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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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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손혁재 칼럼] 석패율 제도 제대로 하려면…

국회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선거가 치러지므로 정개특위가 해야 할 일은 적지 않다. 내년 12월에 제18대 대통령선거도 치러지지만 대통령선거와 관련해서는 고쳐야 할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통령선거에서는 선거법보다도 각 당들이 자당의 후보를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더 많을 것이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공직선거법의 개정 방향에 관한 공청회도 열었다. 이 공청회는 선거운동, 재외선거, 선거구 등 전반적인 선거제도를 다루는 공청회였다. 그런데 이미 예상은 했지만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석패율 제도가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석패율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선관위가 검토 중인 석패율 제도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에서 낙선되어도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지역구에 출마하는 후보에게 비례대표명부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례대표 후보자명부의 한 순위에 같은 시·도에 입후보한 복수의 지역구국회의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한 순위에 이름을 올린 낙선자 가운데에서 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것이다. 현행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비례대표제, 의원정수, 비례대표 의석 배분방법 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엄밀히 말하면 선관위나 거대정당들이 도입하려는 제도는 석패율 제도가 아니다. 일본의 제도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는 바람에 석패율로 알려졌지만 선관위가 붙인 제도의 정식명칭은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제'이다. 석패율은 일본에서 지역구에서 떨어진 후보 가운데 비례대표로 구제할 사람을 결정하는 방식인 것이다. 우리 선관위의 안은 평균 유효득표수대비 득표율이 가장 높은 후보자는 당선되도록 하고 있다.
▲ 석패율제 도입에 자유선진당 등 소수정당들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뉴시스

정치권이나 선관위에서 석패율 제도를 검토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지역주의 완화이다. 석패율 제도를 통해 정당들이 취약한 지역에서 당선자를 낸다면 지역분할 구도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역주의정치가 우리 정치가 하루라도 빨리 극복해야 할 숙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구제 때문에 지역주의가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거구제의 변화만으로 지역주의가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행의 제도를 바탕으로 선거구제를 논의하는 것은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에서는 의석을 거의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을 다소 완화시키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그 효과마저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 특정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 정당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석패율 제도는 지역구에서 떨어진 후보 가운데 일부를 비례대표 몫으로 구제하는 제도이다. 그렇게 되면 전문가나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몫이 줄어들어 비례대표제도입의 근본 취지가 약화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석패율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일본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유력정치인들의 보험용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이, 그리고 선관위가 정말로 지역주의를 극복하려 한다면 독일식 정당명부제비례대표제 도입이 더 효과적이다. 정당정치의 올바른 정착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라 부르기 어렵다.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투표를 기준으로 배분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를 뿐이다. 오히려 일본의 병립식에 가깝다. 중앙선관위가 현행 제도를 부르는 정식명칭도 '정당별 득표비례구속명부제'이다. 독일식의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로 바꾼다면 정당득표율과 일치하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취약지역의 출마자들도 원내진출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독일식으로 선거구제를 바꾸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국회 총의석수를 늘리지 않고 독일식으로 바꾸려면 지역구를 100개 가까이 줄여야 한다.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제17대 국회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무시하면서까지 선거구 획정을 자의적으로 했다. 동료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국회가 지역구 의석의 40% 정도를 줄이는 방안을 채택한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지역구 의석(현재 245석)을 줄이지 않고 독일식으로 바꾸려면 현재 54석인 비례대표 의석을 200석 가까이 늘려야 한다. 이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국민정서상 국회 의석은 단 한 석도 늘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회 의석을 늘리는 것은 헌법위반이라는 일부 헌법학자들의 주장도 부담이다. 이들은 헌법이 국회의원 정원을 200인 이상으로 규정한 것은 200인-299인 사이에서만 의석을 정하라는 의미로 300인을 넘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 어려워 차선책으로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첫걸음은 국민을 잘 설득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제도의 개선을 통해서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어야 한다.

특정정당의 특정지역 편중현상을 실질적으로 완화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려면 권역별 정당명부제가 필수적이다. 지금도 각 정당들은 비례대표 후보자명부를 작성할 때 취약지역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호남 출신을 당선안정권에 몇 명씩 배치하고 있고, 민주당도 영남 출신을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지역주의 완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호남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호남 몫의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한 한나라당 의원들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보고 있지 않다. 호남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호남 몫의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호남출신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이 호남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영남 몫의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출신은 영,호남이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명망가들 위주로 비례대표를 배정하기 때문이다. 호남 지역에서 욕을 먹어가면서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은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영남 지역에서 푸대접받아가면서 민주당을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도 비례대표를 통한 원내진출의 기회가 거의 없다. 권역별 정당명부제로 한다면 그 권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기회가 커질 것이다.

문제는 권역별 정당명부제로 하기에는 지금의 비례대표 의석 54석은 너무 적다는 점이다. 권역을 어떻게 나누더라도 인구비례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게 될 것이고, 호남이나 영남에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지금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획득할 수 있는 의석은 1,2석에 그칠 것이다. 겨우 한, 두석의 의석으로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겠는가.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실시하려면 지역구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비례의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지역구를 100석 가까이 줄일 수는 없겠지만 얼마라도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석패율 도입에 국민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도입할 수 있고, 석패율 제도를 통해 지역주의 완화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석패율 도입을 위해서 풀어야할 또 하나의 과제는 전문가나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성 몫으로 배정되는 홀수번은 그대로 여성 몫으로 두되, 그 가운데 일부만 지역에서 출마하는 여성정치인들을 배려한 석패율로 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역배려라는 명분 아래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지역출신을 배정하던 몫을 그 지역에서 뛰는 사람들을 지역에 출마시키고, 동시에 비례대표 명부에 등록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전문가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지금까지 하던 방식대로 운용하면 석패율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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