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직접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영화 <다이빙 벨>의 상영을 금하도록 지시했고, 이용관 당시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의 인사조치를 요구한 문건이 확인됐다.
해당 문건은 김희범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작성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는 물론, 이를 근거로 문화예술계에 직접적인 압박까지 가한 결정적 단서다.
그간 청와대가 이 전 집행위원장의 인사 조치를 직접 요구했다는 건 의혹으로만 제기되어 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의 각종 지원 사업을 최종 의사결정하는 이른바 '9인 위원회'가 존재했으며, 청와대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인맥으로 채워진 이들이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적극 가담한 사실도 확인됐다.
12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김영한 수석 비망록에 언급된 김기춘 실장의 문화예술 분야 개입 관련'이라는 자료를 내고 "청와대와 문체부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외압을 가했음을 확인"했음을 밝혔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지난 5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진상조사 기간을 3개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는 4월 말까지 진행된다.
靑, 직접 이용관 BIFF 인사조치 요구
진상조사위가 밝힌 김희범 전 차관의 문건을 보면, 김기춘 전 실장과 김종덕 전 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핵심 관계자들이 직접 개별 사항을 지시하며 블랙리스트 작업에 관여했음이 드러난다.
문건을 보면 "청와대 교문수석실은 <다이빙 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도록 할 것"과 "부산국제영화제 이후에는 전국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도록 강력히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청와대가 특정 영화 하나에까지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해당 내용은 직접 서병수 부산시장에게로 전달됐다.
문건에서 "송광용 교문수석은 김종덕 전 장관으로 하여금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전화할 것을 주문"했고, 이에 김 전 장관은 전화로 청와대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이어 "김소영 문화비서관이 본인(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에게 서 시장으로부터 (다이빙 벨의) 상영 여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인사 조치 등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받아낼 것을 주문"했다고 김 전 차관은 문건에서 밝혔다. 이에 김 전 차관은 "부산시 출장을 계기로 서 시장을 개별 면담해 서 시장이 정부 뜻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 받았다.
즉, 김 전 차관이 2014년 9월경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서 시장을 독대했고, 이 자리에서 <다이빙 벨> 상영 금지 지시와 이 전 집행위원장 인사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김기춘 전 실장의 이름도 등장한다. 김 전 실장은 <다이빙 벨> 모니터링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문체부 OOO 콘텐츠 정책관을 두고 "징계를 하되, 너무 심하지 않은 수준의 징계"를 김 전 장관에게 직접 전화로 전달했다.
청와대·문체부, BIFF 외압 위해 부산시에 다섯 차례 외압
이와 관련, 청와대와 문체부는 그간 다섯 차례에 걸쳐 부산국제영화제에 외압을 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기춘 전 실장과 김종덕 전 장관은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직접 전화해 <다이빙 벨> 상영을 금지토록 지시했다. 김 전 실장과 서 시장의 통화 사실은 특검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됐다.
김종덕 전 장관의 경우, 지난 2014년 10월경 '<다이빙 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도록 하라'는 김 전 실장의 연락을 받은 후, 서 시장에게 전화해 "청와대에서 <다이빙 벨>이 상영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달했다.
당시 서 시장은 "이미 김 전 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알고 있는 일"이라며 "알아서 하겠다"고 답했다고 진상조사위는 밝혔다.
김희범 전 차관은 서 시장과 독대했을 뿐만 아니라, 부산 경제부시장과 통화해 <다이빙 벨> 상영 금지 논의를 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차관도 할 수 있는 것은 해 달라"는 김 전 장관의 요청을 받아, 기재부 근무 당시 지인이었던 부산시 경제부시장에게 전화해 <다이빙 벨> 상영 금지를 요청했다.
신모 전 문체부 실장도 부산시 정무부시장에게 전화해 <다이빙 벨> 상영 여부가 청와대 관심사항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와 관련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개최 전 사퇴권고를 한 부산시 모 부시장과의 대화 내용을 진상조사위에 밝힌 바 있다. 이 전 위원장에 따르면, 영화제 개최 이전인 2014년 9월 30일~10월 1일 사이 한 교수와 함께 부시장이 자신을 찾아와 '<다이빙 벨> 상영은 절대 안 된다, 큰일 난다'며 상영 금지를 요구했다.
영화제 진행 중에도 해당 부시장과 전임 국장들이 하루 두 차례씩 자신을 찾아와 사퇴하거나 책임자 해임을 요구했다고 이 전 집행위원장은 밝혔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진술서에서 이 대화 내용을 전하며 "이미 손을 떠난 것"같은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청와대 지시로 문체부를 위시한 정부 조직 최고 수뇌부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강력한 외압을 가했고, 이에 따라 부산시가 움직여 외압을 실행했음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靑, BIFF 예산 삭감 등으로 보복
박근혜 정부의 이 같은 압력 이후에도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이빙 벨> 상영을 감행하자, 청와대의 압력은 더 노골화했다.
청와대는 <다이빙 벨>이 결국 상영되자, 영화 상영과 관련해 문체부로부터 26건에 달하는 보고를 받고 후속 대응을 지시했다.
진상조사위가 확보한 문체부 자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다이빙 벨> 상영 추진 경과'에 따르면, 청와대는 '주요 상황처리 현황 (BH 요청사항)'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 벨> 선정 과정, 선정 사유, 상영 및 예매 현황' 등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사후 조치로는 △개봉 전부터 상영예정 극장 및 예매 현황 등을 일일 상황 보고 △보고 서식 지정 △<다이빙 벨>을 상영하는 영화관에 대한 대책 마련 지시 △<다이빙 벨> 상영관을 대상으로 상영 중단 및 축소 대책 마련 강구 △언론을 대상으로 <다이빙 벨>의 상영 부당성을 보도하도록 하는 대책 마련 △예술영화전용관 등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상영관에 상영 중단 등의 대책 강구 △<다이빙 벨>을 상영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방안 개선(지원 중단으로 추정) 등을 문체부에 내려보냈다.
아울러 청와대는 <다이빙 벨>과 <불안한 외출> 등이 상영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문체부 직원 김모 국장, 기모 과장, 윤모 사무관 등 3명의 중징계를 요청했다. 이들에게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불안한 외출> 검색 보고를 하지 않은 사유서도 제출토록 요구했다.
부산시와 감사원의 압력도 이어졌다. 부산시와 감사원 특별감사국은 <다이빙 벨> 상영 직후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에 이례적인 감사를 실시했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인사 조치는 감사 이후 부산시가 이 전 집행위원장을 검찰 고발하는 등의 조치로 실행된 것으로 풀이된다.
靑, 영진위 '9인 위원회' 통해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
영화계 블랙리스트는 영진위의 이른바 '9인 위원회'를 통해 실행되었음도 확인됐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은 청와대와 김종덕 전 장관 라인으로 채워진 영진위의 9인 위원회가 주도했다.
2014년 청와대와 문체부는 영진위원장에 김세훈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를 임명해 블랙리스트 실행 총 책임을 맡겼다. 이후 순차적으로 청와대와 김 전 장관 라인의 인사 5~6명이 영진위원에 임명됐다.
이들의 임명을 위해 문체부 등이 영진위에 압력을 가한 정황도 포착됐다. 김세훈 영진위원장 임명 석 달 전인 2014년 9월 11일, 당초 위원장에 추천된 모든 인사가 전원 교체됐다. 이후 이들은 영진위를 통해 영화계에 강력한 압력을 가했다.
문체부가 2015년 1월 19일 작성한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제 관련 동향' 문건을 보면, 이들은 이후 블랙리스트 실행에 적극 가담해 <자가당착>, <다이빙 벨> 등을 상영 예정이던 2015년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제 지원을 취소했다.
해당 문건에서 문체부는 영화제 지원 취소를 고려하며 우선 '신청 서류 하자'를 이유로 영진위의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들은 그러나 이 방법을 쓸 경우 '취소 시 야당, 독립영화계 반발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다른 안으로는 사후 조치를 추진했다. 2015년 영진위가 이 영화제에 지원하는 임대료 500만 원 지원을 중단하고, 면제 심사 강화를 검토하도록 했다.
영진위, <판도라> 제재하며 배우 김명민, 김영애 등 거론
이와 관련해 문체부 담당자는 진상조사위에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제 배제는) 영진위로 하여금 다음 해 지원 대상에서 배제토록 한 것이고, 당연히 청와대의 뜻을 (영진위에) 알렸다"며 "최종적으로 9인 위원회를 거쳐야 하지만 이미 김종덕 장관이 5~6명을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로 선임해 놓았기 때문에 이런 방안이 통과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해당 담당자는 또 영진위 9인 위원회 위원 6명의 이름을 거명하며 "김세훈 위원장 자신이 김종덕 장관과 친분이 있었고 김OO, 신OO, 박OO은 직접 김종덕 장관이 지명한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아울러 "김OO은 청와대에서 직접 찍어서 문체부 인사과로 통보된 사람이었고 이OO은 무난하게 잘 따라오는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이들 인사를 구성하는데도 김기춘 전 실장이 관여한 정황도 포착된다. 김종덕 전 장관의 진술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결국 '사람이 문제'라고 하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잘 뽑으라고 지시"했다. 영진위 위원을 임명할 당시 박 전 대통령 대선 후보 캠프에서 일한 이력도 고려했다고 김 전 장관은 밝힌 바 있다.
실제 김종덕 전 장관이 임명한 김종국 영진위 부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일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판도라>의 지원 배제를 직접 김 전 장관에게 건의한 인물이다. 김종덕 전 장관은 재판 증거자료로 제출한 진술에서 "김종국 부위원장이 저에게 부산국제영화제의 자회사인 CAC 엔터테인먼트가 원전비리와 정부 책임으로 원전재난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영화(판도라)를 서울시와 강원도에서 촬영하고 있다"며 "주연배우 또한 노사모 회원인 김명민 등이므로 정부 지원을 배제하고 배급사를 조정해 흥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한편 진상조사위는 지난 5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조사기간을 종전보다 3개월 늘리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는 오는 4월 말까지 진행된다. 5월부터 7월 말까지 3개월 동안은 진상조사 결과를 정리한 백서 편찬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진상조사위는 총 148건의 블랙리스트 관련 사건 중 137건의 조사 신청 및 직권조사를 진행 중이다. 진상조사위가 확인한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는 총 2670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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