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참가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올림픽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의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평창발 한반도 평화를 마련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정세 관리를 통해 장차 북핵 문제와 관련한 북미 간 의미 있는 대화의 첫 단추를 만들어보자는 게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프로젝트다.
단순히 북한 선수단의 참가로 머물지 않고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 마식령스키장에서의 남북 합동 훈련 및 남북 단일팀 구성 등의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바로 평창을 입구로 해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 진전이라는 출구를 모색하겠다는 의도다.
평창에서 시작된 평화 분위기를 모태로 해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우리 정부의 지렛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확보한다면 향후 북미 간 핵 협상을 견인할 수 있다는 구상인 셈이다.
결국 평창 프로젝트의 시작은 북한의 평창 참가이지만 이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결되어야 향후 북미협상이라는 기회의 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평창발 남북관계 개선 시도가 일단 초반이긴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난항을 겪고 있다.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고 남북이 합동 공연하고 단일팀을 구성하고 북한 예술단이 오면 쉽사리 남북교류와 화해협력에 대한 국민적 분위기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로서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남북 단일팀 구성에서 부족함이 있었다고 자책했고 여론조사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잘못으로 단일팀 구성 논란이 거론되고 있다. 예상보다 냉랭한 분위기는 비단 남쪽만 놀란 게 아닌 듯하다. 북한이 예정되었던 금강산에서의 남북합동공연을 갑자기 취소한 배경에도 아마 한국의 차분한 분위기가 고려되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올림픽이 본격 진행되고 남북의 접촉과 교류가 활발해지면 과거와 같은 활발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의 각종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의 국민여론이 남북화해에 열광하는 분위기로 쉽게 달아오르지 않고 오히려 북한에 대한 저자세와 지나친 환대 논란 등 과거와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층에서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문화공연 및 단일팀 구성 등에 대해 싸늘한 시선이 부각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창 프로젝트가 남북의 교류와 이벤트만으로 2030을 비롯한 국민들의 대북인식이 순식간에 바뀌고 과거의 화해협력에 열광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변화된 현실을 모르고 과거의 기대만으로 남북관계를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2030이 들뜬 기대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2030이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에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공정과 정의의 관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접근이 옳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당당히 공부하고도 취업을 못하는 좌절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혐오스런 것은 바로 금수저와 갑질 부류다. 실력도 없이 부모 잘 만난 이유로 정규직을 꿰차 남의 사다리를 걷어차면서 갑질만 일삼는 특정 일부 계층에 대한 반감이 우리 젊은이들의 분노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김정은은 화해의 대상이거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부모 잘 만나서 떵떵거리고 사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다. 그것도 핵무기까지 손에 쥐고서 남쪽에 큰소리치는 핵 수저이자 슈퍼 갑질의 대명사다.
핵 실험하고 미사일 쏘아올리고 남쪽을 상대로 막말이나 일삼던 김정은이 어느날 갑자기 평창에 참가한다고 해서 예술단장을 칙사 대접하고 비용을 대주고 특별 배려로 올림픽 출전권을 주고 단일팀을 만들어 수년 간 고생해온 한국 선수의 출전 기회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은 도저히 수긍하기 힘들다.
2030 젊은이들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추억보다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과 연이은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이라는 부정적 기억이 훨씬 강렬하다. 갑질과 금수저도 모자라 핵수저 김정은의 남쪽에 대한 슈퍼 갑질을 남북 화해와 관계 개선이라는 당위성으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2030 젊은이들은 민족 담론이라는 거대 담론에 익숙치도 않고 친화적이지도 않다. 자유분방하고 실용적이고 유연한 2030에게 민족화해와 같은 담론과 당위성은 오히려 꼰대와 아재의 고지식한 잔소리로 들린다.
보수진영의 이른바 종북 프레임과 빨갱이 낙인찍기에 대해서도 가장 강력하게 거부하고 그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2030에게 화해협력의 당위성과 '우리는 하나'라는 민족주의 담론은 종북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탐탁지 않은 기득권 기성세대의 강요로 들린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적 지지와 함께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북핵 현실의 변화와 이에 따른 국민 여론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평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이를 통해 북미협상을 견인한다는 로드맵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김정은이 하나도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화해 진전으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국민도 없다.
이미 김정은은 당규약과 헌법과 법률에 핵 보유를 명시하고 있고 국가 핵 무력의 완성을 공언했다. 김정은의 협상은 핵 보유 인정을 전제로 한 협상일 뿐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자회담이 진행되던 시기 김정일은 한반도 비핵화를 김일성의 유훈이라 인정하고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협상에 나섰다.
2030을 비롯해서 적잖은 국민들이 단일팀 구성과 예술단 교류뿐 아니라 한반도기 공동입장마저도 마뜩잖게 생각하는 배경도 바로 변화된 북핵 현실과 변하지 않는 김정은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평창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려면 엄연히 달라진 이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 방식대로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핵 문제를 견인한다는 구상은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도 햇볕정책의 지지자이지만, 지금의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고 엄중한 한반도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본다면 '남북관계를 통한 북핵 해결 견인'이라는 과거 햇볕의 기대와 공식은 지금 상황에서 여의치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이 변화했음에도 과거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변화된 현실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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