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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핵 전쟁 문턱을 높였다고?

[정욱식 칼럼] 트럼프의 NPR (상)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2월 2일 핵 태세검토(NPR) 보고서를 발표했다. 1994년과 2002년, 그리고 2010년에 이어 네 번째 보고서이다. 그런데 빌 클린턴 및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이고, 북한 등 7개국에 대해 핵 선제공격을 채택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NPR과 비교해 봐도, 미국의 핵 숭배 주의가 더욱 강하게 담겨 있다.

미국의 핵 능력이 "핵전쟁과 재래식 전쟁을 억제하는 유일한 힘"이라는 주장은 익숙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동맹국과 우방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 확신", "억제 실패시 미국의 목표 달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 능력 구축"도 과거 NPR에 담긴 것들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NPR은 여기에서 한참 더 나갔다. 우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서문에서 "미국의 핵무력은 미국의 외교관들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와 관련해 힘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고 밝힌 것처럼, 핵무기가 강압 외교의 수단이라는 점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공세적인 핵 능력과 전략이 핵전쟁의 위험을 낮출 것이라는 주장마저 내놨다. 핵을 앞세운 미국의 위세 앞에 러시아 등 적대국들이 핵군비경쟁을 포기하고 군축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궤변마저 등장했다. 미국의 핵무기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그래서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가히 "만능의 보검"이라고 칭송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핵 숭배 주의는 굴절된 역사 인식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NPR에선 "세계 1, 2 대전 당시 매일 약 3만 명씩, 모두 8000만 명에서 1억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반면에, "미국의 핵 억제력이 등장한 이후에는 핵전쟁과 재래식 전쟁을 억제하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전시 사상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래식 전쟁 시대에는 세계 인구의 2% 안팎의 전시 사상자가 발생한 반면에, 핵시대에는 0.4%로, 2000년 이후에는 0.01%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에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약 7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참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핵 억제력이 전쟁을 막고 전시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다면, '왜 다른 나라는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미국은 더욱 군색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무기 주의를 내세운 근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먼저 "강대국 경쟁의 귀환"이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중국을 지목했다. 과거에는 러시아가 "미국의 지도에 잘 따랐고 전략핵무기도 대폭적으로 감축했지만", 오늘날에는 핵전력을 대폭적으로 현대화하고 "제한적인 선제 핵공격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핵전력을 현대화하고 확장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들 나라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 개발을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MD에 반발하면서 핵무기 현대화 및 MD 개발에 나서고, 미국은 이를 근거로 핵무기 증강 및 MD에 더더욱 박차를 가하는 '악순환'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양상은 냉전 시대보다 더 큰 위험성을 잉태하고 있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핵군비 경쟁에는 몰두하면서도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을 체결해 MD 구축에는 제한을 가했다. "취약성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찜찜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ABM 조약이 사라진 이후, 공격무기 경쟁뿐만 아니라 방어무기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트럼프의 NPR에는 북한 위협론도 대대적으로 기술됐다. 2010년 NPR에서는 4번 언급된 반면에, 2018년 50번이나 언급되었을 정도이다. 또한 이란 핵문제 해결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주장했다. 9.11 테러 이후 단골 메뉴처럼 등장해온 '핵 테러리즘'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 지난 2일(현지 시각) 패트릭 샤나한 미국 국방부 부장관이 국방부 청사에서 핵 태세 검토 보고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핵전쟁의 문턱을 높였다고?


트럼프 행정부의 핵 정책 키워드는 "유연한 맞춤형 핵 억제 전략(flexible, tailored nuclear deterrent strategy)"로 제시되었다. "적들이 핵무기 사용으로부터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임을 각인시키는 게 목표"라면서, 미국 대통령은 "극단적이니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핵전쟁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이는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과연 그럴까?

이러한 주장이 신뢰성을 가지려면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공식화해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의 NPR은 "미국은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그럴 이유가 없다"며 핵 선제공격 정책과 관련해 "모호성"을 유지키로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의 NPR에 담긴 "극단적인 상황" 자체가 '극단적인 선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NPR에서는 미국이 핵 공격을 고려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상황"의 범주에 적대국의 핵 공격뿐만 아니라 "중대한 비핵 전략 공격"도 포함시켰다. "중대한 비핵 전략 공격에는 미국과 동맹·우방국의 인구 밀집지나 인프라에 대한 공격, 미국이나 동맹국의 핵무력이나 지휘통제, 혹은 경보 시설에 대한 공격, 그리고 평가 능력에 대한 공격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또한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면서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또한 미국의 핵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지휘통제통신 체계에 대한 우주 및 사이버 공격에 대해서도 핵 보복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

핵 테러에 대한 강력한 대응 의지도 밝혔다. 우선 "미국은 핵장치를 획득하거나 사용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어떠한 국가나 테러집단, 그리고 비국가 행위자에게 철저하게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이나 동맹·우방국에 대한 핵 테러 공격은 미국의 궁극적인 형태의 보복을 고려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 해당된다"고 밝혀, 핵 테러에 대해서는 핵 보복을 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핵미사일의 즉각적인 발사 태세를 해제할 뜻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각 발사 태세를 갖춰야 "미국의 핵 대응 옵션"을 유지할 수 있고, "적대국들에게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미국의 핵전력을 파괴할 수 있다는 환상을 못 갖게 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즉각적인 발사 태세 유지가 우발적인 핵전쟁이나 비인가자에 의한 핵 사용의 위험을 높일 것이라는 지적에는 두 가지 답변을 내놨다. 하나는 "미국의 핵 사용 결정은 숙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일상적으로 전략 핵무기의 공해상 목표물 지정(open-ocean targeting) 관행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의회 일각에선 핵 사용이 대통령의 배타적인 권한으로 되어 있다며 "숙의 과정"을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 줄곧 나오고 있다.

"공해상 목표물 지정" 관행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 "공해상 목표물 지정"은 우발적이거나 비인가자에 의한 핵미사일 발사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공해나 남극을 핵미사일의 탄착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인구 희박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메가톤급 핵폭탄이 터지면 엄청난 피해는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핵미사일 발사 태세를 해제해 우발적이거나 비인가자에 의한 핵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또다시 이러한 상식적인 요구를 거부하고 말았다.

"미국은 핵과 비핵 군사 계획과 작전을 통합하는 능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부분도 우려를 자아낸다. 미국은 이러한 통합 계획과 작전이 적대국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재래식 전쟁과 핵전쟁의 경계를 더더욱 모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NPR은 핵전쟁의 문턱을 높이는 건 고사하고 오히려 크게 낮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자체의 핵정책도 위험천만하지만, 미국이 적대국들로 지목한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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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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