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 불편한 개념
강남 좌파는, 그 개념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우리 사회 뇌관의 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강남'이란 말에 담긴 복합적 코드에서 비롯된다. 사회학적으로 강남은 일종의 '빗장도시'다.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강남'은 사회적 위세(prestige)를 상징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기존 좌파의 이미지와 충돌한다.
강남 좌파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우파나 좌파에게 모두 불편한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파에게는 자신의 독점적 소유물이라 생각했던 강남에서의 좌파의 본격적인 등장이 반가울 리 없고, 좌파에게는 '강남'과 '좌파'라는 모순적 상징의 충돌이 결과적으로 좌파 세력을 약화시키는 '사회적 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강남 좌파와 유사한 개념이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등장한 바 있다. '리무진 리버럴', '고슈 캐비어', '샌프란시스코 리버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들에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좌파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생활태도에 대한 비판 내지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다. 내가 보기에도 강남 좌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좌파의 기본 가치에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며, 또한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주도해 온 좌파의 주류 세력에게 의도하든 하지 않든 낡은(old) 이미지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좌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하나의 사회적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더욱이 여론 형성에서 강남 좌파라 불리는 이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강남 좌파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하나의 사회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연합 |
세계화 시대와 강남 좌파의 등장
길게 보면 강남 좌파의 등장은 민주화 시대 이후 이념의 분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나라이건 마찬가지지만, 세계화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념의 분화가 진행된다. 부상하는 새로운 기준은 세계화에 대한 태도다. 세계화에 대해 개방적이냐 방어적이냐에 따라 좌파든 우파든 분화돼 왔고(<표> 참조), 개별 그룹들 사이에 갈등은 아니더라도 일정한 긴장이 존재해 왔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념적 분화가 가져오는 정치적 결과다. 경험적 자료에 입각한 면밀한 조사를 요청하는 것이지만, 크게 보면 2007년과 2008년 우리 사회 정치 변동에는 이러한 이념적 분화가 어느 정도 반영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경우 민족 우파에서 신자유주의 우파에 이르기까지 우파의 최대정치적 동원이 이뤄진 반면 좌파의 최소정치적 동원이 진행됐다면, 2008년 촛불집회의 경우 그 반대로 좌파의 최대정치적 동원이 이뤄졌고, 이때 특히 '자유주의 좌파'로서의 강남 좌파의 역할이 작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에서의 이러한 경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선거 참여를 포기하거나 이명박 후보 또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일부 자유주의 좌파가 야권 연합 후보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연합정치는 나름대로 성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요인을 어느 하나로만 환원시킬 수 없지만, 자유주의 좌파 그룹은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담당한 주요 그룹의 하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피 좌파로서의 강남 좌파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강남 좌파로 불리든, 자유주의 좌파로 불리든, 사무직 노동자와 전문직 노동자 그룹 내에서의 좌파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정치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누가 강남 좌파를 대변하고, 그들의 개인적, 사회적 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사회학적 시각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다. '부자 = 우파', '빈자 = 좌파'의 이분법으로는 세계화 시대 이념구도의 분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강남 좌파에 대한 일부 우파의 시기심어린 시선은 더더욱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비교사회학적으로 강남 좌파의 등장은 서구 사회의 '여피 좌파'(yuppie left)의 출현에 대응한다. 여피 좌파는 '포드주의 계급구조'가 '포스트-포드주의 계급구조'로 변화되면서 등장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무직과 전문직 종사자들, 다시 말해 '뉴 클래스', '문화 좌파' 또는 '포스트모던 좌파'를 지칭한다. 서구 사회의 경우 여피 좌파로 변신한 '68 세대'가 1990년대 중도 좌파의 정치적 기획인 '제3의 길'의 주요 지지 그룹 중 하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변동과 연관해 강남 좌파의 등장은 '486 세대'의 분화 또는 진화를 보여준다. 여러 사회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고소득 사무직과 전문직이 된 일부 486 세대는 앞선 동일 계층과는 달리 여전히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대세론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면서 이 계층 안에서 젊은 시절 품었던 좌파적 가치의 의미를 다시 발견한 것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486 세대의 높은 지지는 바로 이를 증거한다.
강남 좌파의 미래
강남 좌파가 좌파의 주류는 될 수 없다. 좌파의 정치·사회적 주류는 어디까지나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체성의 정치'라는 측면에서 강남 좌파는 이미 존재하며, 포스트-포드주의 자본주의 아래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좌파의 외연 확대라는 측면에서 기성 좌파와 강남 좌파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연대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세계화 시대 이념의 분화 과정에서 정치적 연대의 변화 가능성이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재정·복지정책,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고용 정책, 대외 개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통상 정책, 그리고 수월성과 형평성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의 교육 정책 등에서 좌파는 물론 우파의 경우 분화된 이념 구도 아래서 새로운 정치적 연대가 이뤄질 수 있다. 유럽통합에 대해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정통좌파와 정통우파가 정치적으로 연대한 것이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이제 우리 사회도 그 시험대 위에 올라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첫째, 강남 좌파를 자임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강남 좌파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이들은, 좌파적 가치를 지지한다면 하버마스가 말한 바 있는 '자기 제한적 이성'을 발휘해야 한다. 강남 좌파란 말에 담긴 복합적 의미를 고려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배려의 태도가 요구된다.
둘째, 이념구도의 분화를 반영한 새로운 연합정치의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는 이념의 '통섭'이 진행되는 동시에 자본과 노동 이외의 환경, 여성, 인권 등의 다양한 이슈들에서 새로운 좌우 이념 대립이 강화되는 일견 모순적인 시대다.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좌파적 가치를 혁신하는 '성찰적 연대'라는 새로운 과제가 한국 좌파에게 부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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