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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경기 부양책, 재벌 건설사 배만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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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건설 경기 부양책, 재벌 건설사 배만 불린다"

[화제의 책] 선대인의 <위험한 경제학 2>

지난해 9월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변화는 자산 시장의 거품 붕괴였다.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폭락하자 이명박 정부는 건설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을 조기 집행하는 등 집값 떠받치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부의 건설 정책은 집값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온갖 논란 속에서도 4대강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달청은 1일 4대강 살리기 사업 12개 공구 입찰에서 낙동강 22공구에 현대건설, 대우건설, SK건설, 대림건설 등 12개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사업자가 선정됨에 따라 4대강 사업은 10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 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서 건설 경기 부양의 명분을 찾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경제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건설 경기 부양책이 침체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 건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화'와 '친서민'을 외치는 지금 시점에서 건설 정책은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을까?

<위험한경제학-부동산의 비밀>(더난출판 펴냄)에서 최근의 집값 상승은 폭락 전 마지막 반등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던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위험한경제학> 2탄인 '서민 경제의 미래' 선보이면서 그 효과를 단호히 부정한다. 하도급이 보편화된 현재 건설 산업의 구조상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도 정작 힘든 이들에게 전달되는 돈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 부소장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조기 집행한 건설·토목 사업 예산 역시 경제 위기를 맞아 휘청거리는 대형 건설사들을 살리려는 목적일 뿐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없다고 지적한다. 또 무리하게 건설 경기를 떠받히려다 실패했던 1990년대 일본의 사례를 들며 우리 정부가 그 길을 똑같이 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의 경기 부양책 속에 숨어 있는 함정에 대한 책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건설 부양책, 1970년대와 상황 달라 효과 없다"

▲ <위험한 경제학 2 - 서민 경제의 미래>(선대인 지음, 더난출판 펴냄) ⓒ프레시안
2008년 하반기 국내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건설 경기 부양에 총력을 기울였다. 2008년 8·21 대책을 시작으로 △사실상의 후분양제 폐지 △ 미분양 아파트 환매조건부 매입 △ 투기지역 해제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쉴새 없이 쏟아냈다.

직접적인 부양 대책으로 포장하진 않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건설 경기 부양 대책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에 책정된 56조 원의 예산중 53조 원이 이미 포화 상태인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 도로 건설들에 투입된다. '녹색 뉴딜' 사업 역시 대부분 '콘크리트 사업'이다.

정부와 여당이 내세우는 명분은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1970~1980년대 개발경제 시대에는 경기침체에 건설 경기 부양으로 대응하는 것에 합리성이 있었다. 당시에는 별다른 산업이 없어 상대적으로 건설업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고 산업 연과 효과와 고용 효과도 높았다. 또한 그 시절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이 부족한 상태여서 이를 확충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0~30년 전의 개발시대와는 상황이 다르다. 건설업의 비중도 작아졌고 웬만한 SOC 투자는 이미 이루어져 확충의 필요성도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개발연대와 외환위기를 거치며 대형 건설사들의 조직 구조와 고용 구조가 변하면서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도 떨어졌다.

건설사들은 1987년 이후 노조가 빠른 속도로 조직화해 임금이 상승하자 중장비 인력 등을 개인사업자로 분리하고 시공 인력도 아웃소싱에 맡기는 등 인력을 줄여갔다. 덤프트럭과 중장비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개방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운임은 하락했고 하청업체들의 사정도 갈수록 열악해졌다.

대형 건설사들은 단순히 공사 물량을 넘겨주는 브로커 역할을 맡았으면서도 하청 발주 과정에서 엄청난 차익을 챙겨간다. 대형 건설사들끼리 가격을 담합해 폭리를 취할 수 있는 턴키 입찰 방식이 이를 지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경 편성 등을 통해 건설 사업 재정을 확대하면 그 대부분은 공사를 수주한 대형 원도급자가 차지하고 밑바닥까지는 거의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건설업체들이 무리한 차입과 미분양 물량 때문에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에는 정부의 부양 예산이 이들의 부채 상황에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노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건설업체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2009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한 예산의 상당수가 건설·토목 사업에 쓰인다. 그 실상을 보면 조기 예산 집행이 시중에 돈을 빨리 푸는 것보다는 대형 건설업체의 호주머니에 정부의 예산을 일찍 집어넣는다는 뜻에 가깝다. 하청업체에는 정부 예산 집행액의 9~12%만 전달된다. 정작 돈이 필요한 업체에는 돈이 내려가지 않고 대기업에만 머무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실태를 조사하고 관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MB, 1990년대 일본의 실패 답습 중"

부동산 거품 붕괴시기에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부동산 거품 붕괴를 먼저 경험했던 일본의 사례를 보자. 일본은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해 1992년~1995년 사이에 66조9000억 엔 규모의 경기 부양정책을 쏟아냈다. 보완 대책에 쓰인 돈까지 합치면 73조 엔으로 이는 1994년 일본 일반 예산과 맞먹는다.

하지만 일본은 거품 붕괴를 막지 못했다. 이 기간에 일본의 실질 성장률은 0%대였다. 이유는 다양하다. 집권당인 자민당 건설·토건족 의원들에 의해 불필요한 건설·토건 사업들이 부양책에 포함되었다. 부동산 거품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거품을 만들어냈다. 동물들이나 다니는 길까지 거대한 고가도로로 연결했다.

한편으론 과도한 경기 부양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당했어야 할 부실 건설사들 상당수가 연명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1994년 일본의 콘크리트 제조량은 9160만 톤으로 미국보다도 많았다.

이런 모순은 더 큰 충격으로 돌아왔다. 일본 정부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국가 채무에 대한 부담으로 1996년~1997년 사이에는 대규모 부양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의 재정 지원이라는 호흡기에 의존하던 건설업체와 금융기관들이 줄도산해 근로자들의 피해도 급증했다.

한편 일본은 공공 건설 사업 부양뿐 아니라 금리 인하와 주가 부양 대책도 함께 동원했다. 1992년 하반기에만 2조8200억 엔의 우정연금과 국민연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해 주가를 떠받쳤다. 또한 중앙은행에 수시로 압력을 가해 1990년 8월 6%였던 기준금리를 1991년 4.5%, 1994년 1.75%까지 낮췄다. 하지만 은행들이 건설사의 대규모 부실채권을 잔뜩 떠안고 있는 상태에서 금리를 낮춘다고 추가 대출 여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일본은 재정정책·통화정책·공적 연금까지 동원했지만 거품 붕괴를 막지 못했고 오히려 과감한 구조조정 후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재정 및 통화정책 카드까지 소진해버린 셈이다.

기묘하게도 한국 정부는 1990년대 일본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재정 확대를 통한 건설 경기 부양책 남발, 주공·대안주택보증·자산관리공사까지 동원한 미분양 아파트 매입, 유례없는 금리 인하, 연금을 동원한 주식 및 은행채·회사채 매입까지 마구잡이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다. 과거 일본이나 외환위기 직후의 구조조정 경험에서 배우기는커녕 일본이 장기 불황으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한국은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반복되는 정책실패로 국가적 위기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 관료, 정치권의 무능과 무지를 계속 방치한다면 패러다임이 바뀐 21세기 한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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