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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천 화재, 소방관 처벌이 능사 아니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화재 대응 실패 처벌, 안전 사회 새 화두

지난 22일로 제천 화재 참사 한 달째를 맞이했다. 당시 불끄기에 나선 제천 소방공무원 처벌 문제를 놓고 연일 뜨겁다. 온라인에는 소방공무원 처벌을 반대하는 글들과 댓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제천 화재 관련 소방공무원 사법처리 반대'의 글이 올라왔다. 최근까지 무려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 청원에 참여했다. 재난이나 화재참사 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닌,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청원자는 "완벽하지 않은 현장 대응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선례는 소방공무원들에게 재직 기간에 한 번이라도 대응에 실패하면 사법처리될 수 있다는 작두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소방청은 이미 충북소방본부장 등 4명의 책임자를 직위 해제했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소방공무원들에게 계속 맡기려면 경찰의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처벌 반대 청원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제천 화재 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이런 청원과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비상구에는 화염이 치솟는 등 어찌 손을 쓰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는 지역 일부 언론의 지적에 대해 "이런 무분별한 의혹 제기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대책위는 "(일부 언론이 제시한) 사진 속 비상구의 화염은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1층 주차장의 불이고, 비상구 통로에는 화염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제3의 (독립)기관이나 국회 차원에서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화재 참사나 재난 대응 관련 공무원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적극적인 의사 표시, 그것도 처벌 반대를 외치는 일은 지금까지 거의 보지 못한 현상이어서 눈길을 끈다. 중대 산재사고, 세월호 참사 등 과거에는 주로 재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자와 기업, 공무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했다.

재난 대응 실패, 어떤 경우에 처벌해야 하나?

제천 화재 참사는 재난 대응과 안전 관리에서 '얼마나 안전해야 안전한가?(How safe is safe?)'라는 화두와 함께 '재난 대응 관계자에 대한 처벌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새로운 과제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실수하는 존재다. 그래서 아무리 숙련된 의사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감염병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 사고와 삼성의료원 메르스 사태가 이를 잘 방증해주고 있다. 경찰이든, 해경이든, 소방관이든 크게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이들이지만 그들도 왕왕 오판하거나 실수한다.

따라서 우리의 논점은 이들이 판단을 잘못해 생명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전제조건 아래 어디까지 이를 인정할 것이냐이다. 제천 화재 참사에 한정해보더라도 이는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다.

처벌 능사 아냐, 사건 축소·은폐 하려는 동기 될 수 있어

만약 재난이나 중대 사건·사고가 발생해 고의나 중대 실수, 태만이 아닌데도 유가족이나 일반 시민들의 처벌을 원하는 빗발치는 여론에 휘둘려 사법당국이 관계 공무원 등을 형사처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강한 처벌은 제2의, 제3의 유사 재난과 사건·사고를 막을 수 있는 채찍이 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이들에게 사건·사고를 축소·은폐하려는 강한 요구를 불러일으킨다.

해경이나 경찰, 소방관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재난이나 사건·사고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종종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위기에 처한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실제로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소방관 등도 적지 않다.

만약 소방관들의 잘못을 시시콜콜 모두 캐어내 이것을 빌미로 징계 내지는 형사처벌 한다면 그 누가 온 몸을 바쳐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려들까. 따라서 이들에 대한 처벌은 매우 엄격한 조사와 조사결과 중대한 과실이 있거나 주의태만이 있을 경우처럼 매우 한정된 사안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장비 불량, 판단 잘못 등만으로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재난이나 사건·사고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뭐니 해도 피해자와 유가족 등이다. 이들이 주장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일단 귀담아 들어야 한다. 만약 재난 등이 벌어졌을 때 유가족이 요구하는 것이 비현실적이지 않은 이상 이를 받아들여 실행에 옮겨야 한다.

세월호 참사 때 억장이 무너져 내린 유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뒤늦게나마) 해경에 대한 수사를 했고 엄청난 비용이 들어까지만 선체를 뭍으로 끌어올렸다. 또 진상규명을 위해 별도의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2015~16년 한 차례 조사를 한데 이어 올해 다시 사회적 참사법을 제정해 두 번째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제천 화재 참사도 만약 유족들이 정부의 조사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거나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독립된 기관에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조사를 반드시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조사로 할 필요는 없다. 유가족들이 추천하는 전문가 등이 참여해 정밀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하면 된다.

이 조사 결과 소방관들의 심각한 주의태만이나 중대실수가 드러나면 그때 가서 그 내용에 따라 징계든, 형사처벌이든 하면 된다. 경찰이나 소방관이 절대로 형사처벌 대상이 안 될 하등의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만큼은 정말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실패를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사회일수록 안전해

우리 사회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실수가 벌어진다. 자그마한 실수가 자그마한 사고를 낳기도 하지만 자그마한 사고가 때론 재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난의 규모나 인명피해 숫자만으로 실수를 강력하게 응징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수많은 기업과 벤처기업들이 기술개발과 상품개발에 도전해 시장에 선보이지만 실패하는 것도 많다. 만약 기업들이 실패한 사례들을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긴다면 기업 내부 다른 부서에는 실패 이유를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드러내어 임직원들이 이를 공유한다면 그 기업은 분명 유사한 실패를 더는 하지 않고 100년 기업으로 커 갈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기업들에서는 매년 실패 이야기 대회를 연다고 한다. 물론 실패 사례 발표에 대한 불이익은 없다. 외려 칭찬과 상이 따른다.

소방을 비롯한 재난구조와 범죄 분야에서도 실패 상품 사례처럼 재난과 사건사고 대응 실패 사례를 터놓고 이야기하고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앞서 소개한 것처럼 고의나 주의태만이 아닌 경우에는 칭찬을 하는 것이 좋다.

제천 화재 참사는 건물 소방 점검에서부터 신고 접수, 대응, 참사 후 조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면밀하게, 독립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유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또 대응 과정에서 용서 못할 정도의 태만과 중대실수가 있었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일 터이다. 서로 터놓고 소통하면 헝클어진 매듭일지라도 풀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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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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