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차량이란 사람이 운전을 할 필요 없이 차량 스스로 주행 경로를 계획하고, 각종 센서와 GPS를 통해 주변을 인식하고 위치를 파악하며 목적지까지 안전한 운행이 가능한 차량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자면, 1982년~1986년 미국 N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이트 라이더(Knight Rider)>(한국에서는 <전격 Z작전>이라는 제목으로 KBS에서 1985년~1987년까지 방영했다)에서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면 나타나서 구해주는 인공지능 탑재 차량 '키트'가 바로 자율주행 차량의 궁극적인 모습에 가깝다.
자율주행 차량이 보급된다면, 차량 스스로가 운전을 하는 동안 인간은 '운전'이라는 노동에서 벗어나 독서를 하고, 밀린 일을 하고,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명절이나 휴가 때 지루하게 이어지는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지 않고 목적지까지 휴식과 여가를 즐기며 갈 수 있다.
자율주행 차량의 대명사로 알려진 구글의 자율주행 차량은 차량에 탑재된 라이더 등 각종 센서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주변을 인식하여 초당 기가바이트 단위의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한다고 한다. 인간이라면 이 많은 정보를 동시에 수집하고 처리할 수 없다. 인간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주변의 정보를 파악해서 처리하므로, 자율주행 차량이 보급되면 전 세계에서 연간 120만 명에 달하는 교통사고 사망자(WHO 통계)의 약 90%가 감소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에릭 슈밋 회장은 201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매직 더 머신(Magic the Machine)' 행사에서 "앞으로는 기계가 인간보다 더 운전을 잘하게 될 것이고 기계가 운전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렇게만 본다면, 자율주행 차량의 도입은 아주 좋은 소식이다. 편리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똑똑한 차량이 제공되는 것이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라고 자신도 모르게 외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자율주행 차량이 아주 전형적인 '잡 킬러(job killer)', 즉 일자리를 잡아먹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자율주행 차량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 수단을 제공하지만, 운전이라는 것을 통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끔찍한 재앙이 된다. 자율주행 차량의 도입과 보급으로 택시운전기사, 화물트럭 운전기사, 버스 운전기사 등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구적으로 일자리를 상실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인간이 운전할 필요가 없는데 누가 운전기사를 고용할까? 아주 저렴한 유지보수 비용으로 택시나 버스, 화물차를 운행할 수 있는데 비싼 인건비를 지불하면서 운전기사를 고용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국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기준 운수업조사 잠정결과'에 따르면, 철도운송업을 제외한 한국의 육상운송업 종사자의 수는 무려 86만 6806명이다. 자율주행 차량이 보급되고 일반화된다면, 약 86만 6000명이 넘는 노동자 대부분은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 차량의 도입은 운전에 종사하는 일자리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자율주행 차량의 도입은 자동차 제조업은 물론이고 보험이나 운전면허, 정비와 같이 차량에 관련된 모든 일자리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자율주행 차량은 자동차라는 것에 대한 소비자의 개념을 완전히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차를 자신의 집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필요할 때 직접 꺼내서 사용한다. 이동 수단으로서 자동차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수적이고, 주차 공간 역시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율주행 차량이 도입되면 이런 기존의 관념은 기반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자가차량을 이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필요한 위치에서 필요한 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직접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 가고 배차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용시간도 한정되어 있어서 심야나 새벽 같을 때에는 이용이 어렵다. 택시 역시 이용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직접 택시를 잡거나 호출을 해야 한다. 버스나 지하철보다는 낫지만 택시 역시 심야나 새벽 등에는 이용이 불편하다. 이것이 대중교통이 여러모로 저렴하고 (주차 등의 면에서)편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가차량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이다.그런데 자율주행 차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자가차량을 이용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제공한다. 인간 운전자가 필요 없으니 버스는 24시간 운행이 가능해지고, 자율주행 택시의 이용은 더욱 편리해져 호출만 하면 필요한 위치에 필요한 시간에 이용 가능하다.
자가차량을 보유하는 경우에도 차량의 공유-공동 사용이 가능해져 가까운 곳에 사는 부모 형제들은 한 대의 차량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들이나 딸이 출근 시 사용한 차량을 오후에 차량이 필요한 부모의 집으로 가도록 차량에게 지시를 하면 부모는 직접 차를 가지러 갈 필요 없이 그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오후에 사용을 끝낸 부모는 다시 그 차량을 자녀의 회사나 집으로 자율주행으로 가서 주차할 수 있다. 형이나 아우의 차를 근처에 사는 형제가 불편함 없이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기 소유의 차를 가지지 않더라도, 보다 저렴하고 보다 편리하게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차를 구입할까? 자율주행 차량의 도입으로 운전을 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성 역시 크게 사라지게 되지는 않을까?
아직 자율주행 차량이 아닌 일반 차량에 의한 차량 공유서비스(우버, 리프트 등)가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운전면허를 딸 필요성이 줄어들어 면허를 따지 않는 젊은이들이 대폭 증가했다. 일반적인 차량공유서비스 보급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완전한 자율주행 차량 또는 자율주행 택시가 보급된다면 사람들은 차량을 직접 소유할 필요를 더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구글만이 아니라 우버 등 차량공유서비스 업체들도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한 공유서비스를 시험운행 중이다.
금융투자기관 바클레이즈가 2015년 7월 발표한 'Disruptive Mobility: AV Deployment Risks and Possibilities'라는 자동차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자율주행 차량의 보급 확대로 자동차를 공유하거나 다수의 가족 구성원이 한 대의 차량을 공유하는 등의 이유로 자동차를 직접 소유하는 비율이 급감하고, 이는 자동차 시장에 큰 위협이 될 것임을 예측하였다. 보고서는 미래 시장에서 자동차 시장은 △직접 소유하고 운전하는 전통적인 차량 모델, △다수의 구성원을 가진 가족이 한 대의 자율주행 차량을 공용으로 소유 및 사용하는 모델, △우버 등의 업체에 의해 제공되는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한 차량공유 서비스(공유 자율주행 차량),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한 카풀용의 4개 유형으로 나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이런 차량의 소유 및 사용 형태의 변화에 따른 분석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만 자동차 판매량이 무려 40% 가까이 급감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것만이 아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전망에 따르면, 공유 자율주행 차량 한 대가 기존의 전통적인 차량 열 한대를 대체하는 효과를 가지며, 제러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각자 차량을 소유하는 형태의 자동차 이용이 차량을 공유하는 형태로 전환되면, 전체 자동차의 숫자가 80%가 줄어도 그와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제공받는 서비스가 된다. 요컨대, 자율주행 차량의 보급으로 인해 자동차에 대한 개념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라 전기나 가스, 물처럼 사용가능한 서비스로 개념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에 비해서 도시에 인구가 집중화되어 있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미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차량 소유가 필수적일 이유가 적다. 따라서 자율주행 차량이 보급될 경우, 미국에 비해서 한국은 차량을 소유할 필요성이 더 낮아져 자동차 판매 시장의 감소세가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된다면 한국에서의 자동차 판매량은 미국의 감소치 40%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판매량이 급감하니, 자연스럽게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숫자 역시 줄어들 것이다.
한국에서 자동차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 개수는 약 32만 개에 달하고, 차량 제조에 필요한 철강, 기계, 금속 분야의 일자리 숫자는 12만 개라고 한다. 시장의 파이가 40% 줄어들면 이 일자리가 그대로 유지될 리 없다. 시장이 줄어든 만큼만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해도 이 중 40%면 17만6000명이다.
차량의 판매 대수가 급감하면 차량 정비에 관한 일자리도 당연히 수요가 급감할 것이다. 그런데, 자율주행 차량은 기본적으로 고도의 컴퓨터이다.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자가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장착이 필수이다. 차량 판매정비에 관련된 시장도 급격하게 축소되어, 24만 명에 달하는 이 분야 일자리도 급감할 것이다. 이외에도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이나 자동차 보험에 관련된 일자리들도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 자동차 제조, 차량에 사용되는 각종 소재 부문, 판매나 정비, 도로, 할부(금융), 리스, 광고, 운전학원, 보험, 여객운수와 화물 운송 등을 포함하면, 현재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관련된 노동자의 수, 즉 일자리 수는 약 180만 개로 우리나라 총 고용의 약 7.3%에 달한다고 한다. 자율주행 차량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180만 개의 일자리 중 과연 몇 개나 살아남을까?
구글의 발표대로 올해 구글의 무인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가 미국에서 시작된다면, 수년 안에 우리나라에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령이나 제도에 대해서 참조할 만한 해외 사례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핑계로 하더라도 빠르면 2년, 늦어도 5년 안에는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다면서 우리 사회, 우리 정부, 우리 정치인들은 자율주행 차량의 기술 개발에만 신경 쓰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자율주행 차량이 가져올 파괴적인 일자리 소멸에 대해 과연 준비가 되어 있을까? 조선업 불황으로 발생된 수만 명의 실직자를 가지고도 수년째 그 여파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이제 코앞에 86만 명에 달하는 실직이 예견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이 거센 물결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부터라도 기술이 가져올 대량 실직 사태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기술개발 지원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기술이 가져올 일자리 부분에 대한 파급 효과를 분석하고 해당 분야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준비를 해야 한다.
자동화 기술로 인한 대규모 실직에 관련한 정부의 바람직한 대응 프로세스를 개인적으로 준비해 보았다. 책임 있는 담당자에게 이 대응 프로세스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아래에 덧붙인다.
자동화 기술로 인한 대규모 실직사태 시 정부의 대응 프로세스
△ 자동화 기술의 개발 동향 파악과 구체적인 시장 도입 시기의 예측
△ 대규모 실직이 발생할 분야 분석 및 예측
△ 해당 분야의 예상 실직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를 작성하여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
△ 각각의 분류에 따라 (아직 자동화되지 않은 분야로의 이직을 위한) 맞춤형 교육 과정 개설 및 준비
△ 대규모 실직이 발생 시 실직자들에 맞춤형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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