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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씨는 무릎 꿇고 고백해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2>"'독재에 항거·투옥'은 거짓이었다"

'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수배자'의 신분이 자랑스럽던 시절이 있었다. 정당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정권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일이 죄가 되던 때의 이야기다. 수배자들은 붙잡히지 않기 위해 숨어다니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죄 없는 죄인'인 것을 확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속사정을 알아줬기 때문이었다. 부당한 정치권력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당한 모습이 박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정말로 '죄 있는 죄인'이 엉뚱하게도 독재정권의 추적을 당하고있다며 '죄 없는 죄인' 행세를 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쫓기는 일반 잡범이 '피신중인 시국사범'이라고 속여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5공 시절 개인비리로 해직되었던 일부 기자들이 훗날, 5공의 피해자를 자처하며, '탄압받은 언론인'의 반열에 올라, 복직이 된 경우도 극소수지만 있었다.

꼭 5공 때가 아니더라도, 정치적인 이유로 고초를 겪었다하면, 사람들은 사실관계가 규명되기 전에도 관대히 대해주었다. 우대받는 경우도 있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주장에는 사람들의 측은지심이 발동하게 되어있다. 오랜 기간의 군사통치에 뿌리를 둔 사회심리의 한 가닥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핍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쯤 되는 거물이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A씨는 1996년 4월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가, 선거법위반에 걸려 의원직을 잃는다. 그의 혐의 내용은 '불법선거운동 비용 2400만 원'에 '선거운동비용 허위지출 보고서 제출'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치보복으로 표적사정을 당했다고 목청을 높여,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찬찬히 살펴보면, 정치적 박해라는 그의 주장에는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선거직후 고발돼 검찰(신한국당 정권의 검찰이었다)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당시 야당이 "검찰의 불기소처분은 잘못"이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면서 사단이 났다. 1997년 2월 신한국당 정권시절의 법원이 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A씨를 재판에 회부했다. 검찰이 내린 당초의 불기소처분이 야당의 주장대로 부당한 '정치적 특혜'였음이 분명해진 꼴이 되었다.

그렇게 재판이 진행되어 1999년 3월(DJ정권 때였다) 대법원은 A씨에게 원심선고대로 벌금 500만 원을 확정한다. 의원직 상실형이었다. A씨는 DJ정권의 표적사정이요, 정치보복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 무렵의 법원은 '1997년 대선 때 DJ의 낙선을 위해 이른바 총풍(銃風)을 일으키려한' 피고인들에게도 보석을 허가할 정도로 정치적인 중립을 고수하고 있었다.

바로 이 사건과 관련된 칼럼으로 해서, 필자는 사표를 쓰고 30년 넘게 근무하던 신문사를 떠났다. A씨의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썼으나, 회사가 이의 게재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순서에 따라 그해 3월 18일은 필자의 칼럼이 실릴 차례였으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회사 측은 원고를 접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 무렵 회사는 한나라당(신한국당이 당명을 그렇게 바꿨다)과 A씨를 어렵게 하는 글을 실을 수 없다는 심산인 것으로 보였다.

필자로서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아무리 한나라당이라도, 옳으면 옳은 것이고 그르면 그른 것이다. 게다가 거짓으로라도 정치보복이나 탄압이란 말을 끌어대기만 하면 동정을 받을 수 있고, 정치적 입지가 강화된다고 믿는 풍토를 필자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죄 있는 죄인'이 '죄 없는 죄인' 행세를 하는 것은 거짓을 바닥에 깔고 벌이는 굿판이다. 거짓이 판을 치면 세상은 눈물조차 믿을 수 없게 된다.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보인 최시중 씨의 눈물에 대해, 필자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것도 그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고문도 당하고 투옥되기도 했다"는 최 씨의 주장은 이미 의심단계를 지나 거짓임이 드러났다. 증언도 있다. 일반 잡범이 시국사범 노릇을 하거나, A씨가 분명한 잘못에 정치적 덧칠을 하려한 것은, 불의(不義)가 정의(正義)행세를 하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최시중 씨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최 씨는 다르다. 한 계단 더 높은 거짓말로 '정의' 행세를 했다.

그는 그저 피동적으로 도망다니거나 단순 억압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재정권에 '항거'했다고 했다. '항거'는 '능동'의 개념이다. 자유언론을 위해, 말하자면 적극적으로 '투쟁'까지 했다는 강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지난 3월 21일자 칼럼 "최시중, 독재정권에 항거했다?…소가 웃을 일"이 나간 뒤, 필자는 최시중 씨가 그 '항거하는 과정에서 고문당하고 투옥된' 사건의 진실여부를 자신의 입으로 밝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기자였을 때, 남산의 정보부 분실 같은데 끌려가서, 하루나 이틀 조사받고 나온 것을 그렇게 '미화'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기자들에게는 별로 생소하지 않던 '그것'이 '고문'당하고 '투옥'되고 '독재정권에 항거'한 것일 수는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회사 동료였거나 그를 아는 사람들까지도, 최 씨가 먼저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게 순서라고 믿고 있다.

최 씨는 언제 어떤 이유로 구속(투옥)되었는가, 그렇게 '투옥'된 사건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수습되었는가, 어떻게 수습했는가. 거듭 말하지만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진실을 숨길 수는 없다. 최 씨는 자신만 알고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을지 모르는 이 두 가지의 '비밀'을 이제는 자기 입으로 털어놓아야 한다.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독재정권에 항거해 투옥까지 되었다"고 전 국민이 지켜보는 공적인 자리에서 자기 입으로 말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게 도리다.

이 나라 언론을 마음껏 주무르는 막강한 힘을 가진 공직자로서, 도덕적으로도 그렇고, 한 원로 언론인으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도 그렇다. 해야 할 바다. 그리하여 '언론자유를 위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고문당하고 투옥되는 것'은 결코 그렇게 아무나 조작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누구도 조작해서는 안 되는 엄숙한 사안임을, 지금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모든 국민들은 물론, 자손만대에 전해 알려야 한다.

최 씨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언론탄압에 항거하다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동료 언론인들을 알기나 하는가. 가슴 아파해본 적은 있는가. 한 순간 만이라도 그런 선후배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적은 있는가. 동아일보에서 최 씨와 함께 근무하던 안종필이란 선배기자가 있었다. 안씨는 1975년 3월 17일 '자유언론실천'을 외치다, 당시 정권의 비호아래 회사 측이 동원한 깡패들에 의해, 편집국에서 동료기자들과 함께 쫓겨났다. 동아투위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는 1978년 11월 10일,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관련 사실'들을 소책자로 만들어 종교단체 등에 돌리다 구속되었다. 박정희 씨 사후인 1979년 12월 4일 그는 출감하면서, 바로 병원으로 옮겨진다. 간암 말기였다. 쫓겨 다니며 항거하며 감옥살이하며 얻어 고질로 굳어진 병이었다. 그리고 1980년 2월 29일 민주인사와 동아투위의 동료기자들이 발을 구르는 가운데 그는 세상을 떴다. 최시중 씨도 다 안다.

바로 그런 분들을 독재에 항거했다하고, 고문당하고 투옥되었다고 하는 거다. 그냥 부르기도 아까운 그런 분들의 이름이 눈 부릅뜨며 굽어보고 있는 판에, 감히 다른 말도 아니고 "독재정권에 항거했다"고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인간으로서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입을 다물고나 있을 일이지, 다른 곳도 아닌 국회에서, 눈물 흘리는 시늉까지 하면서, 그것도 결코 의롭지 못한 일을, 언론자유를 위한 정의로운 일이었던 것처럼 조작해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 씨가 다른 사람 아닌 자기 입으로 진실을 말하면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민주언론의 제단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자기 입으로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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