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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항거·투옥'은 '거액수수 투옥'이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3>최시중 씨께 드리는 편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님.

위원장님이 기자생활을 시작하신 게 1964년 4월이니까, 기자로서 위원장님은 저보다 4년 7개월이나 선배되십니다. 대선배님이십니다. 최시중 선배님, 아시겠지만 올바른 잣대로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기자로서의 본분이라고 배웠습니다. 병아리기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야기였습니다.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선배님이 주장하신 내용의 진실여부를 거듭 확인해 보고자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읽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만, 저는 그동안 "자유언론을 위해 독재에 항거하며 고문도 당하고 투옥도 되었다"는 선배님 주장에 대해 <프레시안>을 통해 두 차례(3월21일자·4월1일자)에 걸쳐, 선배님 스스로 진실을 밝혀 주실 것을 호소 드렸습니다. 그 주장이 다른 곳도 아닌 국회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왔기 때문에, 사실 관계가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게다가 선배님은 누구십니까. 명실 공히 언론계 원로이면서 이 나라 언론을 좌지우지하시는 분으로, 이명박 정권의 권력서열 3위에 계시다는 분 아니십니까.

3월21일자 칼럼에서는 "독재에 항거했다는 내용에 대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더라"는 의문을 중심으로 말씀 드렸고, 4월1일자 글에서는, 말씀하신 3가지, '독재에 항거' '고문' '투옥' 모두가 거짓이더라는 점을 일깨워 드렸지요. 자세히 생각나지 않으시던가요, 선배님께서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십니다. 선배님 자신의 입으로 진실을 털어놓기는 무리였는가요. 제가 선배님의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작년이었습니다.

우연히 '옥고'를 치르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들은 '옥고'는 선배님이 국회에서 말씀하신 그런 '옥고'와는 너무나도 다른 '옥고'였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만해도 40년이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서, 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아닌 다음에야 세상에 실수나 잘못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때문에 어떤 한 사람의 40년 전 실수를 두고두고 기억했다가 탓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비리나 실수가 그냥 가감 없이 그만한 무게로 세월에 얹혀 흘러간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것일지라도 개인 비리나 실수가 터무니없게도 거짓의 탈을 쓰고 훗날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면 그건 다릅니다. 더구나 개인 비리가 다른 것도 아닌 '민주언론 투쟁'의 탈을 쓰고 나타났다면 이건 정말 곤란합니다. 그대로 넘길 수 없습니다. 설사 그것이 40년 전의 일이라 다들 잊었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진실이 왜곡되어 역사가 된다면 큰일입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 지난 3월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을 하다 눈물을 보이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그동안 나간 제 칼럼을 읽은 한 독자는 어느새 국회 속기록에는 선배님이 민주언론투사로 영원히 남게 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최시중 선배님, 게다가 독재에 항거했기 때문인 것으로 주장하신 '투옥'은 흔히 있을 수 있는 비리나 실수에 의한 것과도 다른, '금품수수로 인한 투옥' 아니었습니까. '독재에 항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떤 정치적인 일'로 돈을 주고받은 사건이지 않습니까.

200만 원이 오간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치자금법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동아일보에서 선배님과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 가운데는 '그것'이 변호사법위반 사건이었다고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0만 원. 40년 전의 200만 원은 큰돈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1971년의 물가자료가 없어서, '사단법인 한국물가정보'가 보유하고 있는 1970년의 물가내역과 그 돈 200만 원의 크기를 비교해 봤습니다.

80kg들이 쌀 한 가마에 5760원하던 때였습니다. 택시 요금은 기본료 60원, 자장면 100원, 시내버스요금 10원이었습니다. 지금 돈으로 계산해 봤습니다. 쌀값으로는 6400만 원 정도입니다. 택시요금으로는 8000만 원이고, 자장면으로는 1억 원, 시내버스 요금으로는 2억 원에 이르는 거금입니다. 결국 그 200만 원을 되돌려 주고서야 수습된 사건이 아니던가요.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정신적 스승)로 널리 알려진 선배님이십니다. 선배님께서는 바로 이 사건을 놓고 "민주언론을 위해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고문도 당하고 투옥되기도 했다" 하셨습니다. "기자도(記者道)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왔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동 받았을 것입니다. 2011년 3월17일 이 나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그러셨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말씀을 하신거지요. 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하신 겁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저는 선배님께 스스로 진실을 말씀해 달라고 그토록 간곡히 말씀 드렸던 겁니다. 기자가 되면서부터 우리에게는 '올곧은 기자'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선배 언론인이 계셨습니다. 바로 위암(韋庵) 장지연 선생이십니다.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위암 선생은 황성신문 주필로 계시던 1905년 11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피 끓는 사설을 쓰셨습니다.

위암 선생은 대표적 항일 언론인으로 지목되어, 1962년 건국훈장국민장이 추서되었고, 2004년 11월에는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후손들이 받들어 모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서훈이 취소되었습니다. 정부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의결했습니다. 1914년부터 4년 동안 매일신보에 친일경향의 시와 산문을 꾸준히 기고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1916년 12월에는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를 위해 환영 한시(漢詩)를 싣기까지 한 '진실'이 새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하세가와 총독은 훗날 3·1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무단통치자로 악명을 떨친 사람이었습니다. 서훈 취소를 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번 조치는 옳다고 저는 봅니다. 역사의 눈은 그렇게 차가워야 하고 냉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그분은 한 과목쯤 A학점을 받았으나 나머지 여러 과목이 낙제점이었는데도 '우등생'으로 잘못 정해졌던 것입니다. 그분의 잘못이 선배님의 경우인 40년 전보다 훨씬 오래인 97년 전의 일이더라도 역사는 역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최시중 선배님, 선배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위암 장지연과도 달리 선배님은 A학점을 받은 과목이 하나도 없는데도, 낙제점수를 받은 과목을 A학점 받은 것처럼 속여, 그것도 '우등생' 대우까지 받고자 한 건 아닌가요. 40년이면 살인죄도 공소시효를 2번이나 넘기는 긴 세월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그 긴 세월 전에 저지른 선배님의 잘못을 지금 탓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는 반드시 바르게 쓰여져야 한다고 외치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날 저는 바른 소리를 하다 현역군인들로부터 칼부림을 당하는 불이익을 뒤집어 쓴 적이 있습니다.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게 또 어떤 불이익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배님이 못 밝히시겠다면 저라도 진실을 밝혀 역사가 잘못 기록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선배님, 언론은 건강하게 바로 서야 합니다. 역사도 그렇게 바로 서야 합니다. 선배님은 그것을 도와 주셔야 합니다.

욕심과 거짓 훌훌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여생을 편히 걸어가시는 선배님 뒷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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