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다 왔다. 우리 동네다."
"엄마, 우리 여기 미군기지 와 봤지. 행진도 했지. 여기가 3번 게이트 맞지?"
어린 두 녀석의 재잘거림에 쓴웃음이 나온다. 그래, 맞다. 우리 동네지. 용산 미군기지. 둘째 녀석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무렵 아이를 아기띠로 둘러메고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나섰던 기억이 스쳐 간다.
"똥 싼 놈이 똥 치워라, 미군은 정화하고 떠나라!"
혹시 미군들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 영어강사 선배에게 영문으로 영작도 부탁해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꼬박 2년.
2001년 발생한 지하수 기름 유출 사고 지점, 녹사평역 인근에서는 2017년 12월 현재도 기름으로 오염된 지하수가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다. 2006년 노후된 기름탱크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오염된 캠프킴 일대에서는 2017년 12월 지금도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키는 석유계 총 탄화수소(유류로 오염된 시료 중 등유, 경유, 제트유, 벙커C유로 인한 오염 여부를 나타낸다. 한경 경제용어사전)가 검출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 두 곳의 지하수를 매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화해 흘려보내고 있다. 기지 내부의 오염원을 모두 정화했다는 주한미군. 명백한 증거 앞에 그들은 어찌 그리 당당할 수 있을까?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을 시작한 용산 미군기지. 기지 밖에서 검출되는 오염물질을 보니 기지 안의 사정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2017년 우리 주민 모임에서는 미국의 정보자유법을 이용하여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미군기지 내에서 84건에 이르는 유류 유출 사고가 일어났음을 폭로하였다. 또한 지난 11월 말 환경부와 주한미군 측이 기지 내부 환경오염 조사 결과도 공개하였다. 이 또한 주민 모임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정보공개 소송으로 얻어 낸 결과였다. 한미동맹의 적폐는 우리 국민의 정당한 알 권리를 앞설 수 없음을 이 나라 사법부가 인정하였음에도 그들의 주한미군 눈치 보기는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결과는 참혹했다. 1급 발암물질 벤젠, 기준치의 671배 초과!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용산 기지 사우스포스트의 121후송병원에는 생화학무기 실험실이 있으며, 2015년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곳에서 15번의 탄저균 실험이 자행되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안보를 위함이 아니라 수도 한복판에 핵폭탄급 암 덩어리를 품고 살아가는 격이다.
우리들의 집회와 1인시위에는 늘 아이들이 함께한다. 아이를 업고 1인시위 하던 날, "애까지 데리고 나와 무슨 짓이냐?"며 혀를 끌끌 차던 할아버지에게 애 때문에 나왔노라 말씀드렸다. 내 아이가 살아갈 땅이기에 어려워도 나왔노라 말씀드렸다. 엄마들이 항의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동안 킥보드를 타고 미군기지 주변을 씽씽 내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유모차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풍물 가락에 엉덩이 흔드는 아이들을 보며 더 힘을 낸다. 이 길이 더 정의로운 길이며 함께 사는 길이라 다짐한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고 되새긴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실로 드러난 용산 미군기지 전역에 걸친 유류 오염. 지하수뿐만 아니라 기지 전반에 걸친 환경오염 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한미합동조사단뿐만 아니라 철저하고 투명한 정화 작업을 위해 시민조사단과 함께 미군기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미군기지로 향한다.
"여기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여기 대한민국은 너희들의 무법천지가 아니다!"
"소중한 우리 땅, 오염시킨 자가 정화해라!"
"용산 미군기지를 온전히 돌려놓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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