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한 여자고등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다가 여성의 참정권 이야기가 나왔다. 1913년 에밀리 와일링 데이비슨이 영국의 경마장에서 경주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국왕의 말의 고삐를 잡다가 죽게 된 일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런 방법을 택했다. 이제 역사에서 상식이 된 지식을 전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지난 시대의 지식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 건, 그 이야기를 듣고 침묵에 잠긴 학생들의 표정과 마주쳤을 때였다. 맨 끝줄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손을 들고 또렷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당시 영국의 상황이며,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의 투쟁에 대해 말해 주면 될 것 같았지만, 질문은 그 뜻이 아니었다. 어째서 여성들을 그렇게 차별적으로 대하고 폭력을 쓸 수 있었는지, 그것이 어째서 가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 지금도 여성혐오와 차별이 횡행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순간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성별을 이유 삼아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오랫동안 권리를 무시해 왔을까? 또 어떻게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잊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 올 수 있었을까?
싸우는 여성들의 이미지나 이야기를 우리는 듣거나 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고통받는 여성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려 내는 작품들은 많아도 겁 없이 싸워서 권리를 찾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드물었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여성참정권 운동을 전투적으로 한 영국의 운동가들을 뜻한다.
동명의 영화(사라 가브론 감독, 2015)가 있는데, 나는 영화에서 이들이 재현된 모습을 보고 놀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빅토리아도 조신한 영국 여성의 이미지를 단번에 깨뜨리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몇십 년에 걸쳐 정부와 의회에 여성의 참정권을 합법적으로 요구하던 이들은 정치권에서 끝내 외면당하자 전투적인 방법을 취한다. 긴 치마를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쓴 상류층 여성들이 대낮에 돌멩이를 던져 상점의 유리창을 산산이 부숴 버린다. 영화에는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여 우체통이며 저택을 폭파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감옥에 갇혀서는 단식투쟁을 하며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싸우다가 콧구멍에 관을 끼워 넣는 강제급식을 당하기도 한다. 경찰이 남편들이며 사업주를 동원해 협박과 폭력을 써도 도무지 동요하지 않고 투표할 권리를 외치며 깃발을 들고 집회를 한다. 투표권을 얻는다는 목표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여성마저 적대적이고 혹독한 환경을 참지 않고 자신을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우하라고 외친다.
나는 어린 시절에 공주들을 종이에 그리곤 했는데, 그건 확실히 동양인이 아니라 긴 드레스에 왕관을 쓴 노랑머리 외국 공주들이었다. 동화책에도 곧잘 나오던 공주들은 왕의 딸이거나 왕자의 신부였지 자기 손으로 노동하고 권리를 찾으려는 여성은 아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한다. 현실의 불평등과 차별을 가리거나, 그 불평등에 겁먹게 해서 순종하게 하는 것은 둘 다 교육적이지 않다고.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지만, 또한 인간이 그 현실을 바꾸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주류 이데올로기에서 삭제된 이미지인 싸우고 외치는 여성들, 권리의 영역을 확대해 온 여성의 모습을 알리는 것은 그래서 중요했다. 가정이라는 전통적 영역에 있는 여성, 의존적으로 모성만 수행하는 여성,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불안정한 노동자인 여성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서프러제트는 허용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요구하고 다른 계층의 여성들과 연대하려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 주었다.
사실, 과격하고 비민주적 조직 운영으로 비판받기도 했던 서프러제트는 운동을 대중화하지 못하고 차츰 고립되어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 정부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서프러제트의 이미지에 끌린 것은 거침없이 싸우는 여성상 때문이었다. 여전히 성차별의 이데올로기 속에 생산된 이념과 작품을 배워 가는 우리 여성들에게 역사 속 여성들의 싸움을 발굴해 보여주고 여성의 삶이 소외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법을 바꾸기 위해 노동법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간 옛 여성들은, 100여 년이 지나도 차별이 이어지는 세상을 꿈꾸진 않았을 것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서프러제트 운동을 결심하게 된 원동력으로 빈민 구제위원으로 있을 때의 경험을 들었다. 아기를 빼앗겨야 하는 미혼모들과 집도 돈도 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성들, 노동을 해도 재산권과 자식에 대한 권리가 없는 여성들, 남편에게 예속된 여성들, 남편의 연금이 없으면 당장 구휼 대상이 되는 여성들을 보고 팽크허스트는 자신의 딸들과 함께 평생을 싸웠다. 그녀가 말하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인권 상황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목격되는 이야기다.
여성 자신의 몸과 노동과 가족과 재산에 대한 권리, 정치적 주체로서의 권리, 시민으로의 권리는 아직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 이십삼만 명이 넘는 이들이 낙태법 폐지 청원에 동참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전국 거리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임신 중단의 권리를 주장하며 검은 시위가 일어났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집회가 이어진다.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에 당당하라는 것을 다음 세대에 교육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가족을 지키고, 노동할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회사에서 집에서 희롱과 폭력을 당하며 언제나 고군분투해 왔다. 언제나 여성들은 시대마다 당면한 문제와 맞닥뜨려 그 문제에 이름을 붙이고 용감하게 싸웠다. 한마디 구호로 표현된 말 아래에 숨어 있는 이름 없는 고통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름 얻지 못한 모멸감과 고달픔이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질문하고 외치게 한다. 싸우는 이유는,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같은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리고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뼈아팠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체념과 달관을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은 이럴 수 없다고 한 걸음 내디딜 정도로 여성들이 용기 있었기 때문이다.
불평등을 간과하지 않고 바꾸어 내는 힘은 너무 과소평가되고 감추어져 있다. 불평등한 상황 속에서 평등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한 줄의 역사가 남아 있어 지금 더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되었을 때 현실에 맞부딪치는 장벽도 혼자만 짓눌린 듯 두려운 것이 아니게 된다. 세상에서 별일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일이 별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고, 새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는 것이 지금은 사라진, 싸웠던 여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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