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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한나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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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한나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손혁재 칼럼] 쇄신인가, 침몰인가?

1912년 4월 14일 영국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로 침몰했다. 2200명의 승객 가운데 1503명이 목숨을 잃었고, 697명만이 살아남았다. 타이타닉호 사건의 기록문학인 로드의 <타이타닉호의 최후>는 그 순간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1912년 4월 14일 일요일, 시계는 바야흐로 오후 11시 40분을 가리키려 하였다. 프리트는 갑자기 바로 앞에 무슨 물체가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주위의 어두움보다도 훨씬 검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작았으나 그것은 곧 점점 커지며 다가왔다."

2011년 4월 27일 거대 여당 한나라당이 재보선에서 반(反)한나라 민심과 충돌했다. 그 당시 가장 거대하고 호화스럽던 타이타닉 호는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거라고 평가받았지만 첫 항해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의 승리로 지방권력을 장악한 뒤 2007년 대통령선거 승리로 행정권력을, 2008년 제18대 총선의 승리로 의회권력을 장악했다. 3년 연속 압승으로 한나라당이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은 국민의 선택이었다. 10년간 집권했던 민주당에 대한 국민지지는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한나라당의 정권재창출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취임 채 백일도 지나지 않아 국민의 저항에 부딪쳤고, 4.27 재보선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확인했다.
▲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열고 있다. ⓒ연합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화려한 승리,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의 찌질한 패배, 야권연대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망연자실한 한나라당. 재보선이 늘 그래왔듯이 4.27 재보선은 정국을 뒤흔들었다. 내년에 치러질 제19대 총선과 제18대 대선에 미칠 영향력이 대단할 거라는 전망과 함께 이번 재보선의 결과는 정치권에 많은 숙제를 던졌다.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야당에게 졌다기보다는 반(反)MB 민심, 반(反)한나라당 민심에게 패배했다. '천당 밑의 분당'이라 불릴 정도로 탄탄한 기반이었던 '분당 을'의 패배는 한나라당의 오늘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쉽지 않은 선거라고 말하면서도 한나라당은 "설마 분당에서야"라는 심정으로 은근히 승리를 기대했다. 설마가 현실이 되었고, 한나라당이 믿어왔던 최후의 보루마저도 흔들리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민심이 이명박 정부에게서 돌아선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도 민심은 이명박 정부에게 경고를 보냈지만 성찰할 줄 모르는 정부 여당은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 전임 정권이 걸어온 길을 똑같이 되밟아가고 있는 것도 몰랐다. 2006년 지방선거 때 국민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경고를 보냈다. 그 뒤 대통령선거 때까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무기력하게 대통령선거를 맞이했다. '국정에 실패한 무능한 정치세력'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국민은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부패했지만 유능한' 것으로 국민이 믿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국민을 실망시키기 시작했다.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 전국민적 저항이 시작되었다. 100일 동안 이어진 100만 촛불에도 이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다. 부자감세 등 '고소영', '강부자'로 불리는 소수를 위한 정책을 펴면서 국민의 지지를 포기하고 공안기구를 앞세워 국민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냈던 국민도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좀 더 참고 기다리면 '경제대통령'으로 능력을 발휘해주리라고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도 점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았으나" 타이타닉을 향하여 "점점 커지며 다가"와 마침내 초호화 여객선을 바다 속으로 가라앉힌 빙산처럼 반MB 민심, 반한나라당 민심은 처음에는 작았다. 100만 촛불이 모이기는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두 번으로 국민들은 임기 초의 잘못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그래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내세워 국민과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을 일삼으면서 반MB 민심은 점점 커졌다. 몇 차례의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거듭 졌으나 민심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으레 재보선은 집권당에 불리한 것이 당연하다며 모르쇠하거나 애써 무시하려 했다.

섬겨야 할 국민을 무시하고 탄압하는 한나라당의 오만방자하기까지 한 행태에 대해 4.27 재보선에서 국민은 확실한 경고를 보냈다. 이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알아차리더라도 바뀌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은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4.27 재보선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보내는 국민의 마지막 경고이다. 획기적 전환이 없다면 1년도 남지 않은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회복할 수 없는 패배를 겪을 수도 있다. 어쩌면 탄핵역풍과 차떼기의 상처 속에서 치른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보다 더 참담한 패배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보선 패배는 한나라당을 혼란에 빠뜨렸다.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쇄신'이 한나라당의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의원들은 너도 나도 '쇄신'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원내대표 선출과정과 비대위 구성과정을 보면 한나라당이 정말로 쇄신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위기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으면서도 속셈은 서로 다른 것이다.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위기감에 휩싸인 것과는 달리 영남권 출신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고, 위기의식도 약하다. 자연히 쇄신의 진정성도 영남출신 의원들보다는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 강할 수밖에 없다.

원내대표 선출은 재보선 참패 후 당 쇄신을 위한 첫 번째 시금석이었다. 경선 결과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대결 끝에 중도 성향의 황우여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뽑혔다. 수도권의 소장파의원들이 주류원내대표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내년 총선까지 책임져야 할 새 원내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6.2 지방선거에 이은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져야 할 주류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당 쇄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친이재오계는 주류역할론을 내세워 원내대표를 차지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친이재오계와 친이상득계가 단일후보를 내지 못해 친이계 주류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후보를 내지 않은 친박계가 캐스팅보트 행사한 셈이 되었다.

비주류의 원내대표 선출을 놓고 여권 내 권력이동을 점치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 친이계는 여전히 건재하며, 민심이 돌아선 데에 대해 반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비대위의 역할은 전당대회를 잘 치러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여기서 뽑힌 새 지도부가 제19대 총선과 제18대 대선을 관리하게 되므로 친이계와 친박계는 비대위 구성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비대위가 구성된 뒤에는 새 원내대표와 비대위의 역할 분담을 놓고 또 한 차례 갈등이 빚어졌다. 논란을 거쳐 황우여 원내대표가 대표 최고위원의 권한을 대행하고 정의화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고위원회의 통상업무와 전당대회 준비업무, 당 쇄신 개혁을 위해 활동하는 것으로 어정쩡하게 역할을 나누었다. 이 같은 주도권 다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7월 4일에 전당대회를 열기로 결정한 첫 번째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쇄신 노력보다는 주도권 다툼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당 대표 선출방식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쇄신을 촉구하는 소장파들이 주장하는 전당원투표제와 당 대표-최고위원 분리선출에 합의를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행 당헌당규에 있는 당권-대권 분리규정에 따르면 대선주자는 대선 1년 반 전에 당직을 그만둬야 한다. 이 규정대로라면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서 대선주자들은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 없다. 그러나 위기감이 큰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대선주자들이 당의 전면에 나서 내년 총선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의 완화냐 유지냐를 놓고 계파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쇄신이 상실되어버린 것이다.

타이타닉호가 출항했을 때 침몰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봄이라 녹은 빙하가 돌아다니는데도 배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사고위험이 있고, 구조장비도 너무 적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배의 안전성을 과신했던 선원들은 절대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시했고, 마침내 타이타닉호는 커다란 비극을 맞았다. 타이타닉을 연상시키는 한나라당이 쇄신을 통해 다시 살아날 것인가. 쇄신을 못하고 몰락할 것인가. 한나라당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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