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1987>이 던진 질문, "'전쟁국가'를 어떻게 넘어설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1987>이 던진 질문, "'전쟁국가'를 어떻게 넘어설까?"

[장석준 칼럼]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래서 희망인 <1987>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즘 지인들과 만나면 빠뜨리지 않는 이야기 거리가 영화 <1987>이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해 6월 10일 시위에 이르기까지 6월 항쟁이 터져 나온 과정을 다룬 장준환 감독의 이 영화를 벌써 500만 관객이 봤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영화는 감동적이었다. 일단 예술 작품으로 뛰어났다. 그간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가 하나같이 멜로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1987>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었다. "또 민주화운동 영화냐"는 푸념도 있지만, 이제야 비로소 민주화운동 '영화'가 나왔다는 게 맞을 듯하다.

이에 더해 인상적인 것은 작품에 깔린 깊은 사유였다. <카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다룬 바 있는 시나리오 작가 김경찬의 공일 수도 있고,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에서 이미 보여준 장준환 감독의 특색일 수도 있겠다. 나는 특히 전작들에서 불편한 정도로 '악'을 응시한 장준환 감독의 작업이 <1987>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영화의 예술적 성취나 한계를 따질 능력이 안 된다. 게다가 이미 좋은 비평이 많이 나와 있으니 여기에 아마추어의 습작을 더 보탤 이유도 없다. 하지만 <1987>에 잠복한 성찰의 자극이 너무도 강렬한 탓에 영화가 다룬 주제들을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다는 강박이 끊이지 않는다. 비록 신선한 화제는 아니지만 여전히 감정을 복받치게 할 만큼은 현재적인 독재의 기억 그리고 미완의 민주혁명에 대해서 말이다.

'한 명의 주인공 대 여러 주인공들' 혹은 '전쟁국가 대 민주공화국'

<1987>의 깊은 사색은 영화의 서사 구조에 녹아 있다. 이 영화는 한 명의 주인공과 여러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한 명의 주인공이 중심에 있고 여러 주인공들이 번갈아가며 이 중심을 향해 달려드는 형국이다. 한 명의 주인공이란 김윤석이 분한 치안본부 박처원 전 치안감이고, 여러 주인공들은 하정우가 연기한 검사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대학 신입생에 이르기까지 마치 바통을 잇듯이 그 해 6월의 길을 열어가는 인물들이다.

영화가 성공한 것은 상당 부분 김윤석이 박처원 역을 제대로 해낸 덕분이다. 여러 주인공들이 명멸하는 가운데에도 한 명의 주인공 박처원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그는 강력하고 견고한 중핵이다. 여러 주인공들이 돌아가며 이 중핵에 일격을 가하면서 포위망이 좁혀지고 마침내 6월의 광장이 열린다. 김윤석이 이런 중핵에 어울리게 무게 있는 연기를 함으로써 영화는 설득력을 갖게 됐다.

실존 인물 박처원은 해방 후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그는 오직 '빨갱이'를 섬멸하겠다는 일념으로 경찰에 들어가 군부 독재 시기에 치안본부 대공 수사 총책이 됐다. 친일경찰 노덕술과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잇는 역사적 매개 고리가 바로 박처원이다. 6월 항쟁을 앞두고 그런 그의 지휘 아래 민주화운동 세력을 향한 대대적인 고문 조작 수사가 자행됐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이 광란이 낳은 필연적 비극이었다.

<1987>은 민주화운동가든 보통사람들이든 6월 항쟁에 기여한 이들이 아니라 하필 이런 인물을 중심에 놓는다. 말하자면 항쟁 주역들이 아니라 그 적을 중심에 놓는다. 이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장준환 감독의 전작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가 이제까지의 민주화운동 '멜로드라마'들과 갈라지는 지점도 이 대목이다. <1987>은 민주혁명의 적을 깊이 사색한다. 적을 희화화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그 강한 힘과 튼튼한 뿌리를 응시한다.

박처원은 실존 인물이면서 동시에 민주혁명의 극복 대상인 어떤 질서의 상징이다. 그 질서란 많은 학자가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있다"는 명제로 요약하는 체제다. <1987>은 광장의 투쟁이 아니라 그 전에 밀실에서 전개된 답답한 전사(前史)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이 헌법보다 상위법인" 이 체제를 드러내고 싶어서가 아닐까. 굳이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 헌법에 명시된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조차 "대공 수사"라는 한 단어 앞에 무력해지는 영화 속 장면들이 이를 생생히 전달한다.

헌법과 국가보안법은 전혀 다른 질서를 지향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약속하는 것은 어쨌든 '민주공화국'이다. 반면 국가보안법이 지탱하는 질서는 '전쟁국가'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쟁국가'란 단순히 전쟁을 하는 국가가 아니다. 전쟁이라는 예외 상태에 내몰린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처음부터 전쟁을 수행하려고 구축된 국가다. 사회를 병영의 거대한 확장판으로 만들려는 국가다.

70년 전 제헌국회는 다른 어느 나라 제헌의회 못지않은 깊이 있고 치열한 토론 끝에 첫 헌법을 제정했다. 제헌헌법은 경제 민주주의의 문제의식까지 일정하게 수용하며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제주도에서는 사실상 모든 주민을 적으로 돌리는 군사 작전을 통해 전쟁국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0월에 여수, 순천 사건까지 겪고 12월에 국가보안법이 제정됨으로써 전쟁국가는 확고한 기반을 갖추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한편에서는 민주공화국이,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국가가 동시에 등장했다. 집권자들은 전쟁국가만이 '빨갱이'에 맞서 민주공화국을 지킬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나라이고 공존할 수 없는 나라였다. 전쟁국가에서는 도대체 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민주공화국이란 원칙적으로 국가가 아니라 시민이 먼저인 나라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이 국가보다 자신이 더 근본이라고 자신할 때에만 존립하며 자라난다. 그런 시민이 헌법을 만들고 고치며 공직자들에게 권한을 주기도 하고 목을 치기도 하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다.

반면에 전쟁국가에게는 적과 아가 있을 뿐이다. <1987>에서 박처원이 내뱉는 말에 따르면, "애국자냐, 월북자냐"라는 물음이 가장 우선인 나라다. 이 물음의 답이 중요할 뿐, 인간과 시민의 권리란 이 분류와 선택 이후에 따라붙는 하찮은 사항들에 지나지 않는다.

박처원은 이 전쟁국가의 화신이다. 전쟁국가가 민주공화국을 제압하고 이를 껍데기로 만들어버린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다른 주인공들은 박처원과 대결하면서 의식했든 아니든 전쟁국가를 향해 돌격한다. 때로 목숨까지 내놓으며 그들 모두가 달려들어야 조금이라도 균열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이 적은 강력하다.

전쟁국가를 넘어설 우리의 답은 무엇인가?

<1987>을 둘러싼 표준적 해석은 양심적 검사, 의사, 기자, 종교인, 민주화운동가, 학생 등등의 힘이 하나 둘 모여 결국은 박처원이 대변하는 악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저마다 제 몫을 충실히 하면 철옹성 같던 독재 정권도 타도할 수 있다. 촛불 시민들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격려라 할만하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표준적 해석을 조금만 비틀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여러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적에 맞섰다는 것은 주인공 하나하나의 힘은 적에게 상대가 안 됐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결코 박처원을 제압하지 못했다. 그들 각자만으로는 전쟁국가를 압도하는 답이 될 수 없었다.

예컨대 하정우가 분한 최환 검사를 보자. 그가 박종철 열사 시신 부검을 밀어 붙인 것은 분명 국가보안법 중심 질서에 맞서 헌법의 기본권을 관철하려는 예외적 행위였다. 국가기구 안에서 이런 행위가 돌출함으로써 전쟁국가가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환은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이었다. 6월 항쟁을 앞두고 벌어진 대대적인 반정부 세력 탄압 공세에서 그는 박처원의 동료 중 한 사람이었다. 공직자가 실정법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부검을 강행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국가보안법을 충실히 집행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쟁국가에 맞선 답을 내놓기는커녕 그 일부였던 것이다. 수인 신세가 된 박처원이 최 전 검사와 마주치는 영화 속 장면에서도 박처원은 그다지 주눅 든 모습은 아니었다. 김윤석 연기의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표면적 서사보다 더 복잡한 진실을 전달했다고 할까.

또 다른 예는 유해진이 연기한 한재용 교도관이다. 위의 최 검사와는 정반대로, 이 등장인물의 모델이 된 한재동 교도관은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훨씬 더 투철한 민주 투사였다(☞관련 기사 : "경마장 일용직 된 '6월 항쟁의 도화선' : '박종철 사건 진실' 외부에 전한 한재동 전 교도관 인터뷰", <프레시안> 2007. 5. 9). 그런데 영화에서는 한재용이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와 고문 받다 결국 박처원과 대면한 다음 무너지는 것으로 나온다.

이 대목에서 박처원은 고문에 굴하지 않는 한재용에게 자기 가족사를 들려준다. 월남하기 전 토지 개혁 과정에서 식구가 모두 학살당하고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이 체험담 자체는 진실일 수도 있고, 과장이나 거짓일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전쟁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무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체험이라는 후광을 단 가족 비극은 "적군이냐, 아군이냐"는 무시무시한 이분법에 인간의 체취와 아우성을 더한다. 꿋꿋이 버티던 한재용도 이 공세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많은 관객이 이 장면을 불편해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1987>을 보며 처음으로 눈물짓는 대목이 다름 아니라 가족 비극의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유골을 흩뿌리며 오열하는 장면 말이다. 이를 보고 눈물 흘리며 관객들은 잔인무도한 군부 독재에 새삼 치를 떨게 된다. <1987>의 관객만이 아니다. 실제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이런 집단적 한(恨)의 정서가 투쟁의 중요한 계기가 되곤 했다.

그러나 느닷없는 박처원의 개입은 이 정서에 찬물을 끼얹는다. 돌연 악의 대변자가 가족 비극의 당사자라고 주장하고 나선다. 무고한 죽음을 향한 공감 정도는 전쟁국가가 충분히 자기 무기로 바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국가는 그런 눈물 따위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 흘리던 관객들이 불편해 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장 멀리 나아간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1987>은 공직자의 직업윤리, 가족애, 희생자를 향한 공감. 이런 것들이 모여 1987년 6월의 광장이 열렸다는 전설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것들 각자는 박처원이 대변하는 질서를 넘어설 답이 될 수 없다고, 그에 맞서 내놓을 답은 과연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민주공화국이 전쟁국가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이 제압할 길은 무엇인가?

<1987>은 묻지만, 답은 하지 않는다. 애초에 생각을 전달하는 일은 좋은 영화의 덕목이 아니리라. 그보다는 생각을 자극하는 쪽이 어울린다. <1987>의 경우에 이처럼 우리의 생각을 독려하는 단서는 아마도 여러 주인공들 중 가장 마지막 인물인 연희일 것이다.

답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 연희다. 연희라는 이 등장인물을 놓고 말들이 많다. 가장 분명한 것은 1987년에 대학에 들어간 86 세대(민주화 세대)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1987>이 86 세대의 향수병에 기대는 영화라는 핀잔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과연 연희는 86 세대인가? 나는 이한열 열사 사고 소식을 신문에서 보기 직전에 연희가 가게에서 정리하던 물품이 하필 양초인 설정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소품 역시 의도됐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연희는 86 세대이면서 또한 촛불 세대일지 모른다.

아니, 특정 세대를 넘어 연희는 메시지에 가장 진지하게 반응하고 이에 답하려는 누군가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지만, 연희가 운동에 합류하길 꺼려하는 이유는 진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너무도 진지하다. 그는 이미 여러 번 패배(가령 체불 임금을 받으려다 배신만 맛본 아버지의 기억)를 경험했다. 그래서 과연 굽힘없이 함께 메시지를 수신하고 응답할 이들이 있을지 회의하기에 행동을 미룰 뿐이다.

그러나 이한열 열사의 사고라는 결정적인 메시지를 접하자 연희는 일어나 달려간다. <1987>은 박처원에게 내놓을 답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그 답을 완성할 이가 누구인지는 뚜렷이 지목한다. 그는 다른 누군가가 간절히 쏘아올린 메시지를 읽고 달려갈 수많은 연희들이다.

끝이 시작인 영화,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민주혁명

그렇게 연희는 달려간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화에서는 달리는 연희 앞에 1987년 6월 10일의 광장이 열려 있다. 그 광장에서는 수많은 연희들이 낡은 질서를 향해 그 동안 벼르고 별러온 답을 외친다. "너희들의 나라는 우리와 상관없다! 우리는 우리가 세우는 나라의 시민이다!" 전쟁국가에 눌려 허깨비 같았던 민주공화국이 그 자리에서 처음 실체를 갖추려 한다.

물론 광장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연희들은 더 오랜 시간, 더 험한 길을 달려야 했다. 1960년 4월의 광장이 기적처럼 열리고 나서 숱한 비극을 겪으며 27년이 지난 뒤에야 6월의 광장이 열렸고, 다시 30년 뒤에야 촛불 광장이 열렸다. 이토록 광장은 희귀하고, 승리는 더욱 희귀하다. 그러나 연희는 달린다. 수많은 연희들이 결국은 일어나고 달린다. 지금도 달린다. 저마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의 그 '우리'를 찾으려고 달린다.

그래서 <1987>의 결말은 결코 승리가 아니다. 승리의 회고담이 아니다. 아니, 결말 자체가 비어 있다.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연희가 광장에 도착한 마지막 장면에서야 영화 제목 '1987'이 뜬다. 지금껏 본 것은 어쩌면 기다란 전사(前史)였던 것이다. 이야기는 이제야 시작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모든 이야기의 찬란한 미덕, 희망과 함께 말이다.

▲영화 <1987>.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