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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종 한국' 상징하는 19명의 특별한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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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종 한국' 상징하는 19명의 특별한 한국인들

평창 올림픽 참가 위해 19명 선수 귀화...한국의 다양한 얼굴들

스포츠는 때로 예기치 않은 사회적·문화적 메타포를 품어낸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이 열린 이해 6월 23일, 이란은 리옹 제를랑경기장에서 열린 F조 예선경기에서 미국을 2-1로 꺾었다. 이 경기 결승골을 넣고 울먹이며 질주하던 이란의 메디 마다비키아의 모습은 축구팬의 뇌리에 길이 남았다.

당시 미국과 이란-이라크 간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미국과 터키-이스라엘의 삼각동맹은 이란-이라크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다. 급기야 이란은 오랜 앙숙이던 이라크와 공동 전선을 펴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치러진 이란과 미국 두 나라 간 축구 경기는, 단순히 축구로만 해석될 수 없었다. 아랍 언론은 이 경기를 일컬어 ‘성전’이라 칭했다.

스포츠가 국내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 미국 내 논란이 된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선수들의 행동이 대표적이다. 흑인 선수들은 미국 내 소수인종을 향한 경찰의 폭력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처음 시작한 이 항의 표시는 순식간에 리그 전체로 번졌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들을 가리켜 "애국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제 논란은 스포츠를 넘어 미국 사회 구조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쉽게 확인 가능한 건 우리 선수단의 면면이다. 올해 한국 선수단은 역대 최대 규모인 145명이다. 이 중 19명이 귀화한 외국인이다. 아이스하키(남7, 여4), 바이애슬론(4), 스키(2), 아이스댄스(1), 루지(1) 등의 종목에 이들이 참가한다. 8명의 캐나다인이 올림픽 참가를 위해 한국인이 되었다. 미국에서 5명, 러시아에서 4명, 노르웨이와 독일에서 1명이 기존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되기를 택했다.

▲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귀화 선수 7인. 왼쪽부터 맷 돌턴, 마이크 테스트위드, 브락 라던스키, 에릭 리건, 마이클 스위프트, 브라이언 영.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올림픽 대표팀, 귀화 한국인 19명

귀화 선수들 대부분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한국인이 되었다. '한국판 안현수'라 할 만한 사례들이 많다.

북미권에서 동계올림픽 종목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남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25명 엔트리 가운데 7명이 귀화 선수다. 아이스하키 최정상 국가 캐나다에서 온 브락 라던스키가 가장 먼저 귀화 테이프를 끊었다. 북미 아이스하키(NHL) 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독일 리그를 거쳐 2008년 한국의 안양 한라 선수로 뛰기 위해 한국땅을 밟았다.

이후 한국 아이스하키 리그의 제왕이 된 그는 2013년 '체육 분야 우수 인재' 자격으로 특별 귀화 허가를 받고, 바로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합류했다. 한국인 부모의 피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이가 한국 대표팀에 합류한 첫 번째 사례다.

라던스키 합류 이후,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달라졌다. 2013년 4월 헝가리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에서 한국 대표팀은 2승 3패, 승점 5점을 획득해 세계선수권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이후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2016년까지 매 해 귀화 선수를 추가했다. 2014년 1월 한국인이 된 마이클 스위프트, 2016년 귀화한 맷 돌턴과 에릭 리건, 브라이언 영, 마이크 테스트위드 등이 줄줄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아이스하키팀 대표선수 중 28%가 귀화 선수로 채워지자, 일각에서는 '과연 한국 대표팀이 맞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는 외부적 요인과 세계적 추세를 무시한 발언이다.

애초 IIHF가 은근히 한국대표팀이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기를 바랄 정도로 한국 아이스하키의 국제 경쟁력은 취약했다. 2011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고도, 한국 대표팀의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이 확정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한국대표팀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올림픽 무대에 걸맞지 않다는 IIHF의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에 IIHF는 단기간에 한국 대표팀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출전권을 주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에 한국 대표팀이 취할 유일한 대안이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여자 대표팀의 경우는 앞서 큰 논란이 된 남북 단일팀이 중요한 변수가 됐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같은 모습은 이상하지 않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도 일본은 8명의 귀화선수를 포함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이탈리아는 11명의 귀화선수를 받아들였다.

안현수와 정반대 케이스로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바이애슬론 선수 티모페이 랍신도 주목할 선수다. 랍신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로 뛰며 월드컵에서 통산 6회 우승을 차지한 강자다. 하지만, 2016년 말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이후 그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한국으로 귀화했다.

랍신의 경우처럼, 이번 대표팀에 뽑힌 귀화 한국인 선수 대부분은 한국의 약세 종목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은 그간 동계 스포츠 중 빙상 종목에 집중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따낸 53개 메달은 모두 빙상 종목에서 나왔다.

반면 훨씬 많은 메달이 걸린 설상 종목에서는 전통적으로 약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금메달은 32개인 반면, 설상은 70개다. 한국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랍신은 사상 처음으로 설상 종목에서 한국에 메달을 가져다 줄 이로 꼽힌다.

동계 스포츠의 꽃이라 부를만 한 스키 종목에는 김마그너스(노르웨이 출신)와 이미현(미국 입양아)이 이중국적 중 한국을 택했다. 아이스댄스의 알렉산더 개멀린(미국 출신), 루지의 에일린 프리쉐(독일 출신) 등도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선수로서 올림픽에 도전한다.

▲ 지난해 3월 5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스포츠파크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바이애슬론연합(IBU) 바이애슬론 월드컵 남자 계주 경기에서 한국의 티모페이 랍신이 사격을 마친 뒤 코스로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민족-국경이 중요한가

스포츠 선수의 귀화 논란은 민족 국가 신화, 타인종 차별 문화와 맞물려 돌아갔다. 2000년 독일 축구대표팀의 흑인 독일인 선발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1974년 대표팀에서 뛰었던 에르빈 코스테데가 있었지만,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가나 공화국 출신의 귀화자 게랄드 아사모아가 대표팀에 선발되며 논란은 다시 이어졌다. 실력 논란도 있었으나, 인종차별 문제가 더 컸다. 혼혈인 코스테데와 달리 아사모아는 순수 흑인이었다. 아사모아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독일 선수들로부터 여러 차례 인종차별 피해를 입은 선수였다.

지금 독일 축구대표팀이 황금기를 걷는 것과 달리,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은 세대교체 실패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선수가 부족했던 탓에 독일 대표팀은 결국 그를 최종 엔트리에 발탁했다. 그는 월드컵 결승전에까지 뛰었고, 자국에서 열린 2006 월드컵에서도 활약했으나, 결국 인종차별 문제로 인해 대표팀을 은퇴했다. 그는 대표팀 선수 생활 내내 네오나치들의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사모아 이후 독일 대표팀의 문은 넓어졌다. 지금 독일 대표팀은 그야말로 다인종팀이라 할 만하다. 터키계인 메수트 외질과 일카이 귄도안, 엠레 찬, 아버지가 튀니지 출신인 사미 케디라, 가나계인 제롬 보아텡 등이 대표팀의 주축이다. 터키계가 전 인구의 20%에 달하는 지금의 독일을 잘 반영하려면, 대표팀은 당연히 다인종 팀이 되어야 마땅하다.

스포츠에서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다. 일본 축구대표팀은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전력 강화를 위해 브라질 출신의 와그너 로페스를 귀화시켰다. 전력이 크게 떨어져 개최국으로서 망신을 당하리라는 예상이 짙었던 2022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의 경우, 대표선수 대부분을 남미권 출신의 귀화선수로 채웠다.

한국 축구대표팀 또한 스트라이커 결정력 부족 논란이 일 때마다 귀화 필요성이 함께 논의됐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수원 호날두' 조나탄(톈진 테다)이다. 조나탄 이전에도 예전 전북 현대에서 뛰었던 에닝요의 귀화 논란이 일었다.

전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 귀화가 때로 고여 있던 국가 정체성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앞서 독일 축구대표팀의 사례에서 보듯, 일시적 논란은 곧 지구촌 시대의 바람직한 모델로 인식 전환의 길을 열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하얀 피부의 한국인이 메달 시상식에 오르는 장면은 우리에게 특별한 상징성을 보여줄 것이다.

그 상징성이란 이미 다인종사회가 된 한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임이 틀림없다. 한현민은 누가 뭐라 해도 한국인이다. 미래 한국의 농촌을 떠받칠 젊은이 중 상당수가 혼혈이다. 이제 우리도 흰 피부에 몸빼바지를 입은 한국인이 트랙터를 몰고, 검은 피부의 한국인이 모델워킹을 하며 TV를 수놓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백의 민족이란 옛말이다. 애초 단일민족국가 신화 자체가 허구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5년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174만여 명이다. 빠른 속도로 다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농촌의 경우, 이미 다문화에 따른 변화가 이행되고 있다. 지난 1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다문화사회 농촌생활문화 변화 실태' 조사를 보면, 다문화가구 확대에 따른 영향으로 변화를 실감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전체의 57.4%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특별한 한국인들은 이런 한국의 이미 도래했으나 그간 가려졌던 현실을, 다가올 세계 속 한국의 모습을 보여줄 산 증인들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평화의 메시지 외의 다른 것을 찾고 싶다면, 이들을 주목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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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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