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을 두고 한나라당에 금언령이 내려졌다. "판을 너무 키워놓았다"는 당내 비판이 불거지자 황급히 '조용한 선거'로 선회한 것이다.
"거물들이 선거판을 활보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조용한 선거냐"는 불만들이 나온다. 하지만 잦은 말실수로 상처 입은 안상수 대표에 대해 "움직이지 않는 게 더 낫다"는 말이 당 내에서는 설득력을 얻고 있는 중이다. 금언령을 내린 주체가 아이러니하게도 안상수 대표이기도 하다. 안 대표는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후보자들이 불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선거와 관련된 발언을 자제하라"고 말했다.
안 대표의 말이 있기 전 경기도 분당을에 출마한 강재섭 후보, 경남 김해을에 출마한 김태호 후보는 이미 '조용한 선거'에 방점을 찍고 "중앙당 선거 지원을 거부하겠다. 철저히 지역 선거로 갈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특히 6일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강재섭 후보는 중앙당 차원의 지원과 관련해 "인기 없는 사람들 와봐야 도움도 안된다"고 말해 지도부에 일침을 놓았다. 특정인을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안상수 체제의 지도부가 "인기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박형준 대통령 사회특보는 "(4.27재보선에서는) 당이 (국민에) 어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에서는 '금언령'까지 내리면서 인물론으로 '지역 선거'를 치르겠다는데, 한껏 움츠러든 당을 향해 청와대는 당당히 나서길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주목받는 인사는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 자격으로 간혹 강원도를 방문하는 박근혜 전 대표다. 박 전 대표는 당직도 없다. 그러나 엄기영 강원도지사 후보는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바라는 눈치가 역력하다. 엄 후보는 지난 4일 경선을 끝내고 나서 '박근혜 선거 지원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선거 지원까지는 모르겠고...박 전 대표가 평창 올림픽 유치에 나서준데 대해 강원도민들은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정·청이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다. 재보선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지도부 책임론'까지 등장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공천이 늦어진 것을 꼬집으며 "특정인(강재섭)이 공천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 공당을 사당으로 취급한 해당행위는 준엄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책임론을 거론했다.
정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전략공천설을 주도했다가 결국 실패한 이재오 특임장관, 안상수 대표, 원희룡 사무총장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중진 의원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결과 상관 없이 공천에 개입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때 지지한 40대, 왜 등 돌렸나…걱정만 말고 원인을 파악하라"
당내에 특히 두드러진 것은 30~40대 공포증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재보선과 관련해 "사실 먹고 살기 바쁜 30대, 40대가 선거 하는데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뒤집어보면 30대 40대가 선거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정도면 거의 '포비아' 수준이다.
민주당 쪽은 이를 간파하고 벌써 "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선거전을 요란하게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 미디어도 적극 활용하는 등 30대, 40대 민심 잡기에 나섰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에서 '꾸벅 꾸벅' 인사만 해서는 30대, 40대가 선거 분위기를 모를 수밖에 없다. 요란한 선거를 해야 한다. 직장에 나가 미디어를 통해 지역 선거 소식을 들을수 밖에 없는 30대, 40대 직장인들을 위해 인터넷, 방송 등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과 관련해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한나라당이 그동안 지지를 받았던 세대와 지역에서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 걱정만 할 때가 아니다. 원인을 찾아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대와 30대에게는 지속적으로 지지 못받고 대선 때 지지해 준 40대는 왜 등을 돌리는지, 50대은 안전한지, 또 적극 지지해준 강원, 부산, 경남 민심이 왜 흔들리는지 당이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4.27 재보선 공천 갈등 등으로 어수선한 한나라당의 분위기 속에서 남 의원의 말이 얼마나 울림을 갖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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