시선'] 가계부채 부실, 반드시 책임을 묻자

필자가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것이 2002년 경의 일이다. 2002년 7월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 토론회에서 필자는 정리된 개념을 소개했다.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 : 대출상환능력이 없는 소비자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높은 수수료나 연체료를 부과하거나 담보물을 싸게 취득하는 등의 방법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대출

아예 해외 언론에 소개된 것도 가감없이 그대로 소개하기도 했다.

One definition is lending that is profitable just from the repayment of interest, without the expectation of ever getting the principal back. To a loanshark, after all, someone who repays his principal is a customer lost. (Economist Mar 8th 2001)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 어느 방송기자가 여기저기 물어보았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금융전문가란 사람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외국에서는 장기주택담보대출인 모기지론에 적용하는 용어인데, 신용카드사에 적용하는 필자는 한 마디로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자기가 못들어본 것은 무조건 부정부터 하는,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금융전문가들이 많다는데 놀랐다.
▲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오래 전부터 지적됐던 문제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DTI 규제 등 대출규제를 완화해 문제를 키워왔다. ⓒ연합

금융의 기본을 모르는 금융전문가들

금융의 기본 전제는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떼일텐데 일부러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줘 고수익을 올린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고리대금업자들이 갚을 능력이 없는 차입자의 어려운 사정을 이용해 그들을 착취하고 심지어는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것은 인류 역사와 함께하는 오래된 악행이었다. 그래서 문명국가의 금융시장에는 이런 악행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는 규제를 도입해 왔다.

한국은 만성적인 자본부족국가였기 때문에 약탈적 대출의 문제가 공식 금융시장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저금리정책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해외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외환위기 이후이다. 신용카드회사들의 방만한 대출은 결국 400만이 넘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며 서민가계를 파탄에 내몰았다. 서민가계가 무너지면서 신용카드사도 부실하게 되었다. 만약 2004년도에 파산법이 정비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카드사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한국의 후진적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사태의 해결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가자 이번에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신용카드 사태를 계기로 약탈적 대출을 공부했던 필자는 여타의 가계대출 전반에 걸쳐, 특히 주택담보대출시장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본은 같았다. 한국의 금융시장에서는 가계대출을 해 줄 때 상환능력은 핵심적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한국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약탈적 대출이 만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주택담보대출시장은 매우 기형적이었다.

그랬더니 금융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필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미국의 모기지론과는 달리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이른바 LTV(Loan to Value) 라고 불리는 담보인정비율 규제가 있기 때문에 약탈적 대출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2002년에 이미 필자가 소개한 대로 미국에서는 이른바 서브프라임시장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약탈적 대출에 대해 유의하고 있었다. 이렇게 연방거래위원회라는 정부의 공식기관이 일찍주터 주목하고 있었음에도 결국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촉발한 금융위기를 막지못했음을 고려하면, 한국의 금융시장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Predatory lending practices in the subprime mortgage market: they generally aim either to extract excessive fees and costs from the borrower or to obtain outright the equity in the borrower's home. This is often accomplished through a combination of aggressive marketing, high-pressure sales tactics, and loan terms. (FTC statement Sep 7, 2000)

엉터리 금융전문가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히기는 쉽지 않았다. 엉터리 금융전문가들이 어찌나 많은지 오히려 필자의 견해는 비판을 일삼는 소수 의견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렇게 참여정부 내내 외로운 싸움을 해 왔다.

2005년 6월 부동산 종합대책이었던 8.31 대책 발표를 앞두고 필자는 인터넷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었다.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 대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택을 담보로 하는 거액 대출이면서도 3년이라는 단기 대출이라는 점, 상환능력을 가늠하는 소득이나 신용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담보만을 믿고 해주는 대출(asset-backed lending)이라는 점, 이자만 상환하다가 마지막에 원금을 전부 상환(balloon payments)해야 하는 대출이라는 점 등은 미국에서는 극히 경계하고 있는 대출의 특징이다.

미국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철저히 규제하고 있는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의 전형적 형태로 미국의 법무성이나 주택도시개발성, 연방거래위원회 및 각 주 정부의 웹사이트에서 모두 경고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히 위험하게 취급하고 있는 대출형태이다. 그런 대출이 급격히 증가하여 가계대출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안정적으로 가계대출을 증가시켜 가계대출을 연착륙시키겠다며 태연자약하고 있는 당국자의 모습에서 필자가 '폭탄돌리기'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한 것이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미국의 대공황과 일본의 장기불황을 심화시킨 대출

미국의 대공황 이전이나 일본의 거품이 붕괴되기 이전에 현재 국내에서 성행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대출의 특징은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무제한으로 투기자금이 공급된다는 점이다.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담보가액이 증가하여 대출액도 증가하게 된다. 가격이 상승할 때는 이자의 부담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거품이 붕괴되는 순간 이자는 물론 원금의 상환도 힘들어져서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건전성이 위협받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자금회수에 들어가게 되고, 그 결과 자산가격은 다시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소비자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되고 소비는 극심한 침체에 빠지게 된다.

미국인들은 대공황 이후 이런 대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모두 모기지론(mortgage loan)으로 전환하였다. 모기지론은 20년 이상의 장기대출을 위주로 하고, 매달 원리금을 납부하여 만기가 되면 상환이 완료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출액을 소득수준에 연계시켜서 소득의 1/3이상이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점이다.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소득이 없다면 대출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DTI규제

그래서 필자는 이른바 DTI(Debt to Income)라는 총부채상환비율을 규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반대론자들이 세계에 유래가 없는 규제라고 비판했고, 8.31대책이 실패하자 뒤늦게 정부가 받아들여 부동산 안정효과를 인정받은 후 지금까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규제이다.

DTI규제가 어느 날 갑자기 필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약탈적 대출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약탈적 대출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제안한 것이고, 미국 및 유럽의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한국의 은행 관계자들이 스스로 이런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했음은 한국의 은행 경영진이 여전히 70년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어렵게 시행되고 있던 DTI 규제를 완화하는 이명박 정부를 지켜보면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필자 외에도 많은 금융학자들이 DTI규제를 중요한 규제로 주장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가 특별 초빙해서 청와대에 근무했던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가 극찬했던 규제였음에도 그 규제를 완화했다. 그리고 은행들은 다시 앞다퉈 대출을 늘려갔다. 여전히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단기, 변동금리, 거치식 대출이다.

대책을 묻지마라

2004년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Debt-Deflation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Debt-Deflation은 저명한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Irving Fisher)의 대공황과 관련한 대표적 분석 이론이다. 가계부실이 은행부실로 이어져 전반적인 금융시장의 붕괴를 초래하고 그로 인해 심각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대공황과 일본의 장기불황을 잘 설명해 주는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전 이른바 가계부채 '게릴라'들이 한 자리에 모인 토론회가 있었다. 지난 몇년간 지속적으로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전문가들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2004년 이후로 가계부채 전문가들은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 그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2004년말 가계신용 잔액이 474조 원 정도였다. 그 당시에도 위험하다고 했는데, 2010년 말 잔액은 795조 원에 달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2008년 미국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기형성이 안타깝다. 합리적 전문가들이 이미 대책을 다 내놓았다. 그 대책을 실행하기는커녕 그들을 '게릴라'로 취급하는 이 현실이 안타깝다.

참여정부 5년간 필자를 비롯한 이들 전문가들이 그토록 떠들었음에도 금융과 관련한 정부 관계자가 단 한 차례도 자문을 구한 적이 없다. 경제관료들은 끝없이 대출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한국은행은 저금리를 통해 대출을 권장하고, 금감원은 의미있는 규제를 하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서는 더 이상의 경고가 무의미했다.

가계대출 부실화 쓰나미가 밀려온다

이제 한계에 달했다. 쓰나미는 곧 도착한다. PF부실과 저축은행 사태는 대규모 가계부채 부실의 전조일 뿐이다. 서브프라임의 비중이 낮아 아무 걱정할 것 없다고 남의 나라 일까지 친절하게 안심시켰던 한국의 금융전문가들을 더 이상 믿지 마라.

언제나 서민들만 불쌍하다. 그날이 오면 그들은 당신들을 거들떠 보지 않을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와 그들을 지휘하는 청와대의 이른바 금융전문가들에게 당신들의 처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2004년에 소비자를 위한 파산법의 개정에 끝까지 반대했던 그들이다. 아니 오히려 금융기관의 대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는 한편 서민들을 더 쥐어짜낼 궁리를 할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포획된 오바마 정부를 핑계대며 금융기관 대주주 지원하기에 나설 것이다. 그들의 공적자금 투입 요청을 승인할 국회의원들이 큰 도움이 된 적이 없다는 것이 외환위기와 카드사태의 교훈이다.

필자 같은 책상물림들이 도움이 되지 못함을 용서하기 바란다. 메아리없이 몇 년을 비난을 감수하며 떠들어왔던 가계부채 '게릴라'들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해 주길 부탁한다. 가계부채 급증을 방조하고 제시된 대책을 무시한 경제관료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그들은 게릴라들이 시장의 불안을 부추겨 문제를 일으켰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다. 지난 번 토론회 때 필자는 게릴라들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이 트로이의 운명을 걱정했던 카산드라의 운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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