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점차 '혼자'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2016년에 발표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5년 12.7%에 불과하던 1인 가구는 2016년에 27.9%로 늘어나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되었다. '일코노미'(1명 + 이코노미의 합성어), '나홀로족'과 같은 신조어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자체를 문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혼자 산다는 것이 반드시 고립,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가구 형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와 이웃이 갖는 가치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OECD가 발표한 '2017년 더 나은 삶의 지수(OECD Better Life Index)' 결과에 따르면, '어려울 때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은 75.9%에 불과했다. 이는 38개 조사대상 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결과였다(☞관련 자료).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사촌이든, 가까운 관계의 응집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Social Science & Medicine)>에 발표된 논문은 지역사회환경에 대한 인식이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미국의 대표적 건강 조사인 '건강과 은퇴 연구' 자료를 이용하여 지역사회의 응집력과 와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심장대사질환의 위험을 높이는지 검증하고자 했다. 연구진은 지역사회의 친밀도, 신뢰도, 유익성 등을 바탕으로 '응집력'을 평가하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기물 파손 행위의 심각성, 안전 수준에 대한 인식 등을 통해 '와해' 정도를 평가했다.
그동안 보건 분야에서는 지역사회의 응집력 정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을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인의 특성과 사회경제적 조건이 건강 상태는 물론 지역사회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역사회 응집력과 건강상태 사이의 선후 관계를 확정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진은 지역사회 환경에 대한 인식이 심장대사질환 위험에 미치는 영향이 불안 또는 신체활동 수준을 통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지를 함께 분석했다.
분석 결과, 지역사회의 응집력이 높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일수록 심장대사질환의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응집력의 효과는 장기적으로도 유효했다. 불안의 정도, 신체활동 수준은 이러한 관계를 부분적으로 매개하고 있었다. 특히 신체활동은 응집력과 심장대사질환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데 불안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반면 지역사회의 와해에 대한 인식은 심장대사질환의 위험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지역사회 응집 정도가 와해 정도에 비해 더 지속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잘 응집되지 못한 지역사회를 경험하는 것은 심리적, 행동적, 신체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 청년층에서는 과잉 연결과 소모적인 관계에 권태를 느끼고 타인과 관계 맺기를 꺼리는 '관태기' 현상이 대두하고 있다. SNS와 스마트폰 같은 기술이 앞다투어 '연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반면 중·노년층에서는 사회적 단절로 인한 고독사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관련 기사). 문제의 원인은 다르지만 청년층이나 중·노년층 모두에서 공동체의 응집력이 약화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은 청년층과 중․노년층 각각에서 부정적 건강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는 흔히 공동체의 문제를 개인 문제와는 별개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 소개한 논문에서 드러나듯 공동체의 건강, 즉 지역사회의 응집력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의 건강과 무관하지 않다.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인 '나 홀로'를 넘어, 건강한 지역사회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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