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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본관 앞 농성, 854일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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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본관 앞 농성, 854일째입니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삼성 직업병 해결, 더 미루지 말아야

올해는 유난히 춥다. 맹추위가 일주일씩 이상 지속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런 날씨에 아무리 머리에서 지우려고 애써도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서 지낸다. 바람이 불면 파르르 떠는 천막 안에서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살인 추위와 싸우며, 사회의 무관심과 싸우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삼성과 기약 없이 싸우며 오늘도 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몸과 마음 모두 부르르 떨면서.

삼성전자 백혈병으로 꽃다운 딸 유미를 잃은 황상기 씨를 비롯한 삼성반도체 직업병 유족들과 피해 가족들, 이들과 10년째 함께해온 반올림 식구들, 피해자와 가족 지원 엔지오 활동가들이 한겨울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떨고 있다.

며칠 전에는 개인적인 일로 그 근처를 지나가다 일부러 들러보았다. 천막은 언제나처럼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참사 유족·피해자들과 삼성백혈병 피해자·유족들의 합동기자회견도 이 자리에서 연 적이 있어 천막과 8번 출구가 낯이 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독 추운 이번 겨울에는 차마 그 안으로 들어가기가 부끄러웠다. 그들과 얼마나 함께했는가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전자의 직업병 참사가 시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2007년 3월 6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여직원이었던 황유미(당시 22세)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숨을 거두면서다. 황유미는 기흥공장에서 일한 지 1년 8개월 만인 2005년 6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유미의 동료 이숙영 씨(1997년 입사)도 서른 살의 나이에 2006년 7월 백혈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뒤 한 달 만에 숨졌다.

삼성전자 백혈병 불거진 지 10여 년, 아직 해결 못하는 대한민국

황유미가 숨진 뒤 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을 알리기 위한 아버지 황상기 씨의 노력 끝에 2007년 11월 20일 노동·시민단체 20여 곳이 모여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 뒤 이 단체는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산업 분야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포괄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즉 반올림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백혈병, 뇌종양, 재생불량성 빈혈 등 림프조혈계 질환, 유방암에 걸리거나 유산과 불임, 기형아 출산 등이 겪은 노동자들이 황유미의 죽음을 계기로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삼성전자 직업병은 드디어 작업장에서 벌어진 노동참사의 수준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니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다.

삼성전자 직업병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직업병 스캔들로 번졌다. 이 사건을 사회에 고발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도 나왔다. 에스케이하이닉스, LG전자, QTS, 아남반도체 등 다른 전자산업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중증 질환을 호소하는 직업병 환자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후 피해자들과 유족, 그리고 반올림의 회사에 대한 사과 요구와 피눈물 나는 피해 배상 외침, 그리고 사회 고발 시위, 투쟁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이들의 외침에 꿈쩍도 하지 않던 삼성전자는 사회 문제가 되고나서야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대표한 반올림과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과, 보상, 대책의 세 의제를 두고 양쪽의 견해 차이가 커 타결을 이루지 못했다. 피해자 가족 일부가 당사자 보상 논의 우선을 주장하며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를 구성하면서 피해노동자들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이것이 삼성전자 직업병 참사를 해결하는데 결정적 걸림돌이 되었다.

삼성의 피해자 갈라치기, 완전 해결의 걸림돌로 작용

가족대책위가 제3의 조정위원회 구성을 제안해 삼성과 반올림 쪽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조정위원회가 어렵사리 구성됐다. 조정위는 2015년 7월 23일 △삼성전자 기부금 1000억 원을 바탕으로 해 공익법인을 설립할 것 △공익법인이 환경·안전·보건·관리 분야 등 전문가 3인을 옴부즈맨으로 임명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점검해 개선방안을 권고할 것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공개 사과 등을 뼈대로 한 권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는 이를 거부했다.

삼성전자는 조정위의 권고안 발표 열흘 뒤인 8월 2일 △독자적 보상위원회 설립 △보상금 지급과 예방활동, 연구활동 등을 위해 1000억 원의 사내 기금 조성 △조정위가 권고한 보상 질병 12개 항목 중 유산·불임 군을 제외한 11개 항목 보상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 뒤 9월부터 삼성전자는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보상신청을 받아 현재 120명가량이 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반올림은 "삼성이 하고 있는 보상은 삼성이 직접 대상을 심사하고 내용까지 정하는, 폐쇄적이고 일방적이며 한시적인 보상"이라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반올림과 뜻을 함께하는 60여 명의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반올림과 함께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강남역 8번 출구에서 10월 7일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낮으로 천막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6일로 854일째를 맞는다. 이 숫자에서 이들이 얼마나 힘든 싸움을 삼성전자와 벌이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반올림 쪽(보상 미합의 유가족과 피해자 포함)은 지난 2년여 동안 삼성전자 쪽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하려 했으나 지금껏 단 한 차례도 회사 책임자와 직접 만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인 강병원 의원이 양쪽의 대화 창구 노릇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별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쪽에서도 문제 해결을 해보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삼성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신창현 의원, 삼성전자 직업병 해결 법안 발의, 논의조차 안 되고 있어

국회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동료 의원 25명과 함께 '삼성전자 직업병피해구제법안'을 만들어 지난해 3월 17일 발의했으나 아직 상임위 차원에서조차 본격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신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법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의 내용과 구조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양쪽이 갈등을 빚고 있는 부분을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피해자 단체, 즉 반올림 쪽은 삼성으로부터 독립된 기구가 재단을 운영하기를 바라는 반면, 삼성은 회사가 운영하겠다고 하므로 그 대안으로 정부가 기금 운영의 주체가 되어 공정하고 투명하게 보상절차를 진행해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를 매듭 지으려 하고 있다.

이 법은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에 대한 구제 및 지원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고용노동부장관 밑에 직업병피해구제위원회를 두고 이 위원회에서 보상 대상을 정한 뒤 노동부 장관이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간병비, 특별유족조위금, 특별장의비 및 구제급여조정금 등의 구제급여를 지급하도록 했다. 또 이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 구제기금을 설치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피해노동자들이 보다 쉽게 삼성전자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게 피해자들이 취급한 화학물질의 제조과정, 사용설비, 사용물질의 종류와 농도, 독성, 작업환경측정, 안전진단결과 등에 관한 정보를 청구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아직 국회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반올림 쪽과 회사 쪽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국회에서 이 법이 본격 논의될 경우 이해당사자들이 문제 해결에 의지가 있다면 토론 마당으로 나와 그 내용을 두고 관련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다면 오래 묵은 갈등을 푸는 돌파구 구실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른 시일 안에 국회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해결을 위한 법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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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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